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원일기/등장인물 (문단 편집) == 마을 사람들 == * '''부녀회장([[이수나]])'''[* 극중 이름은 박복남이다. 1987년에 방영된 '회장님'편에서 이름이 공개되었다. 하지만 85년 머슴들의 잔치에서는 양이쁜, 98년 미스 양촌리 '''선발대회에서는 김말순이라고 한다...] 종기 엄마. 부녀회장이다 보니 마을 공동구매나 구판장 문제 등으로 가게집을 하는 쌍봉댁과 자주 싸우게 되지만 매번 이내 화해한다. 숙이엄마, 섭이엄마와 친하며 가끔 철없는 행동으로 남편의 분노를 사기도 하는데 가장 큰 아킬레스 건이 춤바람. 읍내 캬바레에서 스탭 좀 밟아본 전력이 있는데, 극중 춤바람으로 종기 아버지 순만과 다투고 눈탱이가 밤탱이되는 에피소드가 몇번 나온다. 전임 부녀회장(이장의 아내)이 양촌리를 떠난 이후, 1987년에 방영된 '회장님'편에서 용진의 부인인 은영을 한표 차로 꺾고 부녀회장에 당선됐다. 상태네가 온 뒤에 출연을 계속 하였다. 가끔 부녀회장에서 실각할 위기에 몰렸던 적이 있었다. 1988년에 방영된 '시시비비'편에서 쌍봉댁의 문제제기로 잘못을 시인하고 그만둔다고 발언했으나 마을사람들 지지로 다시 부녀회장직을 떠맡았고 1999년에 방영된 '그들만의 선거'편에서 순영이 출마하면서 내려올 위기가 있었으나 순영이 물러나면서 종영할 때까지 부녀회장에 재임하였다. 마을에서 김회장댁, 창수네와 더불어 나름 부농이지만, 자식들이 워낙 많아 자식들 학비, 생활비 뒤치다꺼리로 의외로 항상 돈에 쪼들린다.[* 참고로 전원일기 출연자들 중 실제로는 제일 엘리트인 인물이다. 여자들의 대학진학률이 매우 떨어지던 그 시절에 고려대 법대를 나왔다.] 극중 가끔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는데 정말로 왠만한 가수 이상으로 노래를 잘한다. * '''쌍봉댁([[이숙(배우)|이숙]])송내댁 -> 쌍봉댁'''[* 극 초기에 쌍봉댁은 기홍 어머니의 호칭이었다.] 가게집 주인. 극중 이름은 이윤덕이었다가 이명숙으로 개명하였다. 1980년대 중반에 가게를 열면서 고정 배역이 됐지만, 그 이전에는 단역으로 여러 회에 출연(주례 편에서 신랑의 형수 역할이나 동네 총각들의 맞선녀, 동네 아낙 등)하였다. 방영 초기에는 송내댁으로 불리기도 했다. 결혼했지만 아이를 낳지 못해 이혼당하고 이후 양촌리에 정착한 여성이다. 본가는 어렵지 않게 사는 편인지 사촌오빠 등이 꽤좋은 재취자리 선을 주선하기도 한다. 아내없이 아이를 키우는 귀동을 애처롭게 여기고 노마를 유난히 이뻐해 귀동에게 프로포즈를 하기도 하지만, 600회 '재회'편에서 노마 엄마 명자가 돌아와 재결합하면서 맘을 접는다. 이후 트럭행상 등 이런저런 남자들과의 연애 플래그가 서지만 그때마다 무산되거나 사기를 맞으며 혼자 계속 살아가다 나중에 2002년 4월 28일에 방송된 '응삼과 쌍봉의 결혼식'편에서 응삼과 결혼한다. 사기도 당하고 가게도 자주 털린다.[* 양촌리112라는 에피소드에선 강도 두 명이 가게를 턴다. 가게라는 특성상 강도 당하는 내용이 자주나오곤 한다(양촌리 112는 1995년 방영)][* 여담으로 가격이 편의점 가격이다.] '양촌리 크리스마스'편에서 이명숙이라는 본명이 밝혀졌다. 워낙 길게 방송한 드라마여서 누군가 짝이 없지만 총각은 아닐때 거의 쌍봉댁과 연애플래그가 섰다. * '''박응삼([[박윤배]])''' 54년 말띠 생. 일용, 창수와 동갑. 창수보다 생일이 2달 빠름. 농고 원예과 졸업. 극중에서 두 번 결혼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일용 엄마가 물너머 한의원에 갔다가 그집의 노처녀 딸 귀순 (안명숙)과 중매를 서서 1988년 392회 '당신을 위하여' 2부에서 결혼했으나 1년쯤 나오고 안 나오다가 하차하면서 이혼으로 처리되었다. 이후 파혼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숙이와의 연애소동이나 여러 차례에 걸쳐 맞선을 보지만 번번히 인연이 이어지지 못한다. 1996년 이후에 읍내에서 노래방을 경영했으나 상태네가 떠난 뒤 노래방을 정리하고 농사를 다시 지었다. 1997년에는 극중 친구 기홍의 사망으로 과부가 된 기홍처 보배엄마에게 프로포즈를 하기도 했으나 거절 당하기도 하였다. 결국 2002년 4월 28일에 방영된 '응삼과 쌍봉의 결혼식'편에서 쌍봉댁과 가정을 이루었다. 이 드라마가 응삼이라는 캐릭터를 활용하다못해 거의 착취한 부분이 있다. 대개의 청년남성들 사이의 갈등요인이나 문제는 응삼이 일으킨다. 기순과의 결혼과 이혼까지는 개인의 일이나 죽은 친구 기홍의 처 보배네에게 구혼하는 것은 상식밖의 일이며, 결국 부부가 되는 쌍봉댁은 친구인 귀동과 오랫동안 썸을 탔던 여성이다. 지나치게 독거농촌노령 남성의 짝짓기에 과몰입한 결과로 응삼은 죽은 친구의 처에게 구혼하거나, 친구의 아이를 키워주고 싶다는 제안까지 했던 여성을 아내로 맞아들이는 캐릭터가 되었다. 일용과 함께 2001 알까기 제왕전에 출연하였다.