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국영 (문단 편집) === 거짓말 같은 비보(悲報) === >感情所困 無心戀愛世 >---- >감정에서 곤혹을 느껴 세상을 사랑할 마음이 없다.[* 해당 유서는 장국영의 유서가 아님이 밝혀졌고, 장국영의 유서는 공개된 바가 없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leslie 2003.jpg|width=100%]]}}}|| || 2003년 3월 9일, 공식석상에서의 마지막 모습 || 2003년 4월 1일 장국영은 자신이 머물던 홍콩의 [[Mandarin Oriental|만다린 오리엔탈 호텔]](香港文華東方酒店) 24층 객실에서 [[투신자살|몸을 던져]]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났다. 향년 46세. 공교롭게도 이 날이 '''[[만우절]]'''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처음엔 '''거짓말로 여기고 그의 사망 소식을 믿지 않다'''가 뒤늦게 '''사실임을 알고 큰 충격에 휩싸였다'''.[* 실제로 사망 소식을 접했던 주윤발은 만우절 장난치곤 좀 그렇다고 웃어 넘겼다가 진실임을 알고 대성통곡했다.] 또한 '''[[베르테르 효과|그가 세상을 떠난 지 9시간 만에 홍콩에서 6명의 팬이 그를 따라서 투신했고 그 중 5명이 사망했다.]]''' 뿐만 아니라 전 아시아권의 팬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장국영 장례식.jpg|width=100%]]}}}|| || 그의 장례식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장국영 화장터.jpg|width=100%]]}}}|| || 화장터로 들어가는 장국영의 관 || 당시 유행하던 전염병 사스(SARS)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4월 5일 열린 추도식에는 전 세계에서 수많은 팬들이 찾아와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특히 함께 《영웅본색》에서 호흡을 맞추었던 [[주윤발]]은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와서 장례식에 참석했다. 장국영의 시신은 홍콩 케이프 콜린슨 화장장에서 화장되어, 위패는 보선사에 안치되었고 유골은 당학덕에게 인계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도 [[송광사]]에서 49재를 치르려고 했으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확산 우려의 이유로 무산되었으며, 6월 2일 일산의 여래사라는 절에서 국내 장국영 팬들이 모인 가운데 천도재(遷度齋)가 열렸다. 4월 1일 기일과, 9월 12일 그의 생일에는 많은 팬들이 영상회나 파티를 열고 장국영을 기억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중국어 위키백과에 기재되어있다. 발인식 날 추도사는 평소 그와 절친이던 [[서극]] 감독과 작곡가 황페이, 장학우가 맡았고, 평소 눈물을 보이지 않기로 유명한 양가휘와 양조위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을 흘리다가 끝내 혼절하기도 했다. 그리고 장국영의 관은 평소 그와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한 관금붕 감독, 패션디자이너 류희기, 양가휘, 장학우, 서극 감독 등 8명이 들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