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재입대 (문단 편집) == 타의에 의한 재입대 == 자발적으로 재입대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의사에 반해 재징집당하는 것. 근대 이후 군 복무가 체계화되면서 군입대는 일생의 한 번뿐이라는 인식이 많이 남았지만 조선시기까지만 해도 한참 바쁜 농번기에도 군에 끌려가곤 했던 서민들이 왕왕 있었다. 그러나 당대에도 양반층에겐 군입대가 형벌로 취급되었는지, 정권에 찍힌 양반들은 재입대를 벌로 받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로 <심생전>의 작가인 이옥을 들 수 있다. 정조 시기 문체반정 이후 형벌로 군입대를 선고 받아 3번이나 군복무를 해야했다.] 근대화가 된 이후 드문 일이지만, 정보화 기술이 발달되지 못한 과거에는 '''행정착오 등의 문제가 발생'''하여 정말 이런 사태에 처하는 사람도 있었다. 1950년대 [[6.25 전쟁]]이 발발하여 끌려가다시피 전쟁에 참가했는데, 입대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서, 다시 군대를 가야 했던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북파공작원]]들 같은 경우 임무특성상 거의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끌려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과거에는 지금과 같은 행정의 틀이 제대로 잡혀있지 않아 이런 경우가 많았으며, 돈 많은 집 아들 대신 군대를 가느라 돈을 받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재입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조선]] 시대에는 아예 돈 받고 대신 군대 가주는 걸로 먹고 산 사람도 더러 있었다. 심지어 판례에 보면 형제끼리 대신 군대 가주다가 걸려서 재판받은 경우도 있다. 대신 군대에 가준 형은 대법원에서 무죄[* 대법원 1974. 7. 23, 74도1399.]가 나왔다. [[한국전쟁]] 참전용사 중 군필+참전용사라는 입증이 안되어 휴전+전역 후 또 끌려간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전쟁 중이라 관련 서류가 손망실되는 경우가 잦았고, 급박한 상황에 군번도 없이 입대해 참전 기록조차 입증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으니 당연할 것이다. 허나 그 당시는 전후 나라가 쑥대밭이라 너나할 거 없이 생활고에 시달리던 때였고, 당시 기준으로는 삼시세끼 밥 주는 군대가 사회보다 크게 나쁜 상황은 아니었던 터라. 마땅히 먹고살 거리도 못 찾았는데 오라고 하니 일단 입대하고 보는 경우도 없진 않았다. [[21세기]] 진입을 딱 2년 남겨둔 1999년에는, [[Y2K 문제]]로 인해 이미 군대를 전역한 20대의 남성들을 모두 미필자로 분류해버려서 순식간에 수백만 명의 미필자가 쏟아지는 상황으로 인한 재입대 대란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하는 괜한 우려도 나왔다. 다행히 2000년이 되어도 이들의 재입대 사태는 터지지 않았다. 해당 문서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애당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말년 병장+갓 예비역들이 꾸는 최악의 '''[[악몽]]'''이자 [[민방위]]가 끝난 사람들도 [[군대 꿈|이런 꿈]]을 꾸게 되면 간담이 서늘해진다. '''스스로''' 입대한 사람들은 아무래도 일반 징집병 출신들보다는 악몽의 강도가 덜하다. 하지만 병역의무의 일환으로 단기복무만 하고 전역한 장교, 부사관 출신들도 군대 꿈의 악몽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다. 조종사의 경우 의무복무기간만 채워 소령, 중령급에서 전역하여 민항으로 진출한 경우에도 마찬가지. 원, 상사급 부사관이나 영관급(민항 진출 조종장교 제외), 장성급 장교 출신들은 군에 오래 있었던 사람들이라 그런 현상이 덜하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