(당시 8단) 극 중에서 제일 입이 가볍고 성질이 더러운 청년으로 '미세스 양지뜸' 편에서는 친구들 아내가 개울에서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자리를 쉽게 뜨지 못하고 대놓고 훔쳐보거나 옷을 훔치기까지하는 인간쓰레기스러운 점도 있으며 요즘 같았으면 진작에 수갑차고 감빵에서 썩었을 캐릭터 친구들에게는 너부인은 3등이다 1등이다 뭐다 하면서 어이구 3등 친구왔구먼 하고 과하게 놀리는 등 인성이 쓰레기인 걸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이혼당하지 결국에는 용식이가 화를 내며 걸신들렸다 라면서 뭐라하고 가버렸는데 자기가 잘못했음에도 괘씸하다고 짜증내며 내로남불의 절정을 보여준다. 결국 술을 마시고 일용이네로 찾아가 용식이를 불러놓고 사과하라고 뻔뻔한 모습을 보였다. 남의 아내들한테 저러다 바람나는거 아니냐며 신나게 떠들다가 정작 본인한테는 결혼식장 들어가기 전까지는 안심 못 한다고 맞장난을 치자 버럭 화를 내기도 한다. 이런 만행을 일삼는데도 손절당하지 않는 게 용할 따름. 사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은근히 무시 당하는데, 마지막 회에서 양촌리 대표로 누가 나설지에 대해 논의할 때 은근슬쩍 자신이 해보겠다고 하자 다들 무시하거나 장난치지말라고 성을 내는 것만 봐도 그의 위상을 알 수 있다. * '''이기홍(김영두)''' 보배 아빠. 고등학교 때 합창반. 극중 양촌리에서 김회장댁과 더불어 제일가는 부농의 아들. 희옥과 1985년 말에 서울행 1부에서 농촌 총각과 도시 처녀의 단체 맞선에서 만났고, 1986년에 방영된 '꽃바람'편에서 결혼하였다.[* 서울에서 1년간 재수 생활을 했음이 언급됨] 희옥과의 사이에 오랜 기간 아이가 없다가 1989년 '보배나무'편에서 보배를 입양한다. 97년에 방영된 "모녀 이야기"편에서 보배가 무덤가에 갔던 걸로 봐서는 극중에서는 이미 사망했다고 본다.[* 사돈 남말 하시네 편에서 청년회를 그만두고 도시에서 대리점을 하고 싶다는 이유로 설정상 하차하는데, 실제 배우인 김영두가 신학교에 입학하면서 배우계에서 은퇴하였기 때문이다. 김영두는 현재 교회 목사를 맡고 있다.] 다만, 마을에서 손꼽히는 부농집안이기 때문에 그의 사후에도 희옥과 딸 보배는 별다른 생활고는 겪지 않으며, 읍내에서 화장품 장사 등을 하며 윤택하게 지낸다. 아내 희옥이 그 시절 농촌과 생활수준 차이가 컸던 서울출신이라 결혼 초기 소소한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되는 부농이다 보니 시집온 희옥이 냉장고, 세탁기 등 세간살이를 마을에서 제일 먼저 들여 놓고 자주 바꾸는데, 보수적이고 남의 이목을 많이 신경쓰는 농촌사회이다 보니 마을에서 이런저런 말이 나오기도 한다. 기홍의 집안은 부농임에도 불구하고 50~60년대 어렵던 보릿고개 시절에 집 곳간에 쌀이 있어도 굶는 마을 사람들 이목을 생각하여 쌀밥 대신 죽을 해 먹었을 정도로 있는 집 티를 내지 않고 살던 집이었는데, 서울서 온 희옥은 그런 눈치를 보지않고 씀씀이가 커서 갈등을 빚기도 한다. 당시 낙후된 농촌과 도시의 생활수준 차이를 보여주는 대목. * '''김희옥([[김혜옥]])''' 보배 엄마, 일명 서울댁. 1985년 말에 방영된 252회 '서울행' 1부에서 단체 맞선녀 '박희옥'으로 처음 등장하였고, 1986년에 방영된 '꽃바람'편에서 '기홍'과 결혼하였다. 당시 나이 28살(59년생) 오랜 기간 아이가 생기지 않아 마음 아파하다가 결국 1989년 '보배나무'편에서 보배를 입양한다. 양촌리로 시집 온 초기 서울출신이다보니 마을 아낙들로부터 텃세 등을 겪기도 하는데, (기홍네가 마을에서 손꼽히는 부농인 이유도 있지만) 농촌 사람들보다 큰 씀씀이로 각종 전자제품과 살림살이를 제일 먼저 사거나 자주 갈아치워 수남 엄마와 개똥 엄마 등 마을 또래 아낙들에게 부러움과 시샘을 같이 사는 경우가 많다. 극중 캐릭터도 서울깍쟁이 기믹으로 마을 일에 입바른 소리를 잘하며 수남 엄마와 다니며 마을 여자들 사이에 분란을 일으킨다.[* 입바른 소리 잘하는 깍쟁이 서울여자 기믹은 보배엄마 하차 이후 슬기엄마 김자옥이 물려받는다.] 혜란을 왕따시키는 등 편가르기 한 것 때문에 남편에게 혼난 적도 있다. 수남 엄마의 뒷담화를 활용해 상대방 환장하게 만드는 실력이 남다름. 기홍이 서울로 가는 것으로 하차한 이후 시골에 남아 농사를 지으며 사는 것으로 그려지다가, 기홍과의 이혼 이후 읍내로 이주하여 미용실을 운영한다. 이때 보배 엄마를 짝사랑하는 정육점 주인 오씨([[유퉁]])에 의해 기홍과 이혼한 것이 밝혀진다.[* 763회 '새로운 시작'편에서 스토킹을 하던 정육점 주인 오씨(유퉁)가 유부녀라는 주변의 이야기를 믿지 못하며 호적등본까지 떼어본다.] (기홍은 이후 사망한 것으로 또 바뀐다.) 타임워프 이후 화장품 가게를 운영한다. 1994년에는 '은자동아 금자동아'편에서 순길을 출산하자마자 일용처의 수혈을 자원하며 혈액형이 O형임이 밝혀졌다. 기홍의 사망 이후 응삼에게 프로포즈를 받기도 했으나 (그 과정에서 보배가 업동이임을 알게되어 가출하려 하는 등 아픔을 겪게 되고) 보배를 생각해 받아들이지 않는다. 마지막 출연은 1997년 822회 "배우 지망생"편이었고 이후부터 새로운 출연진(상태네와 병태네)이 출연한 관계로 나오지 않은 걸로 보아 하차했으며, 이후 1999년 상태네의 하차 이후 기존 조연진들의 복귀 때도 복귀하지 못하고 영구 하차하였다. * '''이창수([[이창환]])''' 개똥 아빠(재동 아빠). 