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헌명숙황후 (문단 편집) === 황후 시절 === 유아는 황후가 된 이후에도 송진종을 도와 정사에 관여하기도 했고 이런 저런 조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유아를 반대하는 세력은 많았다. 가령 개봉부의 유종에게 진종이 유아와 성씨가 같으니 승직시키고 봉호를 내리겠다고 하자 유종은 황후와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 받지 않겠다 하고 거절했다.[* 뒷날 유종은 수렴청정을 하게 된 유아가 다시 제안을 하지만 거절하고 스스로 좌천의 길을 택한다.] 그러나 유아를 따르는 세력도 많았는데 정위 외에도 [[전유연]] 등이 유아의 심복이었다.[* 전유연은 [[오대십국시대]] [[오월(오대십국시대)|오월]]의 마지막 군주였던 [[전홍숙]]의 아들로 송에 투항해 학문으로 이름을 날리던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누이를 유아의 전 남편 공미(劉美)에게 시집보내 사돈 관계를 맺고 정위와도 사돈지간이 되었다.] 천희 4년(1022) 진종이 병에 걸리자 유아가 대권을 쥐고 직접 국사를 보게 되었다. 그러자 [[구준(북송)|구준]]과 양억 등은 유아가 정사에 참여함에 불만을 품었다. 진종이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할 줄 알고 태자인 조정을 감국으로 봉하려고 했는데, 구준은 진종에게 태자를 감국으로 임명하게 하고 정위를 내쫓아 그 자리를 양억이 대신하게 해야 한다고 청했다. 그런데 구준이 술김에 흘린 말이 정위의 귀에 들어서고 오히려 구준이 파면되었다. 그러자 황후 반대파인 주희정은 환관인 양승훈과 함께 유아를 폐위하기로 하고 일을 모의했는데, 양승훈이 이 일을 밀고하여 주희정은 참수되고 구준은 도주사마로 좌천되는 등 황후 반대파는 박살나고 말았다. 이 정쟁의 결과로 정위는 재상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얼마 후 그와 또다른 재상인 이적 사이에 문제가 벌어졌다. 이적은 원래 유아가 황후 자리에 오르려고 할 때 가장 극렬하게 반대했고, 유아가 황후가 된 후에도 사사건건 대립하여 유아와는 대립관계였다. 정위가 정무를 볼 때 황후 반대파인 또다른 재상 이적을 제쳐두고 독단으로 결정을 내리자 이적은 진종을 찾아가 둘 중 한 사람은 조정을 떠나야 한다고 간했고, 이 이야기를 휘장 뒤에서 엿들은 유아는 ~~소원대로~~이적을 파면시켰다.[* 나중에 진종이 옆에 있는 신하들에게 "구준이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데 무슨 일이 있느냐?"라고 물었지만 그 자리에 있던 신하들은 구준이 쫓겨났다는 말을 하지 못했고 진종이 임종을 앞두고 구준과 이적에게 대사를 맡기라고 분부할 때도 신하들은 그 둘은 조정에 없다고 말하지 못했다. 유아가 이미 막강한 권력을 쥐었기 때문이었다.] 진종의 병은 호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결국 진종은 신하들을 승명전에 모아 놓고 태자인 조정에게 황위를 물려주고 유아가 태자를 보좌해 정사를 처리하게 하라고 선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