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지연 (문단 편집) == 기타 == * 장지연이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주장이 있으나 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장지연은 없다. 다만 [[친일인명사전]]에는 있다. 친일인명사전의 등재 기준을 보면 이유를 알 수 있는데 장지연은 친일반민족행위자로서 등재된 것이 아닌 부일 협력자라는 면에서 등재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의 선정에서는 제외되고 친일인명사전에는 선정되었다.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된 인물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선정한 친일인물과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선정한(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된) 인물은 동일한지 궁금합니다.''' 만약 동일하다면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선정한 친일인물을 기반으로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한것인지 궁금합니다. >답변: >동일하지 않습니다. '''위원회는 죄질이 무거운 반민족행위자를 선정대상'''으로 한 반면 연구소는 반민족행위자는 물론 '''부일협력자까지 대상에 포함시켰습니다.'''[[https://www.minjok.or.kr/archives/63805|#]] * 2009년 9월 15일에 위암장지연선생기념사업회에서는 장지연이 말년에 시베리아에서 의병을 지휘했다는 일본 외무성 문서를 공개하였다.[[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090416/8720863/9|기사]]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일본 총영사가 1921년 5월 5일 일본 외무대신에게 보낸 '불령단관계잡건 시베리아' 편에 의하면 장지연이 '경성 매일신보 기자였던 자이지만 김경천의 초청에 응해 도래했다. 주우찌하에 있으면서 의병을 지휘하고 있다고 한다'고 기록했다. 이에 따라서 그가 부일 협력을 했으나 말년에 다시 독립운동가가 되었고 친일파로 단정짓기 어렵다는 학계의 의견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말년을 취생몽사했다는 기록과 증언들도 존재하고 있기에[[http://m.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95798.html|기사]] 이는 심층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 장지연의 묘소는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현동(마산합포구)|현동]]에 있다. 말년에 [[마산]]에 거주했기 때문이다. [각주] [[분류:1864년 출생]][[분류:1921년 사망]][[분류:상주시 출신 인물]][[분류:상장군계 인동 장씨]][[분류:언론인]]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