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쟁범죄 (문단 편집) == [[무죄]] 또는 [[불기소처분]]을 받은 인물 == 특히 무죄가 당연한 사람들은 {{{#green '''녹색 볼드체'''}}}로 표기한다. * [[쇼와 덴노]]: [[도조 히데키]]의 군부가 날뛰는 상황이었기는 하나 최종 전쟁 허가 지시는 천황의 몫으로써 당연히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의 모든 전쟁 범죄에 대한 책임이 있지만 천황과 황족을 처벌하면 일본 국민들을 포섭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더글라스 맥아더]] 원수가 반대해 전범 재판에 불기소 처분되었다. 그 대가로 오키나와가 미국에 넘어갔다. * [[노부히토|{{{#green 노부히토}}}]]: 실제로도 2차 대전 당시 막내 동생인 [[다카히토]]와 함께 도조 히데키 등 군부와 큰형 [[쇼와 덴노|히로히토]]가 일으킨 전쟁에 반대했고, 성정과 인품도 비교적 정상적이어서 종전 후 연합국 내부에서도 히로히토를 퇴위, 처벌하고 이 사람이나 히로히토의 아들이자 노부히토의 조카인 [[아키히토]]를 새 천황에 즉위시키자는 의견도 있었다. * [[다카히토|{{{#green 다카히토}}}]] * [[아돌프 갈란트|{{{#green 아돌프 갈란트}}}]]: 전후 발언이 논란이 되었으나 친구 [[더글러스 베이더]]의 적극적인 변호로 무죄 판결. 조국을 위해 싸웠다는 말 자체는 누가 봐도 별 문제가 없는 발언이었던 지라 대부분 이해했다. * [[아사카 야스히코|아사카노미야 야스히코]]: [[난징 대학살]]의 실제 주범으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어디까지나 황족 신분이기 때문에 불기소 처리되었을 뿐이다. * [[알베르트 괴링|{{{#green 알베르트 괴링}}}]] * [[욘 라베|{{{#green 욘 라베}}}]]: 전후 소련과 영국에 의해 재판에 회부되었고 곧 무죄로 풀려나긴 했으나, 이 과정에서 자신은 전쟁 범죄에 참여한 적이 없다는 증거를 입증하는 중 막대한 양의 재산을 날리고 만다. * [[얄마르 샤흐트|{{{#green 얄마르 샤흐트}}}]]: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 당시 검사의 실수로 기소됐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 [[테오도어 모렐|{{{#green 테오도어 모렐}}}]]: 히틀러의 주치의. 돌팔이였지만 [[카를 브란트]] 같은 자들과는 달리 잔혹한 인체실험에 참여하지 않았다. 덕분에 연합국에 잡힌 후에도 별 탈 없이 석방되어, 다른 나치 의사들이 처형될 때 고향에 있는 침대에 누워 편히 숨을 거뒀다. * [[기시 노부스케]]: 스가모 구치소 수감 후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석방. * [[도미나가 교지|{{{#green 도미나가 교지}}}]]: [[무타구치 렌야]]와 마찬가지로 군사적인 면으로는 극단적으로 무능한 사람이었기에 어마어마하게 비판받지만, 그와 상대적으로 인품은 매우 인간적이었기 때문에 마닐라 대학살 당시 민간인 쪽에 붙어서 민간인을 구출하고, 민간인을 학살하려는 아군에 공격하겠다는 협박까지 하는 등 민간인 구호에 노력했다. 따라서 졸장이었을지언정, 전범은 아니었다. * [[레니 리펜슈탈]] *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나치의 제국음악가협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나치 전당대회와 1942년의 히틀러 생일 기념 연주회에서 연주를 했다는 혐의로 전범재판에 섰지만, 사실은 그러면서 뒤로는 유대인 음악가들의 구출을 남몰래 도왔기 때문에 유대인 음악가들의 구명 운동으로 무죄를 판결받았다. * [[베르너 폰 브라운]]: [[페이퍼클립 작전]]으로 포섭되어 감옥을 거치지 않고 바로 미 육군을 거쳐 NASA에 복무하였다. * [[오토 스코르체니]]: 인간 흉기로 유명한 이 사람은 그간의 특수 작전들과 [[아르덴 대공세]] 당시 위장 특수부대를 지휘했던 점,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당시 뒷수습을 했던 점 등으로 연합국에 큰 위협이었던 만큼 검사 측은 그를 처형하기 위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하지만 위장부대는 연합국 특수부대도 운용했으므로 이를 가지고 기소할 수 없으니, 스코르체니가 하지도 않은 포로에 대한 고문 및 살해, 민간인 학살 등을 저질렀다고 주장하며 사형을 요구했으나, 당연히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실제로 오토 스코르체니의 1976년판 자서전을 보면 자신은 마땅히 무죄를 받았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검사 측이 스코르체니가 하지 않은 일을 가지고 억지로 사형을 구형한 데 대한 반발심이 크다. * [[가와베 마사카즈]]: 전범 재판에서 [[만장일치]] 무죄를 받았다. 부하들을 아낀 [[덕장]]이었으나, [[죽음의 철도]] 관련 실질적인 책임자였다는 논란이 있다. * [[무타구치 렌야|{{{#green 무타구치 렌야}}}]]: 무능한 장군이긴 했어도 전쟁 범죄를 일으킨 적은 없어서 도쿄 전범 재판에서 불기소 처분됐다.[* 당연한 말이지만 전범은 개인의 능력과는 무관하기 때문에, 너무 무능해서 연합군에 오히려 기여를 했다는 이유로 무죄를 주지는 않는다.] 대신 [[싱가포르]] 재판에 송치돼서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기 까지 2년을 살다 왔는데, 워낙 대접이 좋았는지 일본에 돌아올 당시 살이 더 쪄있었다. 다만 [[중일전쟁]] 발발에 책임이 있다. * [[찬드라 보스]] 및 [[자유 인도 임시정부]] 구성원들: 영국이 인도에서 손 떼려고 해서 재판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데다 인도 민중들의 저항이 매우 거셌고, 자와할랄 네루가 INA 변호 위원회를 조직하여 대부분 무죄나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 [[츠지 마사노부]]: 도피 생활로 공소시효를 넘겼지만 일반적으로 전범으로 규정된다. * [[프란츠 폰 파펜]]: 분명 나치당의 정권 장악에 큰 책임이 있는 열성 나치 지지자였는데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 [[하인츠 구데리안]]: 뉘른베르크 재판에서는 구데리안의 기소 혐의에 대해 군인으로서 정당한 자세에 입각했다는 판결을 내렸다. 폴란드는 비츠나 전투 당시 구데리안이 폴란드군 사령관에게 항복하지 않으면 포로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는 내용으로 고발하였지만 이는 교전 중인 부대 간에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허풍으로 판단되었고, 폴란드에서 유용했다는 저택 또한 원래 독일의 영토였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 [[한스 프리체]]: 괴벨스의 목소리 대역을 맡아 괴벨스 대신 기소되었으나 무죄 판결. * [[타허 타우피크 알 아니]] * [[페트레 두미트레스쿠]] * [[오카와 슈메이]] * [[아리엘 샤론]]: 분명히 사브라 샤틸라 학살과 [[레바논 내전]] 중 1982년 레바논 침공에 큰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죄라는 말도 안되는 판결을 받았다. 법정에서는 이는 모두 자신의 책임이 아니며 [[노엘 갤러거|이는 모두 미국과 카테브당, 시리아의 탓이니 걔네를 탓하라고]] 뻔뻔하게 자기 변호를 하였다. [[카테브당]]과 [[시리아]]는 어느 정도 책임이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