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태완 (문단 편집) === 사망 === 2008년 [[폐암]]으로 [[수술]]을 받았다. [[폐]]를 3분의 1이나 잘라냈지만 수술은 잘 되었고, 이후 <12.12 군사 반란>이라는 책을 쓰고 있었다고 알려졌으나 2010년 7월 26일 향년 78세에 숙환으로 사망했다.[[http://www.hani.co.kr/arti/society/obituary/432279.html|#]] 그런데 장례식장에 12.12 당시 장태완을 배신한 전두환 최측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55&aid=0000186296|장세동이 방문]]했다. 위 영상에도 나오지만 [[장세동]]은 당시 수경사 30경비단장으로서, 장태완 장군의 직속 부하였다. 장태완 장군이 비록 수경사령관에 취임한지 한 달여밖에 안되었다고는 하나, 직속 상관과 부하 사이에는 대개 부자지간의 정을 나누는 것이[* 영관급 위로 올라갔을 경우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물론 그 이전 계급에서는 무한한 쪼인트와 싸닥션이 있었다.] 한국군이다. 제3공수여단장 [[최세창]] 준장이 직속 상관인 특전사령관 정병주 소장의 체포를 그토록 망설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이를 두고 신군부 인사, 장태완 前의원에 '화해의 손길'이라는 타이틀의 기사가 나기도 했다.(...) 그래도 다른 신군부 인사들은 대부분 안 간 걸 생각하면[* 하나회의 [[황태자]] [[이종구(군인)|이종구]] 전 국방장관이 조문을 하긴 했었다.] 그나마 염치가 있었던 모양이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ojsfile.ohmynews.com/IE001336055_STD.jpg|width=100%]]}}} || 사후 1년만인 2011년 또 신군부 관련 구설수가 생겼는데, 6월에 숨진 [[안현태]] 前 청와대 대통령경호실장이 [[국립대전현충원]]에 묻혔기 때문이다. 묻힌 것도 웃긴데 하필이면 안현태 전 대통령경호실장의 묘가 장태완 장군의 묘와 가까이 있었던 것. 안현태는 육군사관학교 제17기로 하나회 회원이었으며 [[허삼수]], [[허화평]], 김진영도 안현태와 육군사관학교 동기다. 또한 안현태는 전두환에게 충성을 다한 인물이라서 [[현충원]] 안장이 거론될 때부터 말이 많았다. 전두환의 비자금을 조성한 죄로 구속되면서 군 형법상 반란 수괴 혐의 등으로 먼저 구속된 전두환을 지칭하며 "이제 각하를 옆에서 모시게 되어 너무 기분이 좋다"고까지 말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그런 인물이 현충원에 들어가는 것이 옳은가 아닌가 논란 자체도 벌어졌고 5.18 구속부상자회가 서울 [[여의도]] [[국가보훈처]][* 현재는 [[세종특별자치시]]로 이전하였다.] 앞에서 안현태 전 대통령경호실장의 국립현충원 안장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다만 먼저 세상을 떠난 [[정승화]] 前 육군참모총장 묘 옆에는 쿠데타의 주역이었던 [[유학성]] 前 [[중앙정보부장]]의 묘가 있다.(...) 물론 유학성이 1997년에 사망했고 정승화 장군이 2002년에 작고했으니 국립현충원 측에서 정승화 장군의 묘 자리를 잘못 쓴 쪽에 가깝다. 그나마 장태완 장군처럼 신군부에게 맞섰던 [[강창성]][* 민주당계 정당에서 활약한 예로 신군부로부터 탄압받은 강창성 보안사령관도 동일. [[민주당(1991년)|민주당]]의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활동했고 지역구 선거에도 출마했었다. 그런데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통합민주당(1995년)|통합민주당]](꼬마 민주당 2기)이 [[김대중]]의 정계 복귀와 [[삼김]] 정치로의 회귀에 반대하면서 [[이회창]]의 [[신한국당]]과 합당을 선언해 한나라당 소속이 되었다. 2000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공천되며 재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전 보안사령관은 아예 국립묘지에 안장되지도 못했으니[* 이는 '금고 2년 이상 선고받은 자'는 안장 대상에서 제외하는 규정 때문이다. 사면은 받았으나 실형을 선고받은 신군부 인사들의 국립묘지 안장을 막으려는 취지에서 비롯된 법안이었는데 1980년에 신군부에서 탄압받는 과정에서 3년형을 선고받은 강창성 전 보안사령관도 여기에 해당되었던 것. 그런데 안현태 전 대통령경호실장이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면서 법안 적용 방식이 도마에 오르내리고 있다.] 장태완 장군이 국립묘지에 안장된 것은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