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공기념가 (문단 편집) == 버전 2 == 한편 이런 버전도 있는데 오히려 이 버전이 장제스를 더욱 아부하는 버전이다. 그도 그럴 게 무언가 공화국의 국가원수보다는 임금을 기리는 황실가 같은 느낌이다. 가사 속에 담긴 한자어 표현들도 현대적이지가 않고 역사책에 나올 만한 표현이 많다.(...) 장제스가 사망한 직후에 추모곡으로 만들어져서 더욱 그렇다. 참고로 작곡자는 광둥성에 거주하였고 중국 대륙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생겨나자 [[홍콩]]으로 도망쳐서 살다가 70대 노년에 [[가오슝]]에 와서 정착한 사람이다. 90대 후반까지 장수하는 바람에 가오슝에서 말년 잠시가 아니라 20년 이상 보낸 것이다. 아무래도 가사가 시궁창이지만 찬찬히 보면 의외로 (흑역사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장제스의 생애와 업적을 제대로 묘사하고 있다. [youtube(52k6B9DsJ2k)] ||翳惟總統, 武嶺 蔣公, 巍巍蕩蕩,民無能名!巍巍蕩蕩, 民無能名! 革命實繼志中山,篤學則接武陽明, 黃埔怒濤,奮墨絰而耀日星;重慶精誠,製白梃以撻堅甲利兵, 使百萬之眾輸誠何易,使渠帥投服復皆不受敵之脅從, 使十數刀殂帝國,取消不平等條約,而卒使之平, 使驕妄強敵畏威懷德,至今尚猶感激涕零。 南陽諸葛,汾陽子儀,猶當愧其未之能行! 以新生活育我民德,以憲政之治植我民主, 以經濟建設厚我民生,以九年國民教育俾我民智益蒸。 倫理、民主、科學、革命、實踐,力行,中華文化於焉復興! 奈何奸匪叛亂,大陸如沸如焚, 中懷饑溺,臥火抱冰,乃眷西顧,日邁月征。 如何天不悔禍,一旦奪我元戎,滄海雨泣,神州晦冥, 孤臣孽子, 攀木腐心!孤臣孽子,攀木腐心! 化沉哀為震雷,合眾志為長風,縱九死而不悔,願神明兮鑒臨, 誓誅此大奸元惡,誓復我四明兩京, 誓弭此大辱慘禍,誓收我河洛燕雲。 錦水長碧,蔣山長青,翳惟總統,武嶺 蔣公, 巍巍蕩蕩,民無能名!巍巍蕩蕩,民無能名! || 한국어 번역 ||위대한 총통, 무령[* 장제스의 고향.]의 장공, 높고 위대하시니, 어떤 사람도 감히 따르지 못합니다! 높고 위대하시니, 어떤 사람도 감히 따르지 못합니다! 혁명의 대의는 [[쑨원|중산]]을 이으시고, [[왕양명]]의 무로[* 왕양명은 학자였지만 도적 퇴치에 힘쓴 전과도 있다.] 학문을 일깨우시니, 황포[* 황포군관학교. 장제스가 초대 교장을 역임했다.]에서 성난 파도와 같이 묵질[* 검은 상복.]을 입고 분투해 해와 별처럼 빛나셨으며 [[충칭|중경]]에서는 성심을 다해, 빈약한 무장[* 白梃(백정) = 흰 막대기(단순한 몽둥이)를 의역함]으로 강한 적군[* 견갑이병, 강한 군대]을 대적하셨습니다! 어찌 [[국민혁명군|백만의 무리]]를 이끌기 쉬우셨겠습니까. 그럼에도 [[북양군벌|여러 수괴]][[국민혁명|를 투항시켜]] 적들에게 끝내 굴복지 않으셨습니다! 십수개의 탄압자 제국들로 하여금[* [[함풍제]] 치세부터 [[청나라]]는 많은 나라들과 불평등 조약을 맺었다. 使는 시키다는 뜻이고 刀俎는 칼과 도마, 즉 탄압자를 말한다. 사기 항우본기의 [[홍문연]]을 다룬 부분에서 [[번쾌]]의 말 중에 "如今人方爲刀俎,我爲魚肉,何辭爲(지금 남은 칼과 도마가 되려 하고, 나는 어육이 되려 하는데, 어찌 (하직)인사를 하겠소?)"라는 구절에서 따온 듯하다. 刀俎를 열강, 魚肉을 중국이라 보면 가사가 말하려는 의미가 더 분명해진다. 장공기념가 버전2에서는 이렇게 고전에서 따온 구절들이 많다.] 불평등 조약[* 1943년 연합국은 조계지를 위시한 모든 불평등 조약을 취소했다. 장제스는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감격스러운 순간을 이때로 뽑았다.]을 취소시켜 병사들의 노고를 덜어 주셨습니다! [[일본 제국군|교만한 강적]]에게는 위엄있게 덕을 베푸시어 지금까지도 그들을 감격게 하셨습니다![* 이덕보원(원한을 덕으로 갚는다)의 정신으로 국민당 정부는 전후 일본에 대한 모든 배상 청구를 포기하고 무조건으로 일본군과 민간인을 본토로 귀환시켰다.] 남양의 [[제갈량]]도, 분양의 [[곽자의]]도 이루지 못하신 것을 모두 해내셨습니다! 신생활운동으로 저희에게 민덕을 가르치시고[* 난징 국민정부시기부터 발생한 유교 원리에 기초한 윤리 교육. 