최강 츤데레 공처가. 10살 어린 미모의 아내를 둔 능력자. 감나무집 혜란이는 극중 청년회원들 모두의 여동생같은 존재로 다들 귀여워했지만 창수는 특히 다정해서 좋았다는 혜란의 대사가 있다. 54년 말띠 생(일용, 응삼과 동갑 친구. 혜란과 8살 나이 차이. 결혼 시점 창수 34살, 혜란 26살. 그러나 2002년 시점은 1081회 창수 대사 '내가 열살이나 더 먹었으니' 10살 차이 부부) 귀동, 명석보다 한살 위. 용식을 후배라 언급하는 것을 보면 동네에서 친구처럼 자랐지만 나이는 창수, 응삼이 더 많은 설정인듯. 양촌리 공식 애처가. 공공연하게 '난 당신밖에 없다' 발언(587회 영지버섯 편) 및 동네 아낙들의 발언들을 '아직도 신혼이야?', '사랑해' 문자 등 보면 욱하고 틱틱거리지만 혜란에 대한 아내 애정은 남 다른듯. 잘생긴 외모에 대한 자신감과 고등학교 시절 좋은 학업 성적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여실히(202회) 드러냈다. 고등학교 때 규율반. 성적도 좋았고 본인도 대학에 뜻이 있었으나 경제적 사정으로 진학을 못한 것을 안타까워 한다. 신혼 때는 빨래터에서 아내를 돕고, 개똥이 출산 때 매우 행복한 모습을 보이는 다정한 면모를 보임(연애는 돌직구 직진남) 극 후반으로 갈수록 구두쇠 자린고비 설정에 보수적인 설정으로 옛날 아버지들처럼 무뚝뚝하고 말을 툭툭 뱉기도 하지만, 아내가 맹하고 순진해서 당하고 속는 여러모로 속터지는 일이 많아 어쩔 수 없는 상황. 아내에게 외제 영양 크림이나 생일날 립스틱을 선물하는 등 아내를 꽤 걱정하고 챙기는 전형적 츤데레. 아내가 애정 표현을 하면 받기 쑥쓰러워 하지만 내심 매우 좋아서 얼굴에 확확 티가 난다. 서울 새댁 김혜옥이 동네 아낙들 편가르기로(401회) 혜란이를 따돌리자 친구들을 혼내며 적극 중재를 하기도 한다. 현재 시점에서는 아내들 사이의 일에 대해 친구들을 탓하는 모습으로 보일 정도. 너희들 마누라들은 뭐가 그렇게 잘났나! 똑바로 못가르쳐? 같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 그 말을 들은 친구들은 또 자신의 아내를 개잡듯 끌고간다. 탄탄한 농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오며 젊은 시절에도 농사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런데 극이 진행될수록 아내를 착취하는 가부장 진상의 모습만 나와 안타까운 캐릭터. 상태네가 양촌리에 산 기간에 일시 하차한 뒤, 상태네가 떠난 뒤 '가을의 문턱에서'편에서 복귀하였다. 복귀 전에는 부농 설정으로 돈고생하는 모습은 거의 없었으나 복귀 후에는 재동이기 돈 사고를 치거나 버섯농사를 망치거나 친구들이 보증을 서준 대출을 갚지 못해 오래 대대로 일군 논밭을 병태 친구 남수에게 팔아야 할 만큼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 '''혜란([[이상미(배우)|이상미]])''' 62년생~64년생 추정. (김회장 막내 영애 단짝 친구. 85년도 24살, 남편과 8살 차이 설정. 그러나 2002년 시점은 1081회 창수 대사 '내가 열살이나 더 먹었으니' 10살 차이 부부) 양촌리 아낙 중 최초 휴대폰 소유자(967회 전화소동 편) 속칭 감나무집 딸. 개똥 엄마로 또래 마을 아낙 중 유일하게 양촌리 출신이다. 김회장댁 막내딸 영애와 동창이며, 중학교 2학년 중퇴 이후 서울로 가 공장에 다니며 집안살림을 도왔다. 이때문에 학력에 콤플렉스가 있다. 어린 시절 주인집 딸 교복을 입어봤다가 교복 도둑으로 몰린 적도 있을 정도. 85년 240회 '감나무'편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마을 청년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게된다(24살). 이후 집안 살림이 아직 덜 피었다고 생각해 다시 서울로 가 1년 정도 더 일을 하게되고, 다시 돌아와 1987년 320회에서 어릴 적부터 같이 자랐던 마을오빠 창수와 결혼한다.[* 8살 차이 결혼 때 창수 34살 혜란 26살. 둘의 결혼과정에서 혜란 아버지의 반대로 약간 난관이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일용엄니와 용식어머니 등이 중간에서 두 집안을 맺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극중 김회장댁 노할머니의 대사로 3대가 덕을 쌓아야 이루어지는 것이 한 동네 안에서의 결혼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한 동네 사람끼리 서로 속속들이 사정을 다 알면 오히려 혼사가 이루어지기 힘든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아들 개똥이(재동)와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살고있다. 첫 등장때는 집안을 이끄는 야무진 소녀가장 이미지였으나...