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충체육관 (문단 편집) === 1기 (1955~2012)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infra.seoul.go.kr/jangchung_05_02.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Jangchung.jpg|width=100%]]}}} || ||<-2> 리모델링 전 || 1955년 6월 23일 육군체육관으로 개관했다. 개관 당시에는 노천체육관으로 대한민국 최대 규모를 자랑했던 체육관이었다. 이후 1959년에 서울시가 인수하여 운영을 맡았고, 1963년에 본격적인 경기장으로 개보수했다. 장충체육관은 서울시의 자금을 바탕으로, [[건축가]] [[김정수(건축가)|김정수]]에 의해 설계되었으며, 구조설계 및 건축설계는 [[건축가]] [[최종완]][* 이후 과학기술처 장관을 역임하였다.]이 맡아, [[삼부토건]]에서 건설한 '''대한민국 국민이 직접 설계를 하고 대한민국 기업이 직접 만든 대한민국의 첫 돔 경기장'''이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3021500099205014&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73-02-15&officeId=00009&pageNo=5&printNo=2138&publishType=00020|참고 기사]]) 총 공사비가 당시 돈으로 9,200만원이 사용 되었다. 보수하기 전 이곳은 육군체육관으로 존재하며 경기장으로 기능은 했지만 지붕이 없는 노천체육관으로 경기가 펼쳐지는 형태였다. 새롭게 실내체육관으로 탄생한 이후에는 국내의 많은 행사가 펼쳐지면서 역사적인 장소로 기능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필리핀]]의 기술 및 자금 지원으로 지어졌다는 낭설이[* 웬만한 대학 교수들, [[이원복]] 교수의 2006년작 학습만화 <[[가로세로 세계사]]> 2권은 물론이요, '''[[이명박]] 전 대통령'''마저도 이걸 사실로 알고있었다. 2011년 11월 20일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를 방문한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필리핀 주재 한국 교민들 앞에서 "우리 서울을 대표하는 건물이 광화문에 있는데 미국 대사관 건물과 바로 옆 문화체육관광부로, 미국 원조에 의해 필리핀 건설회사가 지었다. 한국의 건설회사가 지을 자격이 없어서 필리핀 건설회사가 와서 지었다"고 말했다.[[https://news.v.daum.net/v/20111120230303571|#]] 이렇듯 기성세대라면 지위에 상관없이 거진 100%가 잘못 알고 있는 루머이다.] 당시부터 현재까지 공공연히 돌아다니고 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자금지원, 설계[* 장충체육관의 직경 80m 대형 철골돔 건설이 당시 한국의 기술 부족으로 짓기 힘들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당시 한국 기술로는 난공사였던 것이 맞다. 그래서 미국에서 건축 기술을 수학하고 귀국한 건축가 최종완에게 이 부분의 설계를 맡긴 것이다. <이윤석, 정인하, 2003년 10월 24일-2003년 10월 25일, 1950-60년대 한국건축의 기술적 담론에 관한 연구, 대한건축학회논문 23권 2호, 659쪽 참조>], 건설 모두 국내 기관과 기술진에 의해 지어졌다. 사후 기술자문 및 감리는 국내 뿐만 아니라 일부 벡텔사 등 미국업체에게도 받았던 사실이 있으나, 이것 역시 필리핀과는 상관이 없다.[[https://www.riss.kr/search/detail/DetailView.do?p_mat_type=be54d9b8bc7cdb09&control_no=8f4667ee5b61b61c|논문 32, 44쪽 참조]] 그 사실은 [[http://www.kaah.or.kr/board/board_view.jsp?ncode=a003&num=94|이 링크]]에서 확인 가능.