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막성전 (문단 편집) == 상세 == 김종규라는 사람이 설립한 [[기도원]]인 호생기도원[* 김종규가 1964년 서울시 동작구(당시 영등포구) 상도동에 세운 기도원으로, 방언·방언통역·신유 등 신비 체험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 열성 신도였던 유재열(일명 어린 종 [[삼손]])[* 1949년 2월 1일 출생. 2006년 그의 딸이 가수 [[싸이]]와 결혼했다.]이 직통계시를 받아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며 그를 교주로 하여 만들어졌다. 또한 자신 외에도 여호수아, 디라 등등 성경의 인물들에 자신의 측근들을 대입하여 내세워 활동하였다.[* 직통계시를 받았다는 교리와 성경 인물에 실존 인물을 대입하는 방식은 후신인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에도 유사한 방식으로 이식되었다.] [[1967년]] [[7월]] 경 유재열이 자신의 아버지 유인구를 축출하고[* 유인구는 유재열의 계시를 해석하는 노릇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아버지와 분점하던 교단 내 권력을 모두 장악했다고 알려져 있다. [[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85477|참조]] 그 밖에도 언약궤를 새로 만들고, 피를 모아 세례를 줄 때마다 피로 써 주는데 피가 다 떨어지자 [[선지|돼지피]]를 공수해 주다가 들통이 나 다툼이 있었다는 듯하다. 이들은 5,000명쯤 교인을 모은 채, [[시흥군]] [[과천시|과천면]] 막계리(현 과천시 막계동)[* 1986년 [[과천시]]로 승격]에서 집단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기 및 교단 운영 과정에서 탈법적인 일이 문제가 되어 교주 유재열이 1975년에 재판을 받았는데[* [[그것이 알고싶다]]에 의하면 이때 유재열을 검찰에 고발한 사람이 이만희와 함께 신천지를 창립했던 홍종효(훗날 탈퇴하고 증거장막성전을 설립한 이후 2012년 7월 사망함.)였다고 한다. 반면 탁명환은 자신의 저서에서 이만희가 유재열을 고소했다고 적었다.], 사기 등의 범죄 이외에도 불법 건축이나 예비군 담당 직원에게 훈련을 안 받고 훈련을 받은 것처럼 기입하게 하여 훈련을 빼먹은 것도 문제가 되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5092400209207015&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75-09-24&officeId=00020&pageNo=7&printNo=16609&publishType=00020|관련기사]] 당시 장막성전을 수사한 검사에 따르면 장막성전이 위치한 곳만 사망률이 매우 높았고, 식사 제공도 없이 신도들의 재산을 전부 갈취하였다고 한다. 결국 1980년, 장막성전은 해체되었고 그 자리에는 [[서울랜드]]가 들어선다.[* 이 때문에 일견 관련 없어 보이는 도시공학 관련 서적인 [[손정목]]의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에 장막성전이 등장한다. 수도권 개발사에서 서울대공원의 개발 역시 중요한 장면이니만큼 장막성전이 엮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평호 목사에 따르면 서울랜드 측으로부터 [[과천시]] [[문원동]]에 땅 1,500평을 받고 이전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