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장쉐량 (문단 편집) === [[시안 사건]]과 연금 === 결국 장쉐량은 1936년 12월 12일, [[시안 사건]]을 일으켜 장제스와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다. 이 사건으로 장쉐량은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으나, 장제스는 즉각 사면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10년을 공들인 [[초공작전]]을 망쳐놓은 장쉐량에게 큰 원한을 품은 장제스는 장쉐량을 절강성에 가택연금시켰다. 1937년 [[중일전쟁]]이 터진 후에도 여기저기 끌려다녔다. 중일전쟁 후 만주 지역의 민심 수습을 위해 장쉐량을 동북지역으로 파견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이 있었지만 장제스는 이를 묵살하고 장쭤린의 의형제 [[장쭤샹]]을 선택했으나 장쭤샹은 정치에서 은퇴한 상태라 그 역시 거절했다. 장제스는 1949년 12월 7일 [[국부천대]] 때도 장쉐량을 잊지 않고 [[대만]]으로 끌고 갔다. 이후 외부와 연락이 차단되면서 최종적으로 신주 현으로 이동했다. 1954년 외출 허용 등 연금이 완화되었지만 여전히 외부와의 접촉은 차단되었고, 가택연금에서 풀려나려고 반성문을 써가는 과정에서 오른쪽 눈에 이상이 생기면서 반 실명상태가 되었다. 어쨌든 가택연금은 [[장징궈]] 시절에도 지속되었고 공식적으로 명예가 회복된 것은 [[리덩후이]] 총통 시대 때로 1990년 생일 때 생일축하연을 대만 총통부에서 직접 열면서 공식적으로 명예가 회복되었고, 1993년이 되어서 연금 상태에서 풀려났다. [[http://blog.daum.net/shanghaicrab/11628581|#]]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