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여옥 (문단 편집) === 정계입문 전 === 1959년 4월 19일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서울수송초등학교]]와 [[창덕여자중학교]], [[중앙여자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1997년 [[서강대학교 대학원|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1년 [[한국방송공사|KBS]] 공채 9기 [[기자]]로 입사하였고[* 당시 KBS 내 기자는 300명 중 5명만이 여성이었고, 그마저도 여성을 뽑아주는 게 KBS뿐이었다고 한다.] [[KBS 9 일요현장|KBS 뉴스파노라마]]와 와이드 정보 700의 제작을 맡다가 1989년부터 1991년 상반기까지 뉴스센터 700 - [[KBS 아침 뉴스]]의 앵커를 맡았다. 그러다가 1991년 5월 20일에 [[KBS 뉴스광장]]이 신설되면서 [[일본]] [[도쿄]]로 발령이 나서 1993년까지 약 2년 6개월간 KBS 도쿄 특파원으로 지냈다. 이때 일본 체류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은 없다]]라는 책을 펴내었는데, 책이 잘 팔리다 보니 기자 시절보다 더 크게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추한 한국인들의 반례로 내놓은 책이었지만 표절이었던 것이 문제. KBS를 퇴사한 뒤 [[SBS Golf|미래유스텔레비전]]을 거쳐 리마쥬 프로덕션이라는 회사도 차리며 강연이나 방송 출연, 서적 출간, 칼럼 기고 등을 활발히 하였고, 1997년 6월 30일부터 1998년 10월 9일까지 정홍택 前 [[한국영상자료원]] 이사장과 함께 [[792 뉴스대행진]] 5, 6부를 진행하였다. 2000년대 중반 이후의 전여옥의 행보를 보면 놀라운 일.[* 전여옥의 KBS 시절 동료였던 [[정미홍]]이나 [[박찬숙(방송인)|박찬숙]]도 마찬가지이기는 하다. 2010년대 들어 막장 발언으로 악명을 날리게 된 정미홍도 한때는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서울특별시장]] 선거에서 [[민주당(1991년)|민주당]] [[조순]]을 도와주기도 했던 친 민주당 인사였고, 박찬숙도 언론통폐합 당시에 해직되어 1987년이 되어서야 복직된 대표적인 해직기자인데, 2000년대 초부터 보수적인 성향을 드러내기 시작해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냈다. 다만 지역구 낙선 이후 2009년에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정치계에서 은퇴했다.] 당시로서는 꽤나 진보적인 스탠스의 [[페미니스트]]였다. [[이문열]]의 소설인 <[[선택(소설)|선택]]>을 크게 비판하고[* 그런데 책의 뉘앙스가 사실 문제가 있었다. 책의 주인공이자 이문열의 조상인 [[장계향]]이 시종일관 현대 여성들을 가르치고 훈계하는 투로 말하며, 여성은 가정에서 남편과 시부모를 섬기고 [[집안일]]과 [[육아]]만 해야 한다고 강요하였다.] 자유로운 성교육을 주장하였으며, [[여성이여 테러리스트가 돼라]]라는 책도 이 시기에 펴내었다. 사실 1980년대 당시 KBS가 공영방송사라고는 하지만 전두환의 끄나풀이나 마찬가지였고, 자연히 그와 관련한 더러운 일들을 많이 목격해본 입장이었던 영향이기 때문일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