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량(전한) (문단 편집) ==== 유후(留侯) ==== 전쟁이 종결되자 그때까지 수고한 공신들에 대한 논공행상도 벌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장량은 몸이 아프고 하여 직접 칼을 들고 전쟁터에서 세운 공이 없었는데, 유방은 스스로 장량의 공을 언급하며 칭찬하는 것이었다. >자방은 군중의 장막 안에서 계책을 내어 천 리 밖의 승부를 결정지었으니 '''제나라 땅 3만 호'''를 임의로 갖게 하겠다. 이게 얼마나 어마어마한 대우였나면, 한나라 조정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최고 공신 소하가 찬후(酇侯)로 봉해질 때 '''받은''' 식읍(食邑)이 '''7천 호'''였다. 그런데 장량에게는 무려 '''3만 호'''를 '''원하는대로''' 내주겠다고 했으니, 장량에 대한 유방의 고마움과 신임은 그 정도로 대단했던 것이다. --그런데 공신 순위는 62위다-- --차라리 제외를 하지-- 이것이 어째서 가능했는지를 알려면 장량과 유방의 관계를 돌이켜 생각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장량은 유방에게 무엇을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고, 유방을 떠나지 않았다(그 소하도 한신이 유방에게서 떠날 때 그를 붙잡기 위해 달려감으로써 유방이 그마저 자신을 떠났다고 여겨 낙담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장량의 계책 덕분에 유방은 승리할 수 있었다. 이는 유방 사후에 실권을 모두 가져간 여치와 장량의 관계를 보아도 알 수 있는데, 장량은 유방과 여후 모두에게 미움을 사지 않았고 오히려 믿을 수 있는 든든한 우군이었다. 따라서 전후의 논공행상에서 유방이 장량을 최고의 공신으로 꼽아 대우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조참]]이나 [[진평]]도 1만 호가 넘도록 봉지를 하사받았으나 이것은 여러 차례에 걸쳐 나누어 받은 것을 모두 합친 것이므로, 유방이 장량에게 열국(列國)의 으뜸인 제나라[* 현재의 [[산둥성]] 일대. 지금도 이 지방은 곡창지대로 유명하다. --제나라의 주요 산업이었던 수산업은 초토화 수준이지만--]에서 3만 호를 '''스스로 골라 갖도록''' 한 것은 특혜 중의 특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장량은 이를 사양'''했다. >원래 저는 하비(下邳)에서 몸을 일으켜 경구를 찾아가다가 도중에 유(留) 땅에서 폐하를 우연히 뵙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늘이 저에게 폐하를 만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준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저의 계책을 받아 주셨고, 다행히 저의 계책은 적중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이룬 공이 아니라 폐하의 배려로 인한 일이니, 다만 유(留)에 봉해주십시오. 이에 장량은 3만 호 대신, '''유방과 장량이 처음 만난 그곳, 유(留) 땅을 봉지로 갖는 유후(留侯)'''가 되었다. 유방으로서는 그야말로 [[폭풍]] [[감동]]을 해도 무엇 하나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다. 가령 한신이나 팽월만 해도 자기들 왕 시켜주지 않는다고 원군도 보내지 않아 유방을 항우에게 깨지게 했고, 왕으로 임명하자 겨우 그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여 [[해하 전투]]에 참가한 바 있다. 그러니 이런 여타 공신들에 비해 장량을 각별히 여기고 아끼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물론 한신과 팽월은 천하가 평정된 뒤, 자신들이 욕심 부린 대가를 [[토사구팽|톡톡히 치르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