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라남도청 (문단 편집) == 연혁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전남도청 1896.jpg|width=100%]]}}}|| || [[1890년대]]의 전남도청 || [[1895년]] 야심차게 추진했던 [[23부제]]가 여러 문제점을 안고 기존의 8도를 보완한 13도제가 시행 결과 [[1896년]] 기존의 [[전라도]]가 남·북으로 분도되었고 이 결과 [[전라남도]]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전까지의 도청(도관찰부)은 전'''라'''도의 "라"를 맡을 정도로 조선시대 당시에는 호남의 중심도시 포지션을 가지던 [[나주]]에 위치하였다. 그러나 도제로 원복할 때 [[광주광역시|광주]]로 이전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도청을 품게 된 광주가 호남의 새로운 중심지로 떠오르게 된다. 이 때 당시의 청사는 현재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쓰이는 [[광산동]] 청사 맞은 편 [[전일빌딩]] 자리에 있던 광주[[관아]] 건물을 사용하였으나, [[한일합방]]을 거치며 [[대한제국]] 시절 지금의 [[세무서]]격의 사무를 보던 광주재무감독국이 폐지됨에 따라 전남도청 또한 주인을 잃고 비어버리게 된 이 신식 목조건물에 입주하게 되었다. || [[파일:전남도청1910.jpg|width=100%]] || || [[1910년대]]의 전남도청 || 참고로 이 건물은 현재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자리, 즉 광산동에 위치하였다. 이때부터 전남도청의 광산동 시대가 개막하게 되었다. 여담으로, 본 문단에 첨부된 1896년 전남도청의 사진은 사실 전남도청이 광산동으로 이전한 후, [[전남지방경찰청|전남도경찰부]]가 사용할 당시인 [[1910년대]]에 촬영된 사진이다. || [[파일:13_1_96161.jpg|width=100%]] || || [[1930년대]]의 전남도청 || [[1930년대]]가 되면서 전남도청 역시 이 당시 [[서울시청|경성부청]], [[부산시청|부산부청]], [[인천시청|인천부청]] 등이 겪던 청사 협소 문제를 겪게 되었고, 이에 1910년대부터 사용하던 구 재무감독국 건물을 헐고 그 자리에 새로운 청사를 짓게 되었는데, 이 청사가 바로 광주시민 및 전남도민들에게 구 도청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를 아시아문화전당 건물이다. 흔히 구 전남도청은 [[5.18]] 관련 영화나 도청 이전 이전의 사진자료, 직접 봤던 시민·도민들의 기억 속에서는 하얀 건물이고, 현재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또한 흰색이나 신축 당시에는 적벽돌과 화강암이 조화를 이루는 외관이였으며, 2층의 본관 건물과 이전 직전까지 민원실로 쓰이던 도청 회의실 건물만이 있었다. 흰색 도료로 칠해진 것은 해방 후 [[미군정]] 시기였으며, 본관 3층 증축과 별관 건설은 [[1975년]]의 일이였다. 여담으로 미군정 시기 흰색 페인트칠을 한 것이 일각에선 [[백악관]]을 흉내(...)내려 한 것이란 소문이 돌기도 하나 그것보단 지어진지 20년이 다 되어가며 건물노화로 곳곳에서 벽돌가루가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였다는 쪽이 더 설득력이 있다. || [[파일:15_1_106732.jpg|width=100%]] || || [[1940년대]]의 전남도청 || [[1940년대]] 당시에는 전남도청의 앞부분이 지금과는 달랐는데, 아직 [[금남로]][* 위 사진의 우측 하단에 위치한 하얀 도로가 바로 금남로이다.] 확장공사가 이루어지기 전이라 도청 앞 분수대와 로터리가 아직 없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한편, 이 사진에서 유독 눈에 띄는 고풍스러운 건물(맨 앞에 위치한 큰 기와집)은 한때 [[전라남도지사]]의 관사로 쓰이기도 했던 무덕전이다. 참고로, 무덕전 바로 뒤에 있는 2층 짜리 하얀 건물이 바로 아래 사진의 좌측에 위치한 건물과 일치하다. 즉, 다시말해 옛 무덕전 자리에 현재는 분수대와 원형교차로가 들어선 것이다. || [[파일:external/ojsfile.ohmynews.com/IE001710878_STD.jpg|width=100%]] || || [[2000년대]]의 전남도청 || 이후 [[1950년대]]와 [[1960년대]]를 거치고,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금남로 확장 및 도청 증축공사를 모두 끝내고, 이전의 모습과는 달리 전남도청 주변이 완전히 도시화 되었다.[* 1940년대의 전남도청 모습과 1980년대의 전남도청 모습이 다른 것도 1975년에 일부 증축을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1975년도에 실시된 증축공사로 본관만 있던 전남도청에 별관도 새로 생겼다. 위 사진의 좌측이 본관, 우측이 1975년에 지은 별관이다.] 때문에 이 당시 금남로 확장공사와 도청 증축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자축하는 행사가 [[1975년]]에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도청 증축으로부터 5년 후인 [[1980년]], 전라남도 뿐 아니라 [[대한민국]] 역사에 중요한 장소로 떠오르게 되는데, 바로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비무장 시민을 향해 집단발포를 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광주 전역이 시민군과 계엄군의 치열한 전투의 현장이 되었고, 그 중에서도 바로 이 도청이 [[5월 27일]] 계엄군에게 최종적으로 진압 될 당시까지 [[시민군]]이 마지막 거점으로 삼아 최후의 저항을 펼치던 곳이다. 이 때문에 현재도 곳곳에 탄흔이 남아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이러한 배경으로 남악리 이전 후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입주하는 과정에서 이 중요한 사적을 일부 헐겠다고 했을때 관련 단체들의 반발이 매우 심했으나, 원만히 해결 된 후 리모델링을 거쳐 현재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쓰이고 있다. 이후의 역사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서에서 확인 가능하다. 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1993년 5월 13일 [[김영삼]] 대통령의 담화문인 "[[https://518.org/nsub.php?PID=0106&page=&category=&searchText=%EB%AC%B8%EB%AF%BC%EC%A0%95%EB%B6%80&searchType=all&action=Read&idx=4|5·18의 연장선에 선 문민정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 담화문]]"에서 "광주 시민과 전남 도민의 의사에 따라 현재 광주 시내에 있는 [[전라남도청]]을 전남도 관내로 이전하고, 당시 민주화 운동의 현장이었던 현 도청 위치에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공원을 조성하고 기념탑을 세우는 방안을 적극 검토, 지원할 것입니다."라고 말을 해 본격적으로 이전 논의가 시작되었다.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추진을 본격화했고, 전라남도청도 이전했다. || [[파일:jeonnam-2010-5-1.jpg|width=100%]] || || [[2010년대]]의 전남도청 || 이후 [[2005년]] [[10월 11일]], [[1930년대]]부터 쓰인 전남도청을 보존하고, 지금 현재의 전남도청으로 청사를 이전하였다. 도청 청사가 전라남도의 서쪽 끝인 무안군에 위치해 있어서 여수, 순천, 광양을 비롯한 동부권 주민들이 방문하기 불편하다는 민원이 계속해서 나왔었다. 이를 반영해서 제2청사 기능을 하는 [[전라남도 동부지역본부|동부권 통합청사]]를 순천시에 건립하기로 하였다. 위치는 순천시 [[해룡면]] [[신대지구]]이며, 2021년 10월 착공해서 2023년 개관 예정이다.[[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1101816240003840|#]]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