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잠실 (문단 편집) === 잠실 개발사 === 오늘날에는 [[한강]] 이남, 즉 [[서울/강남|강남]]에 해당되지만 원래는 '''한강 이북'''이었고 행정이나 생활권으로도 [[송파구]]가 아닌 [[광진구]]와 맥을 같이 하던 지역이었다. 때문에 잠실 지역은 역사적으로 한강 이남의 [[광주시|광주]] 고을이 아닌, 한강 이북의 [[양주시|양주]] 고을에 속해 있었다. 구한말까지 현 [[광진구]] 및 잠실 지역을 관할하던 면의 이름도 고양주면(古楊州面)이었다.[* 양주 관아가 조선 초기 현재의 양주시 쪽으로 이전하기 전, 현재의 광진구 쪽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으로 명명되었다.] 이후 1914년 일제의 [[부군면 통폐합|행정구역 개편]] 당시 [[고양시|고양군]]에 편입되어 현 광진구 및 [[성동구]] 동부 지역과 함께 뚝도면(纛島面)[* 纛의 한자음이 '독'이라 '독도면'이라 부르기도 한다. '뚝도'는 지금의 성동구 성수동 일대에 있던 섬인 뚝섬을 의미하며, 이 [[독도]](獨島)와는 무관하다.]으로 편제되었다가[* 이외에도 [[동대문구]] 장안동, [[중랑구]] 면목동도 이곳에 속했다.], 1949년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었다. [[파일:external/sunday.joins.com/15015155.jpg]] [[파일:잠실도.jpg]] 잠실과 신천은 원래 [[여의도]]와 같은 한강 상 하중도로, 현재의 [[한강]] 본류에 해당하는 신천강과 원래의 한강 본류(현재의 [[석촌호수]])에 해당되는 송파강으로 둘러싸인 섬이었다.[* 섬이 두 개였는데 동북쪽의 큰 섬은 잠실도, 서남쪽의 작은 섬은 부리도라고 불렸다.] 특히 신천강은 현재 여의도의 샛강보다도 더 수류가 없는 거의 건천에 가까운 물길이었으나, 1925년 소위 '[[을축년 대홍수]]'[* 이 홍수의 여파로 암사동 선사유적지가 드러났다.]로 상시 물이 흐르는 강이 된다. 60년대 당시 잠실섬의 생활상을 알리는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5122500329208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5-12-25&officeId=00032&pageNo=8&printNo=6214&publishType=00020|기사]]에 따르면 모래밭이었던 이곳은 뱃사공 아니면 채소농사로 연명하는 수준 이하의 생활에 심지어 전깃불도 없어서 등잔불을 켜고 살았고 TV, 전화는 물론이고 동사무소와 파출소도 없는 서울의 낙도였다. 홍수가 났는데 전화도 없어서 수장될 뻔 하다가 미군의 헬리콥터로 구조된 사연도 있다. 그러다가 1970년대 강남 개발 당시 신천강을 한강 본류로 조정하고 송파강은 매립(일부를 남겨놓은 것이 바로 현재의 석촌호수)하여 1971년 4월 15일 드디어 육지와 연결, 현재와 같은 땅이 되었다. 당시 잠실과 신천이 하나의 [[행정동]] 잠실동이었던 적이 있었다. 1975년 [[성동구]]에서 [[강남구]]로 분구 당시 이때 현 [[신천동(서울)|신천동]]을 잠실4동으로 하여 [[신천동(서울)|신천동]] 지역까지 잠실이라는 이름을 쓰게 된다. 사실 현재의 [[법정동]] 경계도 개발에 따라 조정된 것이기 때문에 원래의 경계와는 조금 달라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