결혼 후 순진하고 맹한 성격으로 변모되었다. 초반의 캐릭터 붕괴라 별 문제는 없었다. 2021년 방송된 다큐플렉스 전원일기 편에서 혜란 역 배우가 캐릭터 설정을 고민할 때 김회장댁 이은심 역의 김혜자 배우의 조언으로 느린 말투로 대사하여 순하고 조금 맹해보이는 캐릭터로 설정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마을 청년들에게 결혼후, 출산 후에도 오빠라고 부르며 허물없이 대하지만, 때론 그런 점 때문에 남편 창수와 다투기도 한다. 창수의 친구들이자 혜란의 동네 오빠들인 응삼, 용식, 일용, 명석 등도 혜란이.. 아니 창수 처 라고 고쳐부르는 등 호칭을 내외하며 조심해주는데 혜란은 개똥이가 꽤 자란 이후에도 용식오빠 일용오빠 한다. 한번씩 수남이 엄마인 용식의 처가 혜란으로 인해 신경이 긁히는 데에도 이유가 있는 듯. 자린고비 남편이 생활비도 자신이 직접 관리하며 경제권을 주지 않아 불만이다. 그러나 허술한 본인보다 남편이 더 좋은 관리자인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입장. 보배엄마, 수남 엄마와 늘 몰려다니지만 늘 둘에게 치인다. 눈치가 없고 맹하고 순진해서 셋이서 한 이야기를 본인이 죄책감을 느끼며 꼭 상대방[* 복길 엄마, 노마 엄마.]에게 해서 분란을 일으킨다. 번번히 이 일로 남편에게 꾸중을 듣기도 한다. 보배네와 수남네와 달리 나긋나긋한 말투로 초치는 스타일이며 일명 양촌리 눈새로 분위기도 못 읽고 내뱉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가끔 보는 사람을 열받게 만들기도 한다. 이것이 창수 스트레스 원천. 상태네가 출연한 시기에는 출연이 없었으나, 상태네가 떠난 뒤 '가을의 문턱에서'편에서 복귀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복순네 표 메주" 편이 전원일기 마지막 고정 출연이 되었다. 말투가 상당히 나긋나긋하고 귀엽다. 접시만한 눈을 가졌다는 양촌리 공식미녀 수남이 엄마에는 못해도 상당한 미인으로 그려진다. 실제 배우도 젊은 시절이나 지금이나 미인이다.[* 초창기 방영회차들을 보면 정말 소녀적인 청순함이 자연스러운 미인이다.] 특히 견미리와 도플갱어 수준으로 쏙 빼닮은 배우로 유명하다. * '''정명석(신명철)''' 용식, 일용, 창수, 응삼과 친하다. 귀동과 동갑. 일용, 응삼, 창수보다 한살 어림.[* 동네 청년회 멤버. 태어나면서부터 같은 동네에서 같은 학교를 다니면서 자라 형제지간에 가깝다. 그들의 아지트가 있으며 가끔 귀동이나 기홍도 낀다.] 인물이 훤하고 효자지만(효자라서) 귀동처럼 아내가 도망갔다. '양지뜸 명석이' 에피소드에서 순진한 명석이가 술집여자와 결혼했다가 그 여자가 시골 살이를 버티지 못하고 떠났다는 것이 밝혀졌다. 선술집에서 남자들의 말벗이 되어주는 떠돌이 여자 [[김해숙]]에게 반해서 결혼하자고 하지만 명석의 신세를 걱정해서 떠나버렸고 명석은 또 혼자가 되었다. '색시야 색시야'편에서는 집안의 패물을 들고 도망간 여자와 결혼했다가 음독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용식과 응삼이 달려와 자살하려던 명석을 제지하였다. 그리고 용식은 화를 주체 못하고 그 농약병을 있는 힘껏 던져버린다.] 극중 화훼농가를 하고 있다. 1992년부터 96년초까지 양촌리 이장으로 활약했으며, 1996년 초에 이장직에서 물러났다. 1995년에는 [[양희경]]과 결혼했으나, 얼마 지난 뒤, 양희경이 하차하면서 홀아비로 설정이 되돌아갔다. 1989년에 방송된 446화 '속사정' 편에서는 점쟁이(박용팔 분) 집앞으로 경운기를 같이 타고 온 일용네가 짱구네 할머니에게 명석이를 부면장 아들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 '''이귀동([[이계인]])''' 1984년에 방영된 '김칫국부터 마시네'편에서 용식의 농고 동창으로, 1985년 가을에 방영했던 '자린고비'편에서 최고비의 처남인 노경수역으로 단역 출연하였으며,[* 둘 다 귀동이 아닌 다른 인물로 등장하였다.] 초창기에 나쁜 놈으로 시장에서 옷을 팔다 동업자를 폭행하여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감옥에 갔으며[* '무지개를 찾아서'편에서 귀동이 폭행으로 체포된 부분이 있다.], 용진이 교도소로 면회오면서 아들 노마의 출산사실을 알게 됐다. 출소 후 양촌리를 떠난다. 1986년 연말특집 301회 '서울행'에서 일용이와 용식의 서울 방문 에피소드에서 아내 명자는 도망가고 아들인 노마 데리고 알콜중독 폐인으로 사는 걸 용식과 일용이가 양촌리로 데리고 오는 걸로 복귀했다. 이후 1987년 333회 '떠난 사람 보낸 사람'편에서 노마엄마 명자가 양촌리로 돌아오지만, 다른 남자와 눈 맞아 도망간 여자는 필요없다며 받아주지 않았고 명자는 다시 서울로 떠난다. 이후 홀로 노마를 키우며 이런 저런 궂은 일을 하며 살아간다. 