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문석 (문단 편집) == 흑역사 == 선수 본인이 대량실점하며 큰 인상을 남긴 경기가 꽤 있다. 입단 첫 해인 1997년 어린이날 3연전의 두번째 경기인 [[LG 트윈스/1997년/5월/4일|5월 4일]] 대구 삼성전 선발로 등판했다가 [[정경배]]의 연타석 만루홈런 중 첫 번째를 헌납했고, '''1⅓이닝 7피안타 10실점'''을 기록하며 패전 투수가 되었다. 이 때 LG는 삼성과의 3연전 중 홈런 '''17개'''를 포함 무려 49점(…)을 내 주면서 3경기를 모두 패했다. 이후 [[천보성]] 당시 LG 감독이 부정배트 의혹을 제기했지만, 검증 결과 사실무근으로 입증되어 2중의 굴욕이 되었다. 그리고 2000년 플레이오프에서 4-3으로 앞서고 있던 9회초 투아웃에서 김용수로부터 교체되어 등판하였으나 [[안경현]]에게 동점홈런을 허용하고, 그리고 연장전에서는 [[심정수]]에게 역전홈런까지 맞아 패전, 탈락의 불명예를 떠안아야 했다. 다만 이는 전술했듯 플옵 내내 부진했는데도 장문석을 올렸던 감독의 책임이 큰 부분. 또한 2005년 5월 26일 롯데전에서는 무려 '''1이닝 7실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 날 경기는 결국 엄청난 난타전이 된 끝에 롯데가 13:11로 승리. 이 경기는 [[롯데 자이언츠/2005년/5월/26일|526 대첩]]으로 기록되었으며, [[엘 꼴라시코]]의 원조격 경기라 할 수 있다. 물론 아래의 짤방은 지금도 야구팬들에게 전설로 회자된다. [[파일:attachment/file449804_1.jpg|align=center]] 그리고 KIA로 이적한 첫해인 2006년 5월 9일, 인천 [[SK 와이번스]]전에서 SK의 일본인 타자 [[시오타니 가즈히코]]에게 사구를 던져 그의 선수 커리어를 끝내버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