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온(동오) (문단 편집) === 정사 === 아버지 장윤은 재물을 경시하고 선비를 중히 여겨 이름이 높았으며, [[손권]] 휘하에서 동조연을 지내다가 죽었는데, 그의 아들 장온이 절조가 있고 용모가 탁월해 손권이 그의 평가를 묻자 [[유기(동오)|유기]]는 그가 [[전종]]과 비슷하다고 했다. [[고옹]]이 나와서 그에게 비적할 자가 없다고 말해 손권이 그를 직접 만나보는데, 문장표현과 점으로 하는 대답이 뛰어나 보는 사람들이 모두 놀라면서 [[장소(삼국지)|장소]] 또한 그에게 감명을 받아 손을 잡고 그에게 부탁을 할 정도로 그에게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이에 손권은 그를 의랑, 선조장서로 임명했으며, 후에 태자태부로 승진해 32세 때 보의중랑장의 신분으로 촉에게 가는 사자가 되었다.손권은 장온에게 말했다. >그대가 먼 곳으로 나가는 일은 마땅하지 않지만, 제갈공명(諸葛孔明)이 내가 조씨와 마음을 통하려고 하는 까닭은 모르는 것이 걱정되기 때문에 몸을 굽혀 그대가 가는 것이오. 만일 산월(山越)이 모두 제거된다면 조비(丕)와 대규모로 교전하게 될 것이오. 외교 사신의 함의는 명령을 받되 말을 받지는 않는 것이오. 장온은 이렇게 대답했다. >신은 조정에 들어와서는 독자적으로 대응하는 재능이 없었습니다. 장로(張老)가 군주의 명예를 넓힌 공이 없으며, 또 자산(子產)이 사물을 진술한 효력이 없었으므로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갈양(諸葛亮)은 계략을 통찰하므로 반드시 신성한 생각을 굽혀 가며 펼치는 것의 마땅함을 알것이며, 게다가 하늘에서 내려준 것과 같은 조정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제갈양의 마음을 미루어 보면, 틀림없이 의심이 없을 것입니다. 장온은 촉나라에 도착하자, 궁궐로 나아가 장표를 올려 말했다. >옛날에 고종(高宗)은 상을 당했지만 오히려 은(殷)의 운명을 창성하게 하여 부흥하게 했고, 성왕(成王)은 어렸지만 주(周)의 덕행을 융성하게 하여 태평한 상태에 이르게 했습니다. 이 두 사람의 공훈은 하늘보다 높고, 명성은 하늘보다 넓습니다. 지금 폐하께서 총명한 자태에 의지하여 이전의 고종과 성왕의 실례를 그대로 시행하여 정치적인 업무를 우수하게 보좌하는 자에게 주고, 수많은 현명한 신하들이 마음을 기울여 돕도록 하며, 각지의 사람들이 멀리서 당신 나라의 기세를 바라보고 위안과 신뢰를 느끼지 않는 자가 없도록 하십시오. 오나라는 부지런히 생각하고 힘을 펴서 장강 해안을 깨끗이 평정했습니다. 원컨대, 도의가 있는 군주와 함께 천하를 평정하고 통일시키는 일에 마음을 기울이십시오. 우리들의 결심은 하수(河水)와 같습니다. 그러나 군사는 흉하고 복잡한 것이고 우리들이 사용할 수 있는 병력은 너무 적습니다. 이 때문에 미천하고 이치를 거스르는 무리들의 치욕을 견뎌가며 신 장온으로 하여금 상황을 알려 우호적인 정의를 나타내도록 하였습니다. 폐하께서는 예의를 가장 숭상하므로 이 때문에 치욕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신은 멀리 변방 지역에서부터 당신의 근교에까지 이르면서 폐하의 위문을 여러 차례 받았고, 은혜가 가득찬 조서는 끊임없이 전해졌습니다. 신은 이러한 영광 때문에 스스로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으며, 이런 두려움은 뜻밖에 놀란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삼가 우리 군주가 폐하께 보내는 편지 한 통을 바칩니다. 