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재한유엔기념공원 (문단 편집) === 안장자 특징 === || [youtube(WJm2OtWnaDE)] || || 영국군 한국전 참전용사 '윌리엄 스피크먼 빅토리아 훈장자(William Speakman Vc)' 안장식 || 안장자 모두가 6.25 전쟁 당시의 전사자나 순직자인 것은 아니며 참전용사가 아닌 사람도 있다. 전사자나 참전용사의 배우자가 원한다면 합장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잘 보면 알겠지만 [[영국]]과 [[영연방]]의 비중이 높은데, 영국에서는 태어난 고향뿐만 아니라 죽은 장소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전통이 있기 때문에 전사자를 고향이 아닌 전사한 땅에 안장하는 경우[* 다른 예로 [[영국 해군]]이 [[거문도 사건|거문도를 점령했을 때]] 사망한 영국 수병의 시신은 영국군이 철수할 때 이장해가지 않고 백여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거문도]]에 묻혀있다.]가 많다. 영국과 동질적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다른 [[영연방]]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튀르키예]]는 종교적 영향을 받아 이곳에 안장자가 많고,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의 경우, 유가족이 안장 여부를 결정했었다. 안장자/희생자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인 [[영국군]]은 명문에 총 1,177명으로 나와 있으며, [[주한영국대사관|주한 영국 대사관]] 문서에서 공식적으로 밝힌 자국군 6·25 전쟁 사망자 수는 1,109명으로 되어 있다. 인원의 차이는 실종자의 집계 여부, 기타 다른 이유로 송환되지 못한 경우, 위에서 언급한 휴전 후 사망한 경우의 집계 여부가 원인일 것이다. 군인이 아니라 취재차 한국에 왔다 순직한 기자를 안장시킨 사례도 있어 차이가 있다. [[미국]]은 제일 많은 전투병을 파병한 국가인데도 이 곳에 유해가 안장된 경우는 흔치 않다. 기본적으로 전사자의 시신을 전부 본국으로 보내서 장사지내는 문화[* [[이라크 전쟁]]이나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도 [[미군]]들은 전우가 전사할 경우 자신의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전우의 시신을 수습한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유해발굴단을 계속 보내 유해를 수습한다. 이러한 노력은 당시 전쟁터가 적들의 영토가 되어도 계속된다. 미국이 계속 북한 지역에서 전사한 미군 유해를 수습하려고 유해 발굴단을 보내고 싶다고 북한에 요구하는 것은 이러한 신념 때문이다.]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절대적인 수가 많아서 주 단위로 희생자가 참배의 벽에 기록된 곳은 미국이 유일하다. 그래서 한국전쟁 전사자들은 대부분 [[알링턴 국립묘지]][* 참고로 가장 높은 계급의 한국전쟁 중 미군 전사자는 [[월튼 워커]] 당시 중장(사후 1계급 특진으로 대장 직위 수여)이며 미국 알링턴에 안장되었다.]에 안장되었다. 대신에 미군 희망자[* 한국전쟁의 전사자가 아니라, 한국전에 참전했거나 한국에서 복무했던 유엔군 출신 미국인이 사망한 케이스]에 한하여 이곳에 모셔졌으나 이제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참전용사만 안장될 수 있다. 한국군 전몰자 가운데 국립현충원이 아닌 이곳에 묻힌 경우는 주로 미군에 배속된 [[카투사]]로 참전했던 이들이다. 이외에도 비전투원의 유해 11구와 무명용사(유엔군은 확실하지만, 소속 국가와 개인 신상을 알 수 없는 전사자)의 유해 4구가 안장되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