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세용 (문단 편집) == 여담 == * 조부 [[http://www.laborsbook.org/dic/view.php?dic_part=dic07&idx=4496|장홍상]](張弘相, 1902. 1. 1[* 음력 1901년 11월 22일] ~ 몰년 미상)[* 창씨명 유미나가 코쇼(弓長弘相).]은 '장적우(張赤宇)라는 이름으로 일제강점기 때 [[조선공산당]] 경북도당, 고려공산청년회 대구야체이카, [[경북고등학교|대구고등보통학교]]를 중심으로 한 학생비밀결사 신우동맹 등에 소속되어 활동하다 수차례 투옥된 바 있는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다.[* 1928년 8월 26일 경기도경찰부에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http://db.history.go.kr/id/ia_4710_3659|송치되었고]], 1930년 11월 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미결구류일수 500일 통산)을 선고받고 1932년 6월 23일 [[http://db.history.go.kr/id/ia_4711_3659|출옥하였다]]. 1942년 2월 23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월을 [[https://theme.archives.go.kr/next/indy/viewIndyDetail.do?archiveId=0001165843&evntId=&evntdowngbn=N&indpnId=0000108694&actionType=det&flag=2&search_region=|선고]]받기도 했다.] 다만 독립유공자에는 서훈되지 못했는데 이는 그가 [[8.15 광복]] 직후인 1945년 8월 열성자대회를 통해 결성된 조선공산당의 경상북도책으로 활동했으며, 1946년 2월 [[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대회에 참여하여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그리고 같은 해 조선공산당에 의해 경상북도 각지로 파급된 것으로 알려진 [[대구 10.1 사건]] 당시 그가 조선공산당 경상북도당 책임자로서 깊이 관여했다는 사실 등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 사람들에게는 의외일지도 모르지만 일제강점기 때 경상북도는 한반도 내에서 공산주의 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곳이다. 당시 대구의 별명이 '''조선의 모스크바'''일 정도였다.] * [[영남대학교]] 재학 시절 육영재단 반대 투쟁에 참여했다가 외압을 당한 적이 있는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육영재단의 각종 비위와 [[복마전]]적 행태가 재조명되면서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 * 보수 강세 지역인 [[TK#s-1.1]]에서, 그것도 [[박정희]]의 고향인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민주당계 당적으로 한 번만에 당선된 기적을 일으켰다'''. TK 지역 타파의 아이콘인 [[김부겸]] 장관도 두 번의 [[낙선]] 이후 세 번째 도전만에 대구에 민주당 당적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될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아주 놀랄 만할 일이다.[* 물론 상대가 경기도지사 재임 당시 [[도지삽니다]] 발언을 쏟아낸 [[김문수]]였고, 당시 새누리당이 대구를 자기들의 표밭이라고 대충 신경 쓴 덕분이기도 하지만 김문수는 [[LG디스플레이]]를 파주에 유치했다.] 물론 자유한국당의 공천에 반발해서 무소속으로 뛰쳐나온 보수 성향 김봉재 후보가 9.5% 정도, 범야권인 [[바른미래당]] [[유능종]] 후보가 또다시 7.5%를 들고 나르면서 보수 야권의 표가 분산되었다는 점도 큰 이유다.[* 비슷한 예로 다른 종류의 선거에 하나씩 있다. [[20대 총선]] 때에는 야권이 분열하면서 [[단원구]]의 갑, 을 지역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모조리 당선되었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김영삼|양]][[김대중|김]]이 28%, 27%씩 들고 나른 결과 노태우가 당선되었다.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인제]] 후보가 19.20%를 들고 날랐다.''' 그 결과, [[이회창]]은 낙선하고 말았다.] 참고로 '''[[김해영|본인도 당선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 이름의 어감과 민주당 소속 구미시장이라는 직함 덕분에 '[[짱#s-4]]쎄용'이라고 부르는 네티즌들도 있다. * 민주당 소속이지만 구미시장에 재임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추도식이나 기념 행사에는 참석했다. 본인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은 인정하면서도 '박정희 기념사업'에 시 예산이 과잉 투자되는 것을 반대해 왔던 것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