떠날 때 [[진밀]]과 문답을 해 장온은 진밀을 존경하게 되었으며 [[제갈량]]을 비롯한 촉나라 사람들 또한 그의 능력을 매우 귀중하게 여겼으며, 오나라로 돌아와서 예장군으로 출병하였으나 결탁을 짓지 못하였다. 이 때 [[손권]]은 슬슬 총기가 흐려져 장온이 촉나라의 정치를 찬미한 것과 사람들이 장온을 너무 칭송만 하는 것[* 안 그래도 오의 사성들을 나중에 이궁의 변으로 작살낸 손권이다. 여기서 꼬투리 잡을 것 까지 생겼으니 속으로 얼마나 장온에게 이를 갈았을지는 불 보듯 뻔한일.]에 대해 불만을 품었으며, 또 그의 명성이 너무 성대하여 백성들이 그에게 미혹되고 종국에는 자기를 위해 쓰이지 않을 것이라고 의심하여 그에게 심한 상해를 입힐 방법을 궁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장온과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뜻을 같이하던 상서 글염과 선조랑 서표가 탐관오리들과 부정한 자들을 싫어해 직책인 인사 관리를 이용해 관직을 조정했는데, 이들의 조치는 지나치게 급진적이었기 때문에 부정으로 좌천된 사람들이 불만을 품고 손권에게 둘을 참소해 자결 명령을 받았다. 글염은 장온이 추천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를 핑계삼아 장온을 하옥시키고 글염의 일과 함께 예장에서 군사 활동을 하던 중 광릉 싸움에 명령을 받고도 참전하지 않은 점, 점쟁이 은례를 멋대로 다른 관직에 쓴 점, 가원을 이용 국가의 은전을 팔아 자기의 형세를 지킨 점을 들어 쫓아내 본군의 하급 관리로 삼게 했으며, 그 때 장온와 사이가 나빴던 [[낙통]]마저 나와 그에 대한 혐의를 조목조목 반박했으나 손권은 듣지 않고 장온은 결국 6년 후 죽고 만다. 그의 두 동생 장지(祗)와 장백(白) 역시 재능과 명망이 있었지만, 장온과 함께 폐출되었다. 결국 장온은 그의 능력을 시기한 손권에 의해 사실상 숙청된 셈이다. 회계전록에 이르길 여요의 우준(虞俊)이 탄식하여 말하길 >장혜서는 재주가 많고 지혜가 적으며 화려하기만 할뿐 실질이 적어 원망이 모이는 바이니 집안을 뒤엎는 재앙이 있는 것을 나는 그 징조를 보았다. 제갈량은 우준이 장온을 걱정하는 것을 들었을 때 믿지 않았다가 장온이 방출되자 제갈량은 마침내 우준의 선견지명에 탄복하였다. 제갈량이 처음 장온의 패망을 듣고 그 이유를 몰라 며칠 동안 생각하다 말하길 >나는 그 이유를 알았다. 그 사람은 청탁이 너무 밝고 선악이 너무 분명하였다. 배송지는 장온의 최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신 송지가 생각건대 장주가 말하길 "명성은 더불어 사용하는 기구이니 많이 취할 수 없다."하였는데 장온이 폐해지게 된 것은 어찌 명성을 취하는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 아니었겠습니까! 많이 가지면 폐가 된다는 것을 고대의 현인들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달견을 가진 선비는 물러나 스스로를 감추어 명성이 덕을 넘지 못하게 하고 화려함이 실질을 상하게 하지 못하게 하니 이미 자신의 재주를 덮어 감출 수도 없고 청렴을 꺾고 명예에서 도망치지 못하여 재주가 한 세대를 빛내고 명성이 사람들의 위를 덮게 하니 중용의 도리가 잠시라도 폐해질 수 있겠습니까! 장온이 곧 이와 반대로 행동하니 능히 패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손권은 이미 장온의 명성이 왕성한 것을 미워하였는데 낙통이 계속 그 훌륭함을 말하면서 심지어 언급하길 "재주가 군중을 초월하고 한 세대를 빛내니 세상 사람들 중에 미칠 수 있는 자가 없다."하였습니다. 이는 불의 기세가 바야흐로 강성한데 또 기름을 끼얹어 더 잘 타게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