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징궈 (문단 편집) === 귀국 === 장징궈는 이후 용기를 가지고 중국 대사관에 접촉해서 귀국을 요청했다. 안 그래도 [[쑹메이링]]을 필두로 국민당 내부에서는 장제스의 혈육인 장징궈를 소련에서 귀국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소련은 장징궈가 소련에 없다는 뻔한 거짓말까지 하면서 동시에 장징궈의 귀국을 종용했고, 장징궈는 중국 대사 장팅푸(蔣廷黻, 장정불)에게 자기는 집도 절도 없는 처지이니 귀국 비용을 대줄 것을 요청하면서 자신에게 소련인 아내와 아들이 있는데 괜찮냐고 물었다. 장제스의 혈육을 귀국시키는 큰 공을 세울 기회를 잡은 중국 대사가 장징궈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으니 돌아가라고 할 리가 없었고, 그가 다시 나타나지 않으면 자결을 할 심정으로 일을 추진했다. 하지만 1937년 상하이를 통해 귀국한 장징궈는 들어오자마자 괜히 귀국했다고 겁을 먹었다. 소련에서 아버지를 비난한 것 때문에 장제스가 벌을 줄 것이라고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장제스는 장제스대로 12년 만에 아들이 돌아오자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지만 동시에 12년 만에 만난 아들에게 반동 소리를 들을까봐 겁이 나서 아들을 만나지 않았다. 이것을 불안한 징조로 여긴 장징궈는 장제스의 비서 [[천리푸]] 등을 찾아가 하소연했고, 천리푸는 장징궈에게 아버지에게 자신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는 편지를 쓰라고 권했다. 장징궈의 편지를 받은 장제스는 천륜을 거스르면 안된다는 국민당 원로들의 충고에 따르는 척하면서 장징궈를 만나 절을 받았고 장징궈는 쑹메이링에게도 어머니라 부르며 절을 올렸다. 장제스가 장징궈에게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묻자 장징궈는 농업이나 공업 중 하나를 하고 싶다고 했고 장제스는 장징궈를 자신의 고향인 시커우 마을로 내려가게 했다. 이때 쑹메이링이 [[금일봉]]을 주어 그걸로 시커우 마을에서 잔치를 베풀고 아내와 다시 중국식 결혼식을 올렸다. 장징궈는 그 곳에서 다시 중국 고전을 공부하면서 소위 붉은 물 빼는 작업에 들어갔고, 장제스의 며느리와 손자들(소련인들이다.)에게 [[중국어]] 강습도 행해졌다. 얼마 후 [[중일전쟁]]이 터지자 장제스에게 가장 열악한 곳에 보내줄 것을 청했고, 장제스는 아들의 청에 크게 될 놈이구나 하고 기뻐했다. 1939년 생모 마오푸메이가 일본군의 공습에 죽자 피는 피로 씻을 것이라는 비문을 세웠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