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두환/일생 (문단 편집) == 5.16 군사정변 이후 == [[1962년]] 전두환은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전역하고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으로 정계 입문하라"는 제의를 받았지만, 그는 "군대에도 충성스러운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며 거절했다. 그리고 전두환과 몇몇 동기생들이 조직한 육군 내 사조직이 '''[[하나회]]'''로서 확립 되는 것도 이 시기이며, 전두환과 하나회는 군대 내부의 [[박정희]] 친위대를 표방하며 정권의 비호를 받고 계속 승승장구한다. 당시 소령, 중령이었던 전두환은 [[중앙정보부]] 인사과장,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제1공수특전단]] 부단장을 거쳤다. 1967년 [[수도방위사령부|수도경비사령부]] 제30대대장이 되었다. 전두환은 이때 청와대의 경비가 부실하다는 이유를 들어 [[박격포]]를 청와대에 설치했다. 그리고 이듬해 벌어진 [[1.21 사태]] 때 북한 [[김신조]] 일당이 서울로 침투하여 국군과 교전을 벌였는데, 이때 수경사 30대대장이었던 전두환의 지시에 의해 30대대가 박격포로 많은 조명탄을 계속 쏘아 올려서 밝게 비추어, 김신조 일당의 소탕과 생포에 적잖은 역할을 한다. 이 공으로 전두환은 박정희의 신임을 더욱 얻게 된다. 1969년에 육사 동기들 중 최초로 [[대령]]으로 진급한다.[* 이에 대해 전두환은 소령은 제일 늦게 달았지만 대령은 제일 빨리 달았다고 회고했다.] 1970년 육군 [[제9보병사단]] 제29보병[[연대(군대)|연대]][* 現 제29보병여단. 2021년 1월 1일부로 연대에서 여단으로 확대되었다.] [[연대장]]으로 [[베트남 전쟁]]에도 참전했는데, 상관들에게 안 좋은 소리를 많이 들었다. 당시 9사단장이자 이후 [[육군특수전사령부]]의 2대 사령관인 [[조천성]] 장군이 '사병들은 마실 물도 마땅치 않은데 전두환은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테니스]]나 치고 앉았다'고 29연대장에서 해임시켜야 한다는 보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전두환의 연대가 군공이 전혀 없자 전두환은 무기밀매상으로 부터 적성화기 다수를 구매해서 그걸 노획물이라고 속여 상부에 바치며 있지도 않은 군공이 있다고 속였다. 그러나 이 전두환의 거짓말은 바로 들통났다. 전두환이 노획했다는 총기가 사용한 적이 없어 약실과 총열이 깨끗했기 때문이다. 전두환이 무기밀매상으로부터 구매한 무기는 다음과 같았다. * [[소화기]] 115정 * 공용화기 13문 * [[수류탄]] 42개 * 실탄 2,191개 * 포탄 31개 * 기타 [[냉병기]] 등 다수. 베트남전 파병 이후 복귀한 연대장급 이상은 관례에 따라 모두 충무무공훈장을 받았는데, 전두환의 경우는 직속상관인 9사단장 조천성, 그리고 주월사령관 [[이세호]]가 모두 전두환에 대한 '''훈장 수여에 반대한 일화'''가 존재한다. 이유는 인사오류 + 민간인 상대 문제 행위 + 작전지휘권을 참모 이하에게 맡겨 놓은 사례 다수 + 전투수행능력 부족 + 무기 밀매 및 적성화기로 거짓보고(없는 군공 있다고 속이기) + 연대장 부임 이후 [[파티]]가 너무 잦음 등 부정적 평가가 쏟아진 것이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12600329213001&edtNo=3&printCount=1&publishDate=1991-01-26&officeId=00032&pageNo=13&printNo=13953&publishType=00020/|기사]] 결국은 훈장을 수여받았다.[* 이 때문인지 이세호는 괘씸죄로 낙인찍혀 전두환 집권 이후에 재산을 몰수당하는 등의 핍박을 당했다.] 이 일로 전두환의 [[준장]] 특별진급은 당연히 미뤄지고 대령이 부대장인 1공수특전단의 단장이 되었다. 그러다가 1972년 9월에 제1공수특전단이 제1공수특전[[여단]]으로 증편되어 부대장이 준장급인 보직이 되자, 아직 대령이었던 전두환은 정식 여단장이 될 수 없으므로 제1공수특전여단장 '직무대리'라는 직함으로 계속 부대장을 맡게 된다. 이후 전두환은 1973년 1월에 [[임기제 진급|임기제]] 준장으로 진급함과 동시에 정식으로 제1공수특전여단장이 되었다.[* 이 여단장 시기에 전두환에게 우수 훈련병사 표창장을 받았던 사병 중 한명이 먼 훗날 유명 정치인을 넘어 대통령이 되었는데, 그가 바로 [[문재인]]이다. 표창장 사진도 공개한 적이 있고, 심지어 대통령후보 경선토론회에서도 본인이 말했다.] 마침내 전두환은 [[1974년]] 1월, [[김복동]], [[손영길]], [[최성택]] 등과 함께 육사 11기 최초로 정식 준장으로 진급했다. 이후 [[1976년]] [[대통령경호실]] 작전차장보로 임명됐고, 보안차장보직을 겸직하였다. 이후 1977년 2월 1일부로 전두환은 소장진급하였다. 소장 2차보직으로 전두환은 1978년 사단장 중에서 가장 요직인 육군 '''[[제1보병사단]] [[사단장]]'''[* 이게 어떤 진급코스냐 하면 [[제1보병사단]] [[사단장]]을 역임한 후 [[제7기동군단]] [[군단장]]을 역임하면 '''대장 진급 100%'''일 정도로 둘 다 진급코스이다.]이 되었는데 1사단장으로 있던 시기에 1사단이 제3땅굴을 발견하며 성과를 올리게 된다. 이어서 1979년에는 요직인 '''[[국군기무사령부/사령관|국군보안사령관]]'''[* 전투 특기들이 대장으로 진급하는 게 대세인 지금 안보지원사령관은 그저 그런 보직이다. 대부분 안보지원사령관을 마치면 전역하기 때문. 현 안보지원사령관인 [[전제용]] 장군도 기무 특기에 [[공군]] 출신이라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남영신]] 장군처럼 특별한 이유로 인해 대장으로 진급한 사례도 있다. 안보지원사령관 자리는 중장 서열 2위로 이 보직에서 다른 직으로 가는 것은 모양새가 좌천에 가깝다.][* 본래 보안사령관 자리는 중장보직인 것이 1977년 유운학 [[20사단]] 대대장 월북사건을 계기로 보안사가 대대적으로 털리면서 사령관 계급도 아예 소장으로 내려간 것이다.]이 된다. 취임 시기에 일어난 부마항쟁에 있어선 강경진압을 계획하기도 했다.[[https://n.news.naver.com/article/214/0000942587|#]]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