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장쭝창 (문단 편집) === [[국민당의 1차 북벌]] === [[국민당의 1차 북벌]]이 시작되자 쑨촨팡과 의형제를 맺어 서로 침범하지 않기로 약조하였고 적극적으로 쑨촨팡을 원조할 것을 주장했다. 11월 29일 장쭤린을 안국군 사령관으로 추대했으며 안국군 정부가 조직되자 안국군 부사령관 겸 직로연군 총사령관에 임명되었다. 쑨촨팡은 처음에 [[진윈펑]], [[우광신]] 등을 초청해 [[안휘군벌]]과 합작을 시도했으나 결렬되자 봉천군벌과의 합작에 매달렸다. 1927년 1월 쑨촨팡이 심복 양문개를 보내 합작을 청하자 장쭝창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린 녹림대학 마적과 출신이고 당신들은 사관학교나 육군대학을 나오지 않았소? 아무 말 말고 우리 같이 남군을 치러 갑시다! 쑨 장군에게 말 전하십시오. 우리 꼭 함께 하자고 말입니다." 이후 쑨촨팡을 원조하여 상하이에 병력을 진주시켜 노동운동을 가혹하게 탄압했지만 1927년 [[저우언라이]]가 주도한 3차 총파업 때 상하이에서 축출되었다. 1927년 6월 쑨촨팡과 함께 장쭤린을 중화민국 육해군 대원수로 추대했고 급기야 황제에 즉위하는 것을 건의하기도 했지만 장쭤린은 대원수 직위에 만족했다. 이후 2군단장에 임명되었다. 발해함대 사령관 필서징이 난징 국민정부에 투항하려 하자 총살하였고 후임 사령관 오지형도 총살시켜버렸다. 공산당원 [[리다자오]]가 체포되자 그의 처형을 강경히 주장하여 총살하게 만들었다. 1927년 말에는 아예 벽운사에 안치된 쑨원의 시체를 없애버리자고 주장했으며 벽운사를 찾아 쑨원의 시체에 삿대질해대며 욕을 퍼부어댔다. 이 소식을 들은 장쉐량이 장쭝창을 불러 크게 호통쳐서 쑨원의 시체가 훼손되는 일을 막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