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지(전국시대) (문단 편집) == 기타 == __[[소설]]__ [[열국지]]에서는 105cm의 허리 둘레에 몸무게도 무려 140kg에 육박하는 뚱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뜀박질로 [[말(동물)|말]](馬)을 따라잡거나 [[참새]]를 맨손으로 잡을 정도로 동작이 빨랐다고 묘사되며, 자지가 시피와 싸운 전투에서의 묘사를 인근 주민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이 전투 자체가 웃음거리'''였다고 한다. 이 전투를 구경하려고 많은 주민들이 몰려들었고 전투를 벌이는 당사자 군인들은 피를 흘리며 고통스럽게 있는데도 구경꾼들은 너무나 웃겨서 배꼽을 잡고 나뒹굴었으며, 심지어 일부 구경꾼들은 '''어느 군대가 이길지 도박판'''까지 벌였다. 이런 사례가 아주 말이 안 되는 건 아닌 게, 한국의 조선 왕조 시기에 일어난 [[이괄의 난]] 때에도 무악재에서 전투가 벌어지자 한성 주민들이 성벽에 올라 구경하다가 이괄군이 패퇴해 들어오자 서대문을 걸어잠근 사례가 있다.[* 《연려실기술》제24권 인조조 고사본말(仁祖朝故事本末) 이괄(李适)의 변(變).] 더불어 춘추시대 초반의 전쟁이란 귀사족 중심의 전차전이 주류였기에 전국시대 말기에 비해 처절한 총력전의 양상보다는 대규모 결투 같은 느낌이 강했다. [[송양지인]]의 고사에서 송양공의 우행이 이런 시대착오적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 해서라는 해석도 있다. 한국에서는 그의 이름의 발음과 한글 표기가 남성의 성기를 뜻하는 [[자지]]와 같기 때문에, [[고자(전국시대)|고자]](告子)[* [[성무선악설]]의 제창자]와 더불어 실없는 놀림(...)을 받기도 한다.[* 사실 한국 역사에도 [[왕자지]], [[김자지]], 신보지라는 걸출한 성함을 가진 분들이 계시기도 하다. 거기다 이들은 그냥 이런 이름을 가진 장삼이사도 아니고 고려나 조선에서 꽤나 유능한 관리였고 그래서 이름이 알려진 것이다. 당장 왕자지만 해도 윤관, 척준경과 함께 둥북 9성을 개척한 유능한 장수였고 김자지는 형조판서의 자리에까지 올랐고 천문 지리에도 견식이 있는 다재다능한 인물이었으며 신보지는 명종대의 장수였다.] [각주] [[분류:연나라의 군주]][[분류:춘추전국시대의 재상]][[분류:기원전 314년 사망]][[분류:비정통 군주]][[분류:거열형된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