대륙 시기에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거 다 거짓말|헌정 정치로 저희에게 민주주의를 심으시었고]][* 1948년 1월 1일 중화민국 정부는 헌법을 반포하였다. 물론 [[동원감란시기임시조관]]으로 실제 헌법정치는 2년도 채 시행되지 못했고, 장제스는 죽을때까지 재야인사를 탄압하는 철권통치를 펼쳤으며 1980년대 중반까지 대만은 중국과 싱가포르와 마찬가지로 1당 독재 국가였고 언론자유화가 이루어진 것은 1988년, 관제 야당을 제외한 나머지 야당이 허용된 것은 비공식적으로 1986년, 공식적으로 1989년이 되어서였다.] 경제건설로 저희의 민생을 도탑게 해 주셨으며[* 국부천대 이후로는 국공내전에서의 패배에 대한 반성 및 재출발의 의미로 중소기업 위주의 경제성장정책을 추진했는데 이것이 대 성공을 거두면서 2000년까지 대만은 연 평균 8%대의 고도성장을 기록했다. 타이완의 기적(혹은 타이완의 경험)이라고 한다.]', 9년의 국민교육으로 저희의 지식을 넓혀 주셨습니다![* 1964년 대만 정부는 초등학교,중학교를 [[의무교육]]으로 지정하고 이를 무상화하였다.] 윤리, 민주, 과학, 혁명, 실천, 역행![* [[삼민주의]]를 의미한다 논리로 외세의 억압을 받지 않는 민족주의를 확보하며, 민주주의로 민권(주의)를 채택하며, 과학으로 민생(주의)를 향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쑨원은 혁명은 철저한 지식에 입각해 실천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화민족의 문화는 어느새 부흥하였습니다! 어찌 [[중국 공산당|간악한 빨갱이]]들이 반란을 일으켜, [[대약진운동|대륙은 끓고 타는데]] [[문화대혁명|민생은]] [[천안문 항쟁|도탄에 빠지고]][* 饑溺(기닉)은 '절박한 민생고'를 굶주림과 물에 빠짐에 비유한 표현이다], 여름에는 불 위에 눕고 겨울에는 얼음을 끌어안을 각오로 [* 臥火抱冰(와화포빙)은 오월춘추에 나온 표현의 변형이다. [[와신상담]]이 보통 유명한데, 여기서는 이를 구천의 冬常抱冰,夏還握火(겨울에는 얼음을 끌어안고, 여름에는 불꽃을 움켜쥠) 일화와 합쳐 와화(臥火), '불꽃 위에 눕는다'고 표현함으로써 저 둘보다 더한 각오임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서방을 거울삼아 날마다 매진하여 달마다 일으켰습니다. 어찌하여 [[국부천대|하늘은 저희에게 내린 재앙]]을 거두시지 않고 [* 悔禍(회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화를 다시 받지 않도록 뉘우침' 혹은 '내린 재앙을 거두다'의 의미로 쓰임.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 도리어 우리의 총통을 앗아가시는지 바다와 하늘이 울고 [[중국]]도 어두워졌습니다. 고신얼자[* 임금을 잃은 신하와 어버이를 잃은 자식.]는 관[* 나무(木)가 여기서는 관(棺)의 의미로 쓰임]을 끌어안고 절치부심합니다! 고신얼자는 관을 끌어안고 절치부심합니다! 가라앉은 슬픔은 천둥이 되고 백성의 모인 뜻은 큰 바람이 되니 아홉번 고쳐 죽어도 후회치 않으리니, 천지신명께서는 굽어살펴 주소서! 저 [[시진핑|저 간악]][[중국 공산당|한 악의 무리]]를 벨 것이고 [[저장성|사명]][[베이징시|양]][[난징시|경]]을 수복할 것이고 이 [[국공내전|크나큰 치욕]]을 반드시 되갚을 것이며 [[중원|하락]][[허베이성|연운]]도 되찾을 것입니다! 금수(錦水)는 오래도록 푸르고 장산(蔣山)[* 남경의 자금산(紫金山, 448m)을 가리킨다. 원래 종산(鐘山)이었으나 오나라 [[손권]]이 할아버지 손종(孫鐘)의 이름자를 피해 종산을 '''장산(蔣山)'''으로 바꾸고 자신의 무덤을 장릉이라 했다. 명 태조(明太祖) [[주원장]]의 능인 효릉(孝陵), [[손문]]의 [[중산릉]], 중국 최초의 [[천문대]]라는 자금산천문대도 이 산에 있다. 장개석의 성씨인 장(蔣)을 뜻하는 [[중의법]]이기도 하다.]도 오래도록 푸르노니 위대한 총통, 무령의 장공, 높고 위대하시니, 어떤 사람도 감히 따르지 못합니다! 높고 위대하시니, 어떤 사람도 감히 따르지 못합니다!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