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량(전한) (문단 편집) === 출신 === 유방(劉邦)이나 소하·[[한신]]([[한신(한왕)]]이 아님) 같은 다른 인물들이 별볼일 없는 평민 출신인 것에 비해, 장량은 [[한(전국시대)|한나라]]의 귀족 가문 출신으로 그들과는 출신 성분 자체가 많이 달랐다. 그것도 그냥 귀족 가문도 아니라, 한나라 최고 명문 귀족이었다. 장량의 조부 장개지(張開地)는 [[신불해]]를 재상으로 삼아 한나라의 짦은 전성기를 만들었던 [[한소후]]를 비롯하여 선혜왕(宣惠王)·양왕(襄王) 등 세 명의 왕 밑에서 상국(相國)을 지냈고, 아버지 장평(張平)은 희왕(釐王)·환혜왕 두 명의 왕 아래서 상국을 지냈다. 사기색은에서는 장량이 한나라의 공족으로 희성이나[* 당시 전국시대에는 왕·공족들이 나라의 고위직을 맡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진나라에 쫓겨 성명을 바꾸었다고 한다. 한신이 강소성 회음 출신이고 소하 역시 강소성 패현[* 이곳은 산동성·강소성·하남성·안휘성 4개성이 교차하는 곳이다.] 출신인 데 비하여, 장량은 출신이 사기에 명확하게 언급이 되진 않는다. 추측해보자면 장량의 조상들은 바로 아버지 시기까지 한나라의 상국을 지내던 인물인만큼 전국시대 한나라의 수도였던 신정(新鄭)에 살았을 테고, 장량도 여기서 태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BC 230년, 압도적인 기세를 타고 있던 진나라의 군사력에, 장량의 조국은 무참하게 무너지고 만다. 장량의 아버지나 할아버지도 [[고관대작]]이었으니 장량도 시간이 지났으면 그렇게 되었겠지만, 아직 나이가 어려 장량은 벼슬을 하고 있지 않았다. 이 당시 장량의 집에서 일하는 가노(家奴)만 '''300명'''이 넘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