[[http://srchdb1.chosun.com/pdf/i_service/pdf_ReadBody.jsp?Y=2005&M=08&D=19&ID=0508190207|#]][* 조선일보 정정보도] 필리핀은 기업 단위로 한국에 건물을 '''지은 적도 없고, 지을 수 있는 역량과 기술도 없었다. '''당시 필리핀은 자국의 건축물을 지을 때 미국 기업에 의뢰하는 게 당연했던 시절이었다.[* Nation, 1986.4.5 'Minority Report' p478] 장충체육관을 설명하는 영문 페이지에서도 이같은 잘못된 정보를 기술하는 경우를 빈번하게 볼 수 있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 언론인들과 필리핀노동자들이 위와 같은 낭설을 듣고 세계로 퍼트리고 있는 중이다. [[https://www.koreatimes.co.kr/www/opinion/2023/06/137_282685.html|#]] 1966년 [[김기수(권투선수)|김기수]]의 한국 최초의 복싱 세계챔피언 등극, [[김일(프로레슬러)|김일]]이 이끌던 한국 [[프로레슬링]]의 전성 시대 역시 이곳에서 펼쳐졌다. 그 후에도 잠실 지역에 [[잠실실내체육관]]과 [[서울특별시교육청 학생체육관]]이 들어서기 전까지 국내를 대표하는 체육관으로 기능하며 대형 공연, 각종 체육 행사가 열렸다. 특히 정치적으로는 유신 개헌 이후의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대한민국 제4공화국|제4공화국]] 헌법이 발효되던 시절인 1972년부터 1980년까지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8차 개헌 이후인 1981년에는 대통령 선거인단이 투표·선출했다.] 세 대통령이 선출된 곳으로 일명 '[[체육관 선거]]'의 그 '체육관'이 바로 이곳이었다.[* 다만 취임식은 박정희와 최규하만 장충체육관에서 했고 11·12대 대통령이 된 전두환은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취임식을 진행했다.] 1980년대 이 경기장에서 주로 펼쳐졌던 경기는 [[씨름|민속씨름]]과 [[배구/한국 세미프로|대통령배 배구대회]]와 [[농구대잔치]] 등이었다.[* 훗날 대통령배 배구대회는 한국배구 슈퍼리그로 이름을 바꾼 뒤 서울지역 경기 장소를 잠실학생체육관으로 옮겼고 농구대잔치 역시 잠실학생체육관과 [[KSPO 돔|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등으로 개최 장소를 옮겼다.] 특히 씨름계는 장충체육관을 '씨름의 성지'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1983년 [[이만기(체육인)|이만기]]가 초대 천하장사에 등극했던 제1회 천하장사 씨름대회 이후 수많은 대회가 이곳에서 주로 열려서[* 1983년 제1회 천하장사 씨름대회 이후 그동안 열린 역대 56차례의 천하장사 씨름대회 중 10차례가 장충체육관에서 열렸다. 특히 1회 대회부터 6회 대회까지는 모두 장충체육관에서 열렸는데 이 당시 씨름의 인기는 당대 최고의 인기 스포츠였던 [[KBO 리그|프로야구]]에 버금갈 만큼 뜨거웠다.] 그런 별명이 붙었다. 이외에도 [[1986 서울 아시안 게임]]과 [[1988 서울 올림픽]] 때는 종목별 경기가 이 체육관에서 열렸다. 장충체육관은 19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큰 물체의 부피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장충체육관의 몇 배'라는 관용적 표현이 쓰일 만큼[* 비슷한 용례로 부동산 면적을 나타내는 관용적 표현인 '[[여의도]]의 n배'가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실내경기장으로 명성이 드높았다. 