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락궁 (문단 편집) === 조선 === 장락궁으로선 [[조선왕조실록]]에 마지막 기록이 나오는데 태조실록 5권, 태조 3년([[1394년]]) 2월 23일에 [[하륜]]이 평양장락궁(平壤長樂宮)의 예를 들며 한양으로의 천도를 주장한다. 당시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를 논의하던 중 한양의 부지, 즉 경복궁의 부지가 작다는 의견이 나오자 하륜은 경복궁 부지가 전왕조 고려의 평양장락궁(前朝 平壤長樂宮) 부지와 비슷하다며 옮겨가도 상관없다고 강조한다. 장락궁은 조선 대에 영숭전(永崇殿)으로 바뀌어 궁전에서 사당으로 그 기능이 전환된다. 조선 [[태조(조선)|태조]]의 어진이 걸렸으며 [[세종대왕]]은 감독관 두 명을 두게 시켰다. [[세조(조선)|세조]]는 직접 영숭전에 가 제사 지냈고 [[명종(조선)|명종]]은 영숭전과 평양의 모습을 병풍에 그리게 시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