귀동의 처지를 불쌍하게 생각한 숙이 엄마가 노마네 빨래를 해주며 이를 본 동네 사람들이 이상한 소문을 내기도 했다. 1989년 441회 '아픈 손가락'편에서는 논/밭 각 5마지기씩을 조건으로 정신지체 장애인(이 역할은 권은아가 맡았는데 후에는 김회장댁 큰며느리의 대학 친구 역도 맡았다)과의 혼사가 들어오기도 하고, 1992년 568회에서는 섭이네의 중매로 선을 보기도 하였지만 번번히 노마를 위해 포기한다. 1992년 600회 특집 '재회'편에서 드디어 노마엄마 명자가 돌아와 재결합하여 함께 살게된다. 노마 엄마와의 재결합 직전에는 쌍봉댁이 노마를 잘 키워줄테니 외로운 사람끼리 함께 살자며 프로포즈를 받기도 했다. 이후 상태네 가족이 양촌리에 산 기간에 출연하지 않았으며, 그 기간에 서울에서 개인택시를 운전하다 IMF로 위기를 겪고 주식과 경마 노름으로 패가망신한 뒤에 명자는 다시 집을 나가고 상태네가 떠난 이후 "귀동의 아들, 노마"편에서 노마와 함께 복귀하였다. 2001년 1023회 '꽃을 든 여자'편에서 맞선을 보게되지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종영 직전 서울에서 취직한 노마가 아버지를 모시겠다고 하지만, 자신은 친구들이 있는 양촌리 고향이 좋다며 남게된다. 초창기 귀동의 캐릭터는 70년대 이후 가속화 되는 이촌향도의 대세 속에서 대책없이 도시빈민으로 유입되었다가 다시 귀향을 반복하는 캐릭터로 농촌사회의 붕괴를 보여주는 캐릭터라 할 수 있다. 실제 80년대 중반 이후 농촌총각 들의 결혼문제 등은 점점 심화되어 90년대 초중반에 이르면 농촌 총각들의 농약 음독자살이 연이어 보도되는 등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던 시절이다. 우직한 성격으로 그려지나, '저수지에서 생긴 일' 에서 뇌물과 같은 돈을 받고 저수지의 낚시터 개발을 찬성하는 걸 보면 속물적인 걸 알 수 있다. * '''명자([[이미지(배우)|이미지]])''' 귀동의 아내이자, 노마의 엄마. 1985년에 방송된 "새해 첫 손님" 편에 첫 출연하여 김 회장 댁에서 노마를 출산하였다가 극중 귀동과 함께 서울로 간다. 그러나 서울에서 사업실패 후 알콜중독 폐인이 된 귀동의 폭력과 의처증에 견디다 못해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도망간다. 1987년에 방영된 "떠난 사람 보낸 사람" 편에 다시 등장하였으나 귀동의 완강한 태도로 노마를 보지도 못하고 돌아간다. 그 후 1992년에 방송된 "재회" 편에서 복귀해 귀동이와 다시 화해를 하였으며 마을회관에서 약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살아간다. 도망간 동안 술집에서 일하기도 했고,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서 전처의 자식인 영식이라는 아이를 키우기도 하였고, 딸아이도 낳지만 폐렴으로 어릴 때 일찍 죽는 등 여러가지 일들로 곤란을 겪는다. 돌아와서도 술집에서 일할 때 동료를 읍내에서 만나기도 하고, 도망간 시절 지내던 남자의 아이 영식이라는 아이가 (자신이 낳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계속 찾아 할아버지가 양촌리로 찾아오는 등 이런저런 일로 귀동과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그래도 귀동이와 가정을 이루고 산다. 귀동과의 재결합 초기에는 오랜동안 떨어져 있어 엄마와 서먹한 노마때문에 속상해 하는 에피소드도 많다. 그 과정에서 복길과 또래인 노마의 끼니를 항상 챙겨주고 보살펴주었던 일용네와 복길엄마 등과 갈등을 빚기도 한다. 이제 노마엄마는 자신이니까 노마에게 신경 좀 끄라는 말. 그러나 "배우 지망생"편을 끝으로 새로운 출연진(상태네와 병태네)이 출연한 관계로 나오지 않는 걸로 보아 하차했다. '귀동이 아들, 노마'편에서 노마의 증언으로 다시 도망갔다고 한다. 사기계에 걸려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고 한다. 여기까지 설명을 보면 개판인 여편네처럼 보이고 실제로 처음 돌아온 뒤에는 술집 경력 등으로 동네 여자들의 뒷담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후에 ‘귀동이 아들, 노마’ 편에서는 온 동네 여자들이 입을 모아 “노마엄마 정도 되니까 그만큼이라도 귀동씨와 살았다”고 할 정도의 여인. 극중에서도 주로 자식 아끼고 말수없고 인내심 많은 성격으로 나온다. 특히 상경 직전까지도 살림 불어나는 재미에 억척스럽고도 화목하게 잘 살았다고 하여 더더욱 안타까워들 했다.[* 마지막 가정파탄의 이유도 사기계도 사기계지만 귀동이 주식으로 사채까지 끌어쓰고 날려버린 점, 그로 인해 가정폭력과 주취가 심했던 것이 주 원인이다.] * '''양촌리 노인들 3인방''' 양촌리에 사는 노인들. 이름은 잘 안 불리고 주로 성씨로 불린다. * 김노인 ([[정대홍]][* 인천 화평동 냉면골목에서 냉면집을 운영중이다. 김노인 역할 때의 사진이 크게 붙어있어서 금방 찾을 수 있고 가끔씩 실물로 만날 수도 있다]) 김봉필[* 284화에서 전래민요, 민담 채집을 온 대학생들과의 인터뷰에서 등장]. 김회장의 먼 친척으로 김회장보다 1살 많은 9촌 삼종숙부. 일명 대추나무집 어르신. 슬하에 9남 2녀를 두었지만, 모두 도시나 타지에 가서 산다. 