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문단 편집) == 개요 == || [[파일:external/www.kdemo.or.kr/00747467_0001.jpg|width=100%]] || || 1991년 전대협 5기 출범식 당시 모습.[* 왜 무대의 걸개 그림이 "건설 '''전총련'''"인고 하니 당시 전대협은 그 이름처럼 6월 항쟁이라는 특수한 정세 하에서 각 대학 대표자들로 구성된 일종의 가설 조직이란 한계를 안고 있었던 터라, 실질적으로 대학생들을 포괄, 지도할 수 있는 대중 조직으로의 변모를 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총련은 향후 건설될 대중 조직의 가칭이었고 이 목표는 이후 [[한총련]]의 출범으로 달성된다.] || [[한총련]]의 전신으로 1987년부터 1993년까지 존재했던 [[학생운동]] 단체이자 총학생회 연합체. 약칭 전대협(全大協)이다. 대표적인 모토이자 [[슬로건]]은 '''구국의 강철대오'''. 전대협이 결성된 1987년에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단과대학 학생회장 당선자 전원이 NL계였고 이처럼 [[NL(정파)|NL]]계가 주축을 구성했다. 특히 학생운동의 최전성기였던 [[노태우 정부]] 시절에 전대협은 [[청와대]]와 주요 제도권 정당 다음의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주요 외신들로부터도 한국 사회의 변화를 주도할 단체로도 평가된 적까지 있을 정도였다. 1990년 <[[시사저널]]> 여론조사에서 전대협은 여당([[민주자유당]])과 야당([[평화민주당]])에 이어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59716.html#csidxe868bbc55b04da899adfff2e4da5194|한국을 움직이는 단체’ 3위]]에 올랐을 정도.[* [[현대그룹]], [[삼성그룹]], [[대우그룹]] 등 [[재벌]]이나 이들이 연합한 [[전경련]]보다 사회적 영향력이 더 크다고 평가됐다는 이야기다.] 사실 노태우 정부 기준으로 그간 한국사회에 변화를 일으켰던 굵직 굵직한 시위들을 대학생들이 주도한 경우가 많았기에 전대협도 원내에 직접적으로 진출한것은 아니지만 그 잠재력이 높게 평가된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