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재평가/목록 (문단 편집) === [[역주행(노래 용어)|음악]]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역주행(노래 용어))] 한편 클래식에서도 많은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다만 [[바로크]] 음악들처럼 복권된 곡이나 작곡가들의 경우는 역주행에 판단된다고 여겨 여기에서는 그 외의 재평가, 특히 '''부정적인 평가를 분명히 받았고 나중에 긍정적인 평가를 받게 된 경우'''에 (혹은 정반대에) 해당하는 것들만 소개하겠다.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모차르트]]의 [[레퀴엠(모차르트)|레퀴엠]], 쥐스마이어판 -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모차르트의 죽음으로 인하여 미완성으로 남겨졌고 그의 제자 쥐스마이어에 의하여[* 또다른 제자 아이블러의 기여도 있으나 단 두 마디에 불과하다.] 완성되었다. 현대에 들어 음악학자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쥐스마이어 판이 완전하지 않다고 여겼고, 그로 인하여 수많은 음악학자들이 [[내가 해도 이것보단 잘하겠다|이를 손 보겠다고 나섰다]]. 그 결과 수많은 판본들의 난립이 발생하였다. 하지만 그 어떤 판본도 쥐스마이어 판보다 좋은 평을 듣지 못했고, 오히려 쥐스마이어 판을 돋보이게 하기만 하였다. 결국 거꾸로 쥐스마이어는 '''모차르트의 미완성 걸작을 완성시킨 천재'''로 재평가를 받기에 이른다. 사실 쥐스마이어는 모차르트의 수제자 중 하나였으며, 무엇보다도 레퀴엠의 미완성된 부분에 대한 모차르트의 지침을 직접 들은 사람들 중 하나였기에, 모차르트 사후 200여년이 흐른 현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보다 레퀴엠을 제대로 완성시키기에 훨씬 적합한 인물이었음이 어찌 보면 당연할 것이다. * [[안토니오 살리에리]] - 일명 모차르트를 독살시킨 주범으로 오해를 받았다. 사실 모차르트의 의문스러운 죽음에 수많은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의심을 받았으며 살리에리는 그 중 한 명에 지나지 않았으나 이게 사그라들기는커녕 오히려 증폭되었다. 마침내 [[알렉산드르 푸시킨|푸시킨]]의 희곡 [모차르트와 살리에리]가 나오면서 살리에리의 독살설이 자연사를 제외하고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경우로 부상하였다. 거기에 이 희곡이 그 유명한 영화 [[아마데우스(영화)|아마데우스]]에서도 상당 부분 채용되어[* 사실 피터 셰퍼가 쓴 동명의 [[아마데우스(희곡)|희곡]]을 원작으로 했다는 하는 게 더 정확하다. 심지어 푸시킨의 희곡에서는 아예 살리에리가 직접 독살을 하는 반면, 셰퍼의 희곡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모차르트의 죽음을 종용한 방식을 썼다는 차이도 있다. 하지만 셰퍼의 희곡도 결국 푸시킨의 희곡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거의 정설 취급까지 이르게 된다. 그것도 모자라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에게 평생 열등감을 느끼며 살았다는 설정까지 붙었다. 결국 [[살리에리 증후군]]이라는 단어까지 생겼다. 하지만 [[안토니오 살리에리|살리에리]]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후대의 많은 연구를 통하여 다시 드러난 실제와는 완전히 다른 게, 우선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에게 열등감을 느끼기는커녕 그럴 만한 별 껀덕지도 없었다. 오히려 모차르트의 개차반스러운(...) 성격 때문에 그를 싫어한 거였을 뿐이었다. 거기다 당대에도 살리에리는 널리 인정 받는 음악가로 남부러울 게 없었다.[* 오히려 모차르트가 살리에리에게 누명을 씌우는 언행을 여러 번 했다. 다행히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푸념하듯이 한 말이라 별 일 없었을 뿐이지...] 그렇다고 둘이 적대적이었냐고 하면 그것도 아닌 게,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는 심지어 서로 협업을 하기도 했다. 21세기에 들어 [[http://www.bbc.com/news/world-europe-35589422|두 사람이 공동으로 작곡한 곡]]이 발견되기도 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거기에 모차르트의 곡을 살리에리가 지휘를 해주고 격찬을 해 주기도 하였으며, 그것도 모자라 모차르트 사후 그의 제자들과 아들들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문득 모차르트는 그럼 살리에리한테 뭐 해 줬나 하는 의문이 든다-- 심지어 [[루트비히 판 베토벤|베토벤]], [[프란츠 슈베르트|슈베르트]], [[프란츠 리스트|리스트]], [[카를 체르니|체르니]] 등 음악사에 있어서 거목들의 스승이기까지 했으니, 그의 곡들이 현대에 이르러 많이 잊혀진 것을 뺀다면 음악사에 있어서 그의 중요성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그래도 모차르트의 중요성에 많이 밀리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처음에 좋은 평가를 받았다가 후대에 이르러 (괴소문에 의한 것이었지만) 이상한 방향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고 더 많은 정보가 알려진 지금에 이르러 다시 원래대로의 좋은 평가를 받게 된, 그러니까 이중의 재평가를 받게 된 경우로, 다른 사례들을 통틀어도 흔치 않은 케이스이다. * [[루트비히 판 베토벤|베토벤]]의 [[대 푸가]] - 원래 현악 사중주 13번의 마지막 악장이었던 곡이다. 그런데 규모가 다른 악장에 비하여 너무 크다는 것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도 베토벤이 말년에 추구하던 대위법의 극한을 달리는 작품이라 당대 사람들의 귀엔 괴작으로밖에 안 들렸고, 베토벤의 기대와는 달리 사람들에게 철저히 외면받았다.[* 그 와중에 베토벤은 청중들의 그런 반응에 심히 격분했다고 한다.(...)] 거기에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하여 이 거대하고 난해한 악장은 현악 사중주 13번 마지막 악장이 아닌 별개의 다른 곡으로 분리되어 소위 '''대 푸가'''라고 불리우는 곡으로 출판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너무나도 난해한 곡이다 보니 베토벤 사후에도 이 곡을 제대로 평가하거나 이해한 사람은 19세기를 주름잡던 음악가들을 포함하여 아예 없었다.[* 사실 현대에도 클래식 음악 전공자나 덕후가 아닌 이상 이 곡을 듣고 나서 듣기 좋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고전파 시대에 쓰여진 곡인 주제에 현대음악 뺨칠 정도로 기괴하게 들릴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XAgdd2VqLVc|직접 들어보자]].]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서야 [[아르놀트 쇤베르크|쇤베르크]]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스트라빈스키]]의 해석을 통해 이 곡의 재평가가 이루어졌고, 결국 대 푸가는 괴작 취급(...)에서 베토벤 최후의 걸작들 중 하나로 격상되기에 이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