겉보기는 김회장이나 김노인이나 비슷한 연배로 보이지만 이런 설정 때문에 김회장은 세 노인을 만나면 깍듯하게 인사를 올리고 세 노인은 인사를 받으며 대충 하게체 정도를 쓴다. 세 노인중 가장 유쾌하고 활발한 성격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왠만해선 허허 웃고만다. 그 대신 나잇값을 못하고 덜렁대는 기믹이 있는지 제법 마을에서 분란을 일으킨 에피소드가 제법 있다. 노인 3인방 중에서 젊은 시절에는 제일 방탕하였던 것으로 나온다. 주색잡기로 어느 정도는 가산을 탕진하고 노년을 궁핍하게 지내는 설정이다.[* 444회 '긴 외출' 편에서 마을에서 제일 악명 높은 호랑방탕한 문태 아버지( 배우 최낙천 분)가 젊어서 술집여자와 바람나서 처자식 버리고 유랑하다가 몇십년만에 마을로 돌아왔다 도로 쫓겨가는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박 노인을 비롯해서 마을 사람 대부분 반기지 않지만, 유독 김노인만 어릴적 친구가 돌아왔는데 사람들이 너무 매정하다며 편을 들어주며 반긴다. 이에 같은 친구이지만 박노인은 저놈이 사람새끼냐며 마을에 발을 붙히지 못하게 해야한다며 역정을 내는데, 김노인 저 녀석도 젊은 시절 문태 아버지와 같이 죽이 맞아서 많이도 따라 다니며 흥청망청 술집에, 계집질하고 다녔다며 타박하는 내용이 나온다] * 박노인 (홍민우[* 드라마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에서 [[이희성]] 육군참모총장 역으로 출연하였다.]) 1987년에 방영된 '지각예물'편에서 박칠복이라는 이름이 알려졌다. 일명 새터집 어르신. 박응삼의 7촌 재종숙부이기도 하며, 친구인 이노인과도 먼 사돈 친인척뻘이다. 슬하에 7남매를 두었으나 대부분 일찍 죽거나 대만등 외국으로 이민을 갔으며, 막내 아들은 베트남전에서 전사한 것으로 나온다. 전사한 막내아들의 동료가 현충일에 맞추어 박노인을 찾아오는 에피소드도 있다. 분명 과거 에피소드에는 한 집에서 사는 아들과 며느리, 손자까지도 있었으나 후에는 아예 사고무친인 것처럼 나온다.[* 김노인이 ‘자네는 자식 없어서 그런 마음 모른다’ 라고 말실수를 하여 대판 싸우는 에피소드. 분명 타임워프 이후에도 자식이 있거나 최소한 있었던 설정인데도 마치 처음부터 자식이 없었던 것처럼 나온다. 또 이노인 사후 김노인도 자식 집으로 가기로 하자 박노인 혼자 아무 피붙이도 없어 스스로 요양원으로 간다고도 한다.] * 이노인([[정태섭]][* 1973년 MBC 6기 공채 탤런트로 입사. 1998년부터 2년여 간 탤런트실장도 역임했다가 2001년 8월 7일에 [[직장암]] 병세 악화로 사망하였다. 향년 51세.]) 이귀동의 친가 7촌 서얼 재종백부(再從伯父)이자 최만순(섭이 부)의 외가 5촌 외종백부(外從伯父). 김회장과 함께 마을 어르신들 중 나름 교육수준이 높은 설정. 때문에 세 노인중에서도 가장 기품있고 근엄하고 동네에서도 가장 존중받는데, 이게 가끔은 꼰대처럼 나올 때도 있다. 극중 초중기까지는 노인 3인방 중 유일하게 혼자가 아니라 재취로 들인 처가 있는 설정. 극중 92년 할머니가 사망. 김회장과 더불어 마을 어르신들 중 한학에도 밝고, 침술사 역할도 하고 있으며, 노인 3인방 중에서는 경제적으로 제일 부유하다. 슬하의 자식들도 서울에서 성공한 것으로 그려진다. 이노인의 와병으로 서울에 있는 자식들이 내려와 모인 자리에서 일용엄니의 대사로 일제강점기부터 근동에서 나름 부유한 양반가 후예인 것이 밝혀지는데, 부유함에도 아랫사람들에게 함부로 하지 않는 가풍 덕에 한국전쟁시(극중 인공치하라고 나온다. 인민공화국을 말하는 것) 에도 집안의 종들이(악질 지주라고 고발하기는 커녕) 자진해서 숨겨줘서 대지주임에도 [[인민재판]]에 끌려가 죽지않은 [[노블리스 오블리제]] 인격자 집안으로 나온다. 92년 배우자의 사망 이후 서울의 장남이 모셔가지만, 답답한 서울살이에 대한 염증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다시 귀향하여 5촌 조카며느리인 섭이네의 부양을 받으며 살아가는데, 나름 부농이었던 배경으로 보면, 조카며느리에게 부양을 받는 대신에 토지 증여등으로 경제적 보상을 해주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죽은 남편의 5촌 숙부를 시부모처럼 봉양하고 사는 섭이네도 대단한 것이다. '날 저무는 하늘에'편에서 서울 아들네 집에서 와병중 사망했다고 처리되며 하차하는데, 이는 다름아닌 배우 정태섭의 실제 별세로 인해 나온 설정이다. 극중 이노인의 [[장례식]]은 단순히 연기가 아니라 정말로 배우들이 애도하는 마음으로 임한 모습이다. * '''만순([[홍순창]], [[김호영(1946)|김호영]])''' 섭이 아빠. 1980년대 초반에는 홍순창이 만순 역으로 출연했으나 그 이후 다른 배역으로 단역에 출연하였다.[* 1989년에 방영된 '외상값'편에서 김회장 집을 방문한 손님 역으로, 1996년에 방영된 '그래! 촌놈이다!' 편에서 일용을 조사한 형사역으로, 1999년에 방영된 '순영의 추석' 편에서 상인으로, 1997년 방영된 '볼펜농사' 편에서 용식에게 조언을 해주는 농부역으로 출연하였으며 1980년대 이후 단역으로 여러번 출연하였다.] 