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장징야오 (문단 편집) === 말년 === 1920년 [[안직전쟁]]이 터지면서 안휘군벌이 몰락하자 장징야오는 재빠르게 [[장쭤린]]의 [[봉천군벌]]에 가담하였다. 그리고 1922년 [[1차 직봉전쟁]]에서 [[우페이푸]]와 [[차오쿤]]의 [[직예군벌]]이 승리하자 장징야오는 다시 직예군벌에 붙었으나 1924년 [[2차 직봉전쟁]] 중 3로군 총사령관 [[펑위샹]]이 장쭤린과 결탁하여 [[북경정변]]을 일으키자 펑위샹에게 체포되었으나 곧 석방되었다. 이후 [[장쭝창]]이 지휘하는 직로연군에 들어가 2군 군장을 지냈으며 1926년 장쭤린에 의해 2군단 부사령에 임명, [[국민혁명군]]에 맞서 싸웠으나 패하여 1928년 [[관동주]]로 도주했다. 1932년 [[만주국]]으로 망명한 장징야오는 1933년 평진 2집단군 총사령에 임명되어 본격적으로 한간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33년 [[열하사변]]이 개시된 이후 관동군 부참모장 [[이타가키 세이시로]]는 화북의 장제스 정부를 배제하기 위해 반장파 군벌에 대한 포섭공작을 펼쳤는데 이때 관동군과 결탁한 것이 우페이푸의 부하 백견무, 서북군벌 [[스여우싼]] 그리고 장징야오였다. 장징야오는 관동군으로부터 공작금 30만원을 제공받은 후 베이핑에 거주하면서 일본군을 위해 각종 공작활동을 하였는데 이에 분노한 [[남의사]]에서 암살자를 보낸다. 결국 장징야오는 1933년 5월 8일에, 톈진 동교민항의 육국호텔[* 현재의 베이징 호텔.]의 욕실에서 목욕을 하다가 남의사의 암살자에게 총을 맞아 암살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