특히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덕택에 각종 대형 공연들이 이곳에서 열리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정동 문화체육관이 사라진 이후에 마련된 [[MBC]] 마당놀이 서울 공연이 이곳에서 열렸다. 초창기 [[e스포츠]] 팬들에게도 인연이 깊은 장소라고도 볼 수 있는데 [[2001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2001 SKY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2002 NATE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하나포스 센게임 MSL]], [[Spris MSL]] 등의 [[온게임넷 스타리그]]와 [[MSL]][* 이쪽은 아예 여러 대회의 결승전을 '[[챔피언스 데이]]'라는 이름으로 한 번에 모아서 연 적도 있다.]의 굵직한 결승전들이 연속으로 이 곳에서 개최되었고, [[팀리그#s-2.1.3|LG IBM MBC GAME 팀리그]], [[팀리그#s-2.1.4|Tuscon MBC GAME 팀리그]], [[SKY 프로리그 2005 그랜드 파이널]], [[신한은행 위너스 리그 08-09]] 등의 팀단위대회 결승전들도 이 장소에서 개최되었을 정도로 [[올림픽공원(서울)|올림픽공원]], [[광안리해수욕장]], [[인천삼산월드체육관]], [[염주종합체육관]], [[EXCO]], [[BEXCO]], [[사직실내체육관]], [[잠실실내체육관]], [[서울어린이대공원]], [[서울특별시교육청 학생체육관]], [[KINTEX]], [[COEX]] 이전까지 야외 e스포츠 행사의 메카로 여겨졌던 장소였다. 2004년 2월 14일과 15일에는 [[스모]]를 공연 형식으로 열었다.[[https://mnews.joins.com/article/296561|당시 기사]] [[무한도전]]과도 관련이 깊은데 [[레슬링 특집 WM7]]과 텔레파시 특집이 바로 여기서 한 대표적인 특집. 이후 [[한국여자프로농구]]와 [[V-리그]] 초창기 중립경기 구장으로 활용됐고 V-리그에 서울 연고권이 개방된 후에는 [[서울 우리카드 위비|서울 우리캐피탈 드림식스]]와 [[GS칼텍스 서울 KIXX]]의 홈구장으로 변모했다. 근처에 [[흥인지문]](동대문)과 그 일대 대형상가가 있어 교통이 늘 [[헬게이트]]나 다름없는 지역이지만, [[서울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이 있어 대중교통 접근은 상당이 좋다. 아니, 애초에 [[흥인지문]] 옆에 있다는 걸 생각하면 최적의 입지조건을 자랑한다. --이럴수록 [[동대문운동장|성동원두의]] [[동대문야구장|유서깊은 두 구장]]이 없어진 게 더욱 더 아쉬워진다. 나름 스포츠 컴플렉스인데. 아오(...)-- 한편, 리모델링이 끝나면서 동대입구역 5번 출구로 연결통로를 만들었다. 여담으로 장충체육관이 [[대한민국]] [[배구]]의 성지 역할을 했지만 실제로 이곳에서 뛰던 배구선수들은 상당한 불편을 호소했다고 한다. 메인 조명이 코트 한가운데에 걸려 있기 때문에 토스해서 올라온 볼을 때리려고 하면 [[정수빈|조명에 공이 가려져서]] 볼을 못 때리는 상황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어느 정도냐면 2011-12시즌에 [[네맥 마틴]]이 서브 칠 때 앤드라인 한참 뒤에서 서브를 때릴 정도다.] 게다가 사이드라인과 엔드라인 여백이 부족했기에 국제 경기를 치를 수준도 아니었다고 한다. 이는 장충동 출신이자 장충체육관에서 성장한 세대인 [[김상우(배구)|김상우]] 前 [[서울 우리카드 위비]] 감독과 '배구 중계의 신'으로 불리던 허주 前 [[KBS]] 아나운서가 아래 링크된 동영상에서 회상한 바 있다. [[동국대학교]]는 입학식을 여기에서 진행한다![* [[고려대학교]]도 과거에는 여기서 입학식을 했다.] 아마도 똑같이 [[동대입구역]]에서 가까워서인 듯. --동대입구역은 둘째치고 동국대 바로 앞이 장충체육관이니(...)-- 다만 2014학년도 입학식은 리모델링 관계로 만해광장에서 진행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