1989년에는 김호영이 출연한 적이 있었다. * '''숙이네 김귀순(김명희[* KBS 2TV 드라마 장희빈에서 무당 막례 역할로 출연했다.])''' 부녀회장과 삼인방. 숙이 엄마는 사연이 많은 인물로,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어 시할머니, 시할아버지, 중풍 환자였던 시아버지와 치매 걸린 시어머니를 집에서 수발을 들었다. 양촌리에서 이름난 효부. 옆동네 남자와 한때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불쌍한 시어머니와 숙이를 생각해 그 남자(상대배우는 김인문)와 헤어졌다. 이후에도 슬픈 찻주전자 등의 에피소드에서 방물장수와 거의 마음을 합칠 뻔했다가 포기하는 등 과부 신세로서의 에피소드는 거의 숙이네 전담이다.(해당 에피소드의 방물장수역은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견훤의 초기 책사를 맡았던 배우 정진) * '''섭이엄마([[김정(배우)|김정]])''' 만순의 아내, 딸과 며느리 편에서 동네에 들어서는 김회장네 장녀 영숙이(엄유신) 를 보면서 동갑이라고 했다. 노인 3인방중 이노인의 조카며느리이다. 정황상 극중간에 남편도 여의고 혼자 섭이를 키운 여인인데, 이노인이 그녀의 5촌 시백부. 그 시백부의 자녀들은 도시에 살고 있어 노인이 병이 들자 병원과 집으로 모시려 했으나 노인이 굳이 양촌리에 계속 살고 싶어해 섭이네가 본인도 힘이 들지만 노인을 위해 계속 끼니를 챙기고 돌보아 드리겠다고 해 노인도 양촌리로 돌아온다. 시부모도 아닌 5촌 시백부를 삼시세끼 해바치며 계속 곁에서 돌보는 인내의 여인. 때때로 이노인이 섭이네에게 봉투를 건네는 등 돌봄을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5촌 조카 처인 질부임에도 하게체가 아닌 얘, 야, 너라고 부르는 등 교육받은 양반이라는 이노인의 설정에도 불구하고 하대한다. 그나마 이노인의 자식들은 섭이네에게 마냥 고마워하기는 한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 * '''송갑수[* 1984년에 방영된 '추수가 끝난 뒤' 편에서 공개되었다.]([[김상순(배우)|김상순]])''' 방영초기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양촌리 이장으로 출연하였고, 그 후 양촌리를 떠나면서 하차하였다. 자식농사편에서는 10년째 이장이라는 언급도 있었다. '추수가 끝난 뒤'편에서 이장직 그만 한다고 발언했다가 곧바로 추대되었다. --[[수사반장(드라마)|경찰서에서 김회장의 부하였으며]] 양촌리에서 이장하다가 [[대추나무 사랑걸렸네|김포로 이사간 뒤 놀부 소리를 들었다]].-- * '''갑수의 부인([[박원숙]])''' 1980년대에 출연하였다. 당시 출연한 많은 자료가 현재 남아있지 않아 1984년에 방영된 부분부터 등장한다. 1984년에 방영된 '자식농사'편에서 이장과 부부사이로 나온다. 방영초기에는 양촌리 부녀회장이었다. 복이 많은 여인으로 그려졌는지, 혼수이불은 장만할 때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여자가 첫 땀을 놓는것이 좋다면서 김회장댁 막내딸 영애의 혼수 이불 첫 땀을 갑수 처가 놓는 장면이 있다. 1986년[* 이해 방영된 '양지뜸 사람들'편에 출연했다.] 이후 하차하면서 부녀회장 자리는 종기엄마가 당선된다. * '''신순만([[신충식]])'''[* 참고로 경북대 수의학과를 나온 엘리트다. 이과 문과 부부 엘리트..] 종기의 아버지이자 부녀회장의 남편. 성격이 고약하다. 1996년에 방영된 '면허증 좀 봅시다'편에서 운전하다가 사고를 낸 적이 있었다. 주로 종기네 갈등은 종기엄마의 춤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었다. 부인에게 여자가 말이야~ 라면서 차별적인 발언과 툭하면 손올리는 버릇과 자기 잘못한 것에 대해서 제대로 된 반성을 하지 않는다. 나이가 김회장보다는 젊고 김회장의 아들들보다는 위라 용진, 용식, 일용, 응삼, 창수 등도 순만이형이 아니라 순만형님이라는 적당한 존칭으로 부른다. 어느 방영분에서 성이 신씨라는 것이 밝혀졌다. 종기아버지가 마을 청년들보다 나이도 애매하게 많지만, 어느 정도 버성거리는 이유는 종기아버지는 마을출신 토박이가 아니다. 종기 엄마가 인근 근동 출신이고, 종기 아버지는 종기 엄마와 결혼 후 양촌리로 들어온 외지인이기 때문. 어려서부터 한 마을에서 자란 사이가 아니기 때문에 마을 청년들과 아주 친밀하지는 못하다는 설정. * '''응삼엄마([[유명순]], [[김영옥(배우)|김영옥]])''' 김영옥은 예전 회차에서는 응삼엄마 역 겸 단역으로 출연했다[* '양지뜸 명석이' 편에서는 읍내 식당 사장역으로, 1991년에 방영된 '고모 할머니' 편에서 용인 왕고모 할머니역으로 출연했다.] 911화에서도 응삼엄마로 출연. 그 후에는 전부 유명순이 출연하였다. 배우가 누구든지간에 응삼을 결혼시키지 못해 속이 끓다 썩는 중으로 그려진다. 그 와중에 혼사가 이루어지는 쌍봉댁은 사사건건 퉁박을 놓는다. 응삼이 왜 이혼했는지, 왜 재혼이 늦어졌는지 알 수 있게 하는 배역. * '''노마(정인호[* 성인 노마역으로 출연하였다. 