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수왕/생애 (문단 편집) === [[지두우]] 분할 시도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ttachment/장수왕~1.jpg|width=100%]]}}} || || 빨간 선은 원정로가 아니라 답사로다. || 이후 479년에 몽골 고원의 [[유연]]과 모의하여 현재의 대흥안령(大興安嶺) 산맥에 위치한 유목부족 국가인 지두우의 분할을 시도했다. 유연과 지두우 분할 모의를 했다는 기사만 남아있고, 그 경과에 대해서는 기사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성공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지두우와 고구려 사이에 있었던 거란이 고려(물론 고구려)의 침략을 받아 대릉하 인근으로 도망했다는 기록이 2건이나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성공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분할 시도는 했던 것 같다. 헌데 그때 유연은 북위에게 털리고 있었던 터라 지두우에 원정을 보낼 사정이 못 되었고, 이후에도 지두우나 물길이 여전히 사신들을 보내 외교활동을 하는걸로 보아서는 실패했거나 완전히 삼키지는 못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확실한 건 지두우 원정 성공 여부를 떠나서 시도는 이루어졌고 그 와중에 거란이 고구려에게 침략당하여 당시 내몽골의 유목민 세계에 혼란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종종 내몽골에서 발견되는 고구려 계통의 성터를 이 사건과 연관짓기도 한다.[[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199408290097980628|1994년 발굴 당시 기사]] 자세한 확인을 위해서는 고고학적 발굴 조사가 더 필요하지만, 중간 지역인 요서 지역에서 중국 정부가 협조하지 않기 때문에 조사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고고학계에서는 단순히 양식의 전파일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 의견도 있으며, 국사 교과서 <역사 부도> 표기에는 거의 나타내지 않되 흥안령 일대의 초원 지대를 장악하였다는 서술을 남김으로써 두리뭉실하게 다루고 있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장수왕, version=823, paragraph=3)] [[분류:장수왕]][[분류:인물별/생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