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골 (문단 편집) == 어원 == [[장지연]]이 쓴 만국사물기원역사(萬國事物紀原歷史)에서는 전골이라는 말이 [[전립]][* 氈笠 : 조선 시대에, 병자호란 이후 무관이나 사대부가 쓰던, 돼지 털을 깔아 덮은 모자]에 그릇을 뜻하는 골이 합쳐진 것이고 때문에 전립골이라고 불렸다고 설명한다. 전골을 해 먹는 용기가 꼭 싸울 때 쓰는 투구와 닮았기 때문이었다. 흔히 아는 투구가 아닌 전립과 같이 챙이 있는 형태의 투구다. 그래서 전쟁터에서 군인들이 투구를 뒤집어 음식을 해 먹던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장지연은 전골 그릇과 전골 유래에 관해 설명했다. 한편으로는 [[유득공]]이 쓴 [[경도잡지]](京都雜志)에서는 그릇의 모양이 마치 벙거지 모자 같아서 그 쇠그릇을 전립투(氈笠套)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전립투 그릇에 평평한 부분에는 고기를 굽고 움푹 들어간 부분에는 채소를 넣고 끓여 같이 먹기 시작했다고 전골 이름의 유래와 전골 요리의 유래를 설명했다. [[서유구]]가 쓴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서는 전골 요리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숯불위에 전립투 그릇을 올려두고 움푹 패인곳에는 파, 미나리, 무와 간장을 넣고 끓이며 가장 자리에는 얇게 저민 고기를 구워 채소와 국물, 고기를 같이 먹는 것으로 전립골 요리에 대해 설명한다. 조선 후기에 발행된[* 1800년대에 발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상주군청에 보관돼있던 요리책을 당시 군수였던 심환진이 필사하여 자신의 며느리에게 전해졌던 걸 계기로 알려진 요리책이다. 조선 후기 다양한 요리에 대해 잘 설명 되어 있는 책으로 평가 받는다.] 시의전서(是議全書)에서는 움푹 패인 곳에 간장뿐 아니라 여러 가지 양념으로 국물을 만들어 죽순, 낙지, 굴 등을 넣어 먹는다고 전골 요리의 발전을 설명한다. 즉 한국에서 전골은 전립골이라는 국물과 구이를 함께 먹는 형태의 요리였다. 하지만 전립투라는 그릇이 특수하고 보편적으로 쓰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에 사람들이 일반 냄비로 전립골을 해 먹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전골이 지금의 형태로 변했고 음식의 이름도 전립골에서 전골로 축약된 사실을 알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