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준(송나라) (문단 편집) == 후대의 기념 == * 송 이종 때 장준과 조정을 재상의 본보기로 삼고 장준을 소훈각의 24공신 중 한 명으로 삼았으며, 그의 그림도 소훈각에 그려져 있다. 이종 때 명신이었던 위지옹은 장준과 장엄을 기리기 위해 자암서원을 짓고 그의 작품을 찬양했다. 순희 연간에는 장준의 고향인 사천 면죽에 진덕당(進德堂)을 짓고 장준에게 제사를 지냈다. 남송 후기에 송정은 한중에 장준사를 지었다. 한주(지금의 쓰촨 광한)에도 '삼현당'이 세워져 양식, 우문지소와 장준을 기렸다. * 원나라 때 광록대부 조세연이 장준의 고향인 면죽(栻竹)에 봉급을 기부하여 서원을 지었는데, 장준이 자암선생이라 하여 완공된 후 '자암서원'이라 칭하였다.[* 주로 장식을 기리기 위해 지은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 1388년 명 태조 [[주원장]]은 고금의 공신 37명을 취하여 역대 제왕묘를 배향하였는데, 그 중 장준이 있었다. * 명 성조 [[영락제]]는 영락대전 국조충전에 그의 행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 명 영종 때 장준의 후손들에게는 부역을 면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 가정(嘉栻) 3년(1524년), 명(明) 세종(世宗) [[가정제]]가 조서를 내려 장준 부자의 묘를 복원하고 '장준사(張俊祠)'를 칙건하고 '남헌서원(南軒書院)'을 지었으며, 현판을 하사하여 그 묘소를 '관산'으로 명하였고, 장준, 장양 부자의 묘와 면죽대백림 장준 부 장함묘 두 곳을 국가사전에 포함시켰다. * 청나라 순치 초년, 장준을 비롯한 41명의 역대 공신들이 여전히 제왕묘에 배향되었다가 순치 17년(1660년)에 파사된다. * 청 [[건륭제]] 시기인 1746년 호남성에서 양석준(楊錫绂)이 도사아문 구방에서 성남서원을 복원한다. * 가경 25년(1820), 순무좌보는 묘봉의 옛 터에 다시 짓고 봉우리에 남헌부자사를 세웠는데, 이전에는 문성각(文星閣)이었다. 이후 도광제는 '여택풍장(泽澤風長)'이라는 현판을 세웠다. * 동치 8년(1869년), 청 황실은 장준과 장식의 묘를 재건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