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혜황후 (문단 편집) == 생애 == 양씨는 984년에 양지엄(楊智儼)의 딸로 익주(益州) 비현(郫縣)에서 태어났다. 995년에 진종의 궁에 입궁하였고, 뒤에 재인, 첩여로 진봉되었다. 양씨는 진종이 총애하는 [[장헌명숙황후|유씨]]와 친분을 맺어, 유씨의 신임을 받았다. 진종은 유씨를 총애하였지만, 유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은 없었기에, 황후로 책봉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던 찰나, 1010년에 [[장의황후|신비]]가 황자 조수익(趙受益)을 낳았다. 유씨는 황자 수익을 진종의 묵인 하에 신비의 아들이 아닌 자신의 아들로 공표하였고, 유씨를 황후로 책봉할 명분을 얻은 진종은 유씨를 황후로 책봉하니, 이가 [[장헌명숙황후]]이다. 유씨가 황후가 된 이후, 양씨는 첩여에서 완의를 거쳐 숙비가 되었다. 유씨는 자신의 아들이라고 공표한 조수익을 자신이 가장 신임하는 숙비 양씨에게 맡겼고, 양씨는 유 황후와 함께 황자 조수익을 양육하였다. 조수익은 1018년에 황태자로 책봉된다. 1022년, 진종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황태자가 제위에 오르니, 이가 북송의 제4대 황제인 [[인종(송)|인종]]이다. 이때 인종은 아직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장헌명숙황후가 태후가 되어 수렴청정을 하였고, 양씨는 황태비가 되었다. 1033년 유 태후가 임종하면서 유조를 내려, 양씨는 황태비에서 황태후가 되고, 보경태후(保慶太后)라는 존호를 받는다. 황태후가 된 양씨는 1036년까지 태후로 지내다가 세상을 떠나고, 장혜황후(章惠皇后)라는 시호를 받았다. 이는 인종이 양씨를 양어머니 자격으로 추존한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