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합 (문단 편집) === [[제갈량의 북벌|제갈량의 1차 북벌]] === [[조예]]가 즉위하자 남쪽으로 보내 형주에 주둔하게 했다. [[사마의]]와 함께 [[손권]]의 별장(別將)인 [[유아]] 등을 공격했는데, 기구에까지 추격하여 교전해 이를 격파했다. 제갈량전에는 조예가 서쪽으로 장안을 진수하고 장합에게 명하여 제갈량을 막게 했고 제갈량은 마속에게 선두에서 제군을 이끌게 해 가정에서 장합과 더불어 싸우게 했다고 했으며, 곽회전에 따르면 촉나라 재상 제갈량이 기산에서 나와 장군 마속을 가정까지 파견하고, 고상은 열유성에 주둔하도록 했다. 조진전에 따르면 제갈량이 기산을 포위하자 남안, 천수, 안정의 3개 군이 모반하여 제갈량에 호응했다. 명제기에 따르면 조예는 이에 보병, 기병 5만 대군을 준비해 제갈량을 막았다. 우선 조예는 조진으로 하여금 관중의 병력들을 모두 도독하게 하고 제군을 지휘해 촉한의 장군 [[조운]]과 대치하고 있는 미(郿)에 주둔케 했다. 그리고 우장군[* 여기서 의문스러운 점이 좌장군이었던 장합이 갑자기 2차북벌의 공으로 정서거기장군이 되기 전까지 우장군이 된다는 것이다. 사방장군은 기본적으로 동급이지만 그래도 전장군이나 좌장군이 우장군이나 후장군보단 대우가 높게 치는 법인데 갑자기 이 시점부터 장합이 우장군으로 나온다. 정사 삼국지의 오기인지, 아니면 실제 인사배치가 그렇게 되었는지는 의문이다. 참고로 장합전에선 우장군이 되었다는 기술이 없다.] 장합을 서쪽으로 향하게 보내 제갈량을 막게했으며 명제 조예 자신도 2월 17일경에 장안에 도착했다. 장합전에 따르면 제갈량이 기산으로 출병하자 장합에게 특진의 지위[* 한관의, [[통전]]에 따르면 특진(特進)은 한나라 때 제도로 제후의 공덕이 뛰어나고 성대하며, 조정에서 추앙할때 관위 특진을 하사해 삼공의 아래로 두었다. 양한과 위, 진에선 가관(加官)으로 삼았다. 하급관리는 없었고 예문유취에 따르면 관품이 2로 황후의 부친이 대체로 이 관위였다고 한다.]를 더하고 제군을 이끌게 해 파견했고, 제갈량의 선봉인 [[마속]]을 가정에서 막게 했다.[* 혹은 '제갈량의 장수 마속과 가정에서 맞붙었다.' 해당 문장에 번역된 한자인 '拒'에는 '막다' 외에 '맞서다, 대치하다, 상대하다, 대항하다, 겨루다'의 뜻이 있다. 항거(抗拒), 거역(拒逆), 상거(相拒, 서로 대치하다, 서로 겨루다)등의 단어에 이런 뜻이 있다.] 한편 가정에 도착한 촉장 [[마속]]은 제갈량전과 마속전에 따르면 여러 부대로 구성된 대군을 이끌고 있었는데 가정에서 내린 명을 따르지 않고 군을 부적절하게 운영했다. 제갈량전과 [[화양국지]] 유후주지를 종합하면 마속은 제갈량의 절도, 명령을 어기고 거동(擧動)이 부적절하였다고 한다. 왕평전에 따르면 마속은 물을 버리고 산으로 올라갔는데 행동하기에 번잡하였으므로 왕평은 계속 선봉이었던 [[왕평]]이 여러 차례 옳은 도리, 규칙을 들어 반대했으나 마속이 이를 쓰지 아니해 받아들여지지 않아 가정에서 크게 패하였다 되어 있으며 장합전에 따르면 마속은 남산에 의지해 막고 (내려가) 아래의 성[* 약양성이라고도 불리는 가천정성으로 [[하후연]]도 장합과 함께 여기에 주둔하여 한수를 공격한 적이 있었다.]점거하지 않았다고 되어 있다. [[자치통감]]에서도 마속은 선봉으로서 제갈량의 절도를 어기고 행동거지가 번거롭고 요란했는데 물가를 버리고 산으로 올라갔고 내려와 성을 점거하지 않았다고 나온다. 장합은 그 급도(용수로)를 끊고 들이쳐서 공격하여 마속을 대파했다. 왕평전에 따르면 군사들은 모두 산산이 흩어졌으나 오직 [[왕평]]이 거느리고 있던 1천 명은 북을 울리며 제 자리를 지키니 위나라 장수 장합은 그곳에 복병이 있을까 의심하여 접근하지 못하였다.[* 각자 위치를 잃지 않고 북을 울리며 평정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 장합이 복병을 우려하여 공격하지 않았다. 훗날 4차 북벌 때도 제갈량과 사마의의 본대와 싸울 때 장합이 별동대로 왕평을 급습하나 왕평이 이를 막아내는 등 장합의 천적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이로 인해 가정을 잃게 되면서 3군의 호응에 힘입어 자신있게 막을 올린 1차 북벌은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고 촉군은 [[한중]]으로 퇴각하였다. 명제기에선 장합이 가정에서 제갈량을 쳐서 대파했다고 했고 조진전에서는 장합을 파견하여 마속을 공격했다고 했으며 곽회전에선 가정에 파견되었던 마속을 장합이 공격하였고, 곽회가 열류성에 주둔하고 있었던 고상의 진영을 공격하여 모두 격파시켰다고 되어 있다. 열류성에서 가정을 백업하던 [[고상]]도 가정이 무너지고 옹주 자사 [[곽회]]에게 진영이 격파당했으며, 기산이 무너지자 기곡에서 불리한 가운데 조진의 대군을 상대하며 [[조진]]을 붙들어 매던 [[조운]]도 패배해 퇴각했다. 장합전에 따르면 남안, 천수, 안정군이 모반해 제갈량에 호응했었는데, 장합이 이를 모두 깨뜨리고 평정했다. 조서를 내렸다. >적 제갈량이 파촉의 무리를 이끌고 나왔다 포효하는 범과 같은 군대를 만났도다. 식읍을 1,000호 늘려 예전과 합해 모두 4,300호가 되게 하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