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단(전국시대) (문단 편집) == [[혜성]] 같은 등장 == 제나라는 [[제민왕|민왕]] 시절에 중원 최고의 강대국이었던 [[진(영성)|진(秦)나라]]와도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국력을 과시하였다. 당시 제나라의 병력이 [[호왈백만|호왈 30만]]이었다. 민왕은 제나라의 힘이 강한 것만 믿고는 오만해져서 이웃 나라들을 핍박했는데, 이에 참다 못하여 연, 진, 한, 조, 위 등의 5개국이 연합군을 결성하여 쳐들어왔다. 한나라와 위나라는 군사적인 부분에서 상대적으로 별볼일이 없었고 장수도 한참 부족했지만 다른 국가들은 쟁쟁했고[* 무려 진나라의 [[백기(전국시대)|백기]]와 조나라의 [[염파]]가 참전했다는 설이 있으나, 염파와 백기의 참전은 소설 《열국지》에 나오는 얘기다. 《사기》에는 총사령관인 악의 외에 어떤 장수들이 연합군에 참여했는지에 대해서는 이름이 나와 있지 않다. 다만 염파는 기원전 283년에 제나라를 쳤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종군 가능성이 없진 않다. 여담으로 전단이 연합군을 물리치고 난 기원전 279년에도 염파가 제나라를 친 기록이 있는데, 전단이 영토를 수복하기 전인지 후인지는 불명이다.] 무엇보다도 당시 연합군의 총수는 [[연(춘추전국시대)|연나라]]의 명장이었던 상장군 [[악의(전국시대)|악의]]였다. 악의의 놀라운 지략으로 제나라는 불과 6개월 만에 70여개의 성을 함락당했고 수도인 임치마저 빼앗기는 등 참패를 면치 못하였다. 게다가 제나라 민왕이 거(莒)성으로 도망쳤다가 그곳에서 살해당하는 등의 [[막장]]스러운 상황이 벌어졌고, 제나라는 순식간에 멸망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당시 거성에는 민왕을 돕기 위해 초나라에서 온 장수 요치가 와 있었으나 민왕의 교만방자함을 보다 못해 그를 죽여버렸다(...). 그러나 거성의 주민들은 끝까지 성을 내주지 않고 연군에 항거하였다. 이러한 암울한 시기에 기적처럼 등장한 인물이 바로 전단이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전단은 제나라의 수도 임치의 시장을 관리하는 하급 관리여서 아무도 그가 현명하다는 것을 몰랐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되자 전단은 집안 수레의 바퀴에 튀어나온 축을 잘라 버리고 철로 단단히 덮개를 씌우라고 시켰다. 사람들은 이러한 전단의 지시에 "수레바퀴를 저렇게 무겁게 만든다면 급히 도망가야 할 피난길에 수레가 어찌 빨리 움직일 수 있겠는가? 전단 이 사람 생각이 있는 사람인가?"라며 그의 행동을 처음엔 비웃었다. 하지만 막상 다른 이들의 수레바퀴는 험한 도로를 장시간 달리다 견디지 못하고 죄다 부서진 데 반하여 철 덮개로 무장한 전단의 수레바퀴만은 오히려 잘 방비되어 있어서 함락되지 않은 즉묵(卽墨)까지 멈춤없이 달릴 수 있었다고 한다. 이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전단이 [[선견지명]]이 있다 하며 칭송했고, 즉묵의 대부들이 모두 전사하자 사람들은 피난길에 유일하게 몸을 빼냈던 전단의 재주가 즉묵을 다스릴 만하다고 하여 즉묵을 지키는 장군으로 추대하였다. 전단은 남은 병력을 마지막으로 남은 제나라 최후의 두 개의 성이었던 즉묵과 거로 집결시켜 철통같이 수비했다. 당대 최고의 명장이었던 악의마저 두 성은 끝내 함락시키지 못했고 결국 두 성을 계속 공성하는 대신 성을 포위하여 장기전을 벌이기로 했으나, 3년이 지나도록 함락시키지 못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