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로회 (문단 편집) === [[미국]]의 회중교회 === '장로교와 개혁교회의 차이' 문단에서 상술했듯 칼뱅주의를 따르고(물론 극초기 이야기, 현재는 구원론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펼친다) 침례가 아닌 일반적인 세례를 주면서 교회 정치체계만 회중제를 따르는 교회는 그냥 '회중교회'라고 부르는데, 초기 미국 동부의 교회들은 의외로 장로교가 아닌 회중교회들이 많았었다. 사실 미국 내 청교도들은 장로제보다는 직접적인 회중 자치를 중시하는 분리주의자들이 대다수였고,[* 이들은 이미 '사보이 선언'을 하면서 장로교와는 갈라선 상태였다. 1685년 영국 사보이 궁전에 모여서 웨스트민스터 문서들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언하며 고백서의 내용을 일부 수정했고, 회중교회만을 위한 '사보이 신앙고백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당연히 이들이 세운 교회도 대다수가 회중교회(congregational church)이며 이곳과 연관된 대학이 [[하버드대학교]]와 [[예일대학교]]이다. 19세기 이후로 대표적인 리버럴 교단이 되어 보수 위치에 있던 장로회와 대립했었고, 1957년 독일계 개혁교단인 '복음개혁교회'(E&R Church)와 합치게 되면서 [[그리스도연합교회]](UCC)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교회]] 제자회(DoC)와는 무관하다.] 이 교단의 전도나 선교에 대해서 흥미로운 사실이 있는데, 미국 건국의 주체였었고, 비교적 늦게 유입된 장로교와 몇가지 합의를 했다는 것이다. * 1 미국 동부는 회중교회가, 서부는 장로교회가 맡는다. * 2 한반도와 만주 그리고 대만은 장로교회가, 중국과 동남아 그리고 일본은 회중교회가 맡는다. 위 사항으로 인해 한국과 대만에는 장로교 선교사들이 들어왔고, 일본과 중국은 회중교회 선교사들이 들어왔다. 일본에서는 조합교회로 이어졌다.[* 일본 조합교회는 1941년 다른 교단들과 합동하여 현재의 '일본기독교단'으로 이어지고 있다.] 위의 합의는 절대적으로 준수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한국에도 일본 조합 교회가 들어 왔는데, [[성결교회]]와는 반대로 일본 정부의 앞잡이가 되어 내선일체에 앞장 섰고 당연히 광복 이후 강제 해산되었다. [[한국기독교장로회]]와 연관이 깊은데 일단 [[문익환]] 목사가 유학한 도쿄신학교는 회중교회의 일본 선교사인 S.R.브라운이 세운 신학원을 바탕으로 초교파적인 신학교가 된 곳으로 보인다.[* 2차대전 이후 [[아오야마가쿠인대학|아오가쿠]] 등 다른 대학의 신학부들이 이곳으로 이관되었으며, 명칭도 도쿄신학대학으로 바뀌었다.] 그의 부인이 다닌 요코하마 신학교도 일본 조합교회의 모체가 되는 [[도시샤대학]]의 설립의 배경이 된 곳. 미국에서 보수적이던 장로교단과 리버럴화의 전조를 보이던 회중교회의 마지막 합작품인 구역을 나눈 아시아 선교가 있었던 셈인데 그 영향으로 일본 유학을 간 문익환 등이 [[성서비평학]]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한국의 다른 신학자들과 달리 국가신토를 너무 가볍게 여겼으므로, 한국 개신교에서 성서비평학이 금기시되는 원인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UCC의 최근 경향은 미국 메인라인 중에서도 리버럴의 중심이다. [[페미니즘]], [[동성애]], [[인종차별]], [[낙태]] 문제에 관해 그 어떤 메인라인 교단들보다도 과감하게 좌파적 목소리를 내는 편. 한편 리버럴화에 반발한 극소수의 회중교회들은 [[http://www.ccccusa.com/|CCCC 혹은 4C교단]]이라 하는 회중교단을 설립했으며 'Conservative'란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자칭 주류인 UCC와 비교하면 동성애를 금지하는 등 보수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신사도 운동]]의 창시자인 피터 와그너가 첫 목사 안수를 받은 교단인지라 한국인 입장에서는 이 교단도 [[호불호]]가 갈릴 수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