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주원 (문단 편집) === 실업 시기 === 선일초등학교 5학년 시기에 농구에 처음 입문. 선일여중고를 거쳐 1990-1991 시즌 현대산업개발에 입단, 성인 무대에 데뷔한다. 현대가 그녀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정주영|왕회장님]]이~~ 2억을 베팅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실업 1년 차에 국가대표로 발탁됐을 정도로 장래가 촉망되는 가드였다. 데뷔 당시로서는 대형 가드였던지라 농구포지션 [[포인트 가드|1번]]부터 [[파워 포워드|4번]]까지 뛰었으며 간혹 [[센터(농구)|5번]]도 소화한 올라운드 플레이어였다. 그러나 그녀의 장점은 경기를 보는 시야가 넓고 리딩능력이 뛰어나 최종적으로 [[포인트 가드]]로 포지션을 자리잡았다. 포인트 가드로써 제 실력이 만개해 1990-1991 시즌 신인왕을 비롯 WKBL로 전환되기 전까지 한 해만 빼고 베스트5에 7회 선정됐다.(1991, 93~98) [[트리플 더블]]을 프로에서 두 차례, [[농구대잔치]]에서 한 차례 기록한 바 있다. 첫 트리플 더블은 1996년에 기록하였는데 여자 농구선수로써는 두 번째이고, 남녀 통틀어 네 번째로 이루게 된 트리플 더블이다.[[http://m.munhwa.com/mnews/view.html?no=19961202250009|#]] 1999년에 두 번째 트리플 더블을 기록했는데 프로여자농구가 출범한 이후 [[정은순]]에 이은 두 번째의 트리플 더블이었다.[[http://m.munhwa.com/mnews/view.html?no=1999081020008801|#]]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트리플 더블이 있는데, 바로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쿠바]]와의 조별 예선 경기에서 올림픽 여자 농구 역사상 최초로 [[트리플 더블]]에 성공한 것이다. 본인 스스로는 미국 선수들이 풀타임을 뛰었다면, 충분히 달성했을 거라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이 기록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것 맞다. 오오오. 그리고 2021년 현재까지도 올림픽에서 트리플 더블을 달성한 여자 농구선수는 전세계를 통틀어 전주원이 유일하다. [[1990년대]] [[정은순]], [[유영주]], [[정선민]] 등과 함께 [[대한민국]] 여자농구의 간판으로 활약했다. 특히 이들과 함께했던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4강에 오르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다만 [[유영주]]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으며, 이듬해 은퇴했다.] 시드니 올림픽 4강은 [[1984 LA 올림픽]] 은메달 이후 최고 성적이며, LA 올림픽이 공산진영이 거부한 반쪽짜리 올림픽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가히 엄청난 성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전주원은 이 올림픽에서 예선부터 3-4위 결정전까지 8게임을 뛰면서 총 31개의 어시스트를 기록, 게임당 4.4개로 12개 출전국 선수중 가장 많은 어시스트를 하였다.[[https://m.yna.co.kr/amp/view/AKR20001001001700007| ]] 이 때가 한국여자농구의 최전성기라 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