2001년 1집 앨범을 발표. 천정명 주연의 뮤직비디오도 나왔다. 대표곡은 '해요'.], 임진욱[* 1993년에 방영된 "이웃 사촌"편을 끝으로 하차하였다.], [[김태진(한의사)|김태진]][* 현재 한의사가 되었다. 2019년 10월 [[밥은 먹고 다니냐?]]에서 [[김수미]]와 재회했다. [[https://youtu.be/eETL6KzGyFM|영상]] ], 김상현[* 타임워프 이후 고등학생 노마로 출연하다 노마네가 서울로 가면서 하차 했다.])''' 귀동의 아들. '새해 첫 손님'편에서 명자가 김회장의 집에서 낳은 아이다. 1997년에 방영된 '부전자전'편에서 다른 사람이 어버지 귀동을 욕한 것이 문제가 되어 주먹질을 하였다. 참고로 귀동은 이씨다. 대학에 복학하기 위해 택시기사로 일한 적이 있었다. 참고로, 극중 어린 시절의 노마는 굉장히 우울한 모습으로 많이 나오는데, 301회 '서울행'편에서 용식과 일용이 서울에 가서 명자의 가출 이후 폐인처럼 지내는 귀동과 노마를 데리고 양촌리로 귀향한다. 이후 600회 특집에서 엄마 명자가 돌아올 때까지 무려 300회 분량을 엄마없이 자라는 아이 역할인데, 귀동은 귀향 이후에도 한동안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술로 세월을 보내고, 이후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후에도 하는 일마다 안 풀리는 캐릭터. 자연히 집에서 거친 아버지의 술주정과 눈치를 보며 자라는 노마는 마치 자폐아로 보일만큼 말수가 없고 내성적이며 어른 눈치를 보는 아이였다. 심리적으로도 굉장히 불안해서 밤에 자다가 몽유병처럼 일어나 맨발로 집밖을 서성이는 등 이상행동을 보이기도 해서 아버지 귀동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귀동이 일하러 나간 시간 노마를 실질적으로 양육해준 것은 일용엄니다. 끼니 때 되면 (자신들의 형편도 넉넉치 않음에도) 군말없이 노마를 데려다가 복길과 함께 밥 먹이고 씻기고 재우며 키워줬다. 어린 시절의 노마는 복길과 남매처럼 컸다고 보면 된다.[* 600회 이후 엄마 명자가 자신이 양촌리로 돌아왔음에도 복길네와 일용엄니가 지속적으로 노마를 케어해주자 이제 노마 키우는 것은 엄마인 자신한테 맡기고 신경 끄라는 식으로 하내며 서운해하는 장면도 나올 정도.] 이런 불우한 시절을 견디고 자란 노마는 다행히 성장해서는 (비뚤어지지 않고) 매우 성실한 아이로 컸는데, 공부도 잘해서 대학도 가고 (극 후반부 명자의 재 가출 이후) 혼자 된 아버지 귀동에 대한 효심도 갖춘 캐릭터로 성장했다. 오히려 수남이보다 공부도 잘하고 성실해서 수남모 순영이 셈을 낼 정도. * '''의사([[한규희]])''' 의사로 가끔씩 등장. 그 외에 1986년에 방영된 '세월'편에서 수족을 못 쓰는 귀염의 남편 역으로, 1992년에 방영된 '친정 오빠'편에서 사업에 실패해 양촌리로 피신한 순영의 오빠 역으로, 1996년에 방영된 '그 여름의 끝'편에서 군청 감사실장 역으로 단역출연하였다. * '''김회장 조카([[김기현(성우)|김기현]])''' 초기에 등장.(1985년 《열두달을 일년같이》편 외) 이후 1988년에 방영된 '확실히 해둡시다'편에서 냄비장수 역으로 출연하였다. * '''숙이([[전미선]], [[김소이]])''' 1990년대에는 전미선이 출연하였다가, 1999년 이후 김소이로 교체하였다. * '''남수([[양동재]])''' 농과대학을 졸업했으며, 그 때문인지 첫 등장때부터 재동이네와 부녀회장 사이에 발생한 갈등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인다.[* 재동이네가 농약을 많이 쳐서 부녀회장네 고추가 시들었다고 부녀회장이 주장했는데 남수가 지나가다 들려서 고추를 자세히 관찰하더니 농약때문이 아니라 비료로 인해 토양이 산성화 돼서 그런다고(...)] '가을의 문턱에서'편[* 실제 1999년 9월 12일에 방영됐으나 해당 화는 KTV에서 미방영, 엣지TV에서 140회로 방영됐다.]에서 본격적으로 양촌리로 이사온 귀농인이며 병태의 친구다. 그러나 2002년에 방영된 "보릿고개도 아닌데"편에서 병중에 있는 아버지 사업을 돕기위해 서울로 가게 되면서 하차한다. 고정출연 이전에는 1994년 '홑이불 도깨비' 편에서 양촌리에 피서왔다가 쫓겨나는 양아치 역할로, 1996년에는 '남과 여' 하편에서 응삼과 김씨와 싸움으로 두 사람을 조사한 파출소 경찰 역으로 출연하였다. 병태와 금동과 친하다. 사람좋고 배려심도 많고 선한 인물이지만 이따끔씩 병태와 금동을 술집으로 꾀어서 데리고 가는 바람에 남영과 윤희에게 눈총을 받는다. 서울로 떠기 전 날에도 술값 28만원을 금동이 내게 했다. 술 취하면 모든 걸 다 불어버리는 주사를 가졌다. 그리고 본인은 기억을 못한다... * '''보배(최진애)''' 극중 기홍과 희옥이 입양한 딸로 나온다. 성인 무렵부터 등장하다 825 빈집 있습니까 편 끝으로 하차하였다. * '''종기(김재강)''' 부녀회장의 아들이다. 1980년대에 주로 등장하였으나, 1990년대 초반을 끝으로 하차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