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진교 (문단 편집) === [[김용(1924)|김용]]의 [[무협소설]] === 《[[사조영웅전]]》과 《[[신조협려]]》에 등장한다. 작중에서 [[정파(무협 소설)|명문정파]]이자 무학의 정종으로 여겨지고 있다. 1대 장교(교주)는 [[왕중양]], 2대 장교는 [[마옥]]. 본산은 종남산(終南山)에 있는 중양궁(重陽宮)이다. 바로 옆동네에 [[고묘파]]가 있다. 나중 시대를 다른 무협소설에서는 같은 동네에 [[종남파]]가 들어선다. [[주백통]]은 왕중양의 사제인 만큼 일단 전진교와 한 문하에 속하고 있으며, 항렬상 가장 높다. 하지만 주백통은 자유롭고 소탈한 성격 때문에 교단에 대한 일에 나서기를 싫어해서 [[마옥]], [[구처기]], [[왕처일]]등의 [[전진칠자]]가 교단의 중심이 되어 운영을 맡고 있다. 왕중양은 [[천하제일인]]이었지만 자신의 무공을 제자들에게 제대로 전해주지 못했고, 결정적으로 연배에 비해 일찍 병으로 죽어서 제자들의 무공수위는 [[천하오절]] 급에 비할 바는 못된다.[* 선천공 같은 무공이 후대에 그 누구도 쓰거나 연성하는 묘사가 없는걸 보면 거의 확실하다.] 하지만 현문정종내공심법 등 훌륭한 무공도 많이 갖추고 있다. 1대인 왕중양과 주백통을 제외하면 급격히 질이 안 좋아지는 문파. [[왕중양]]과 [[주백통]]은 [[천하오절]]의 최강자, [[전진칠자]]는 그에 비하면 어중이 떠중이 수준, 3대 제자인 [[윤지평]] 등에 이르면 강간범에 아동학대범에 매국노.(…) 그냥 쉽게 말해서 왕중양과 주백통은 1,2대 천하오절 가운데 으뜸가는 무림 최강 고수들이지만 제자들은 먹칠만 안하면 다행이다. 사조영웅전의 전진칠자는 왕중양이 일찍 죽은 탓인지 진전을 전혀 잇지 못했다.[* 다만 같은 천하오절인 일등의 제자 어초경독, 황약사의 제자 진매곡육, 구양봉의 조카 구양극도 무공수위로는 전진칠자와 별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홍칠공의 제자들의 경우 곽정, 황용 이전까지는 무공을 제대로 전수받은 제자가 없어서 개방 장로들의 무공은 오히려 전진칠자보다도 떨어진다. 학대통과 동급인 곽도가 개방 장로중에 그나마 무공이 강한 편인 노유각을 비교적 손쉽게 패퇴시킬 정도.]왕중양이 전해준 천강북두진을 7명이 사력을 다해 펼쳐야 천하오절 중 하나인 황약사와 팽팽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빈틈을 노린 구양봉에게 담처단이 죽고, 마옥이 병사해서 신조협려에서는 전진오자만 남는다. 신조협려에서 곽정 한 명이 전진교의 3대 및 4대 제자 수십명~백명 수준이 펼치는 천강북두진을 와해시키고 빠져나가는 지경이다. 남아있던 전진오자는 너무 떨어지는 제자들 때문에 고심해서 칠성취회라는 진법을 만들었지만 금륜법왕과 소용녀에게 당한다. 의천도룡기까지 가면 아예 소식이 없다.[* 계보대로라면 당시 몽골에 의해 종남산이 폐관되었고, 남아있던 전진오자는 그대로 흩어져 각종 문파를 창설한다. 그 중 확실한 문파가 바로 학대통이 창설한 화산파.] 《[[소오강호]]》 등 이후의 시대를 다룬 김용의 무협소설에서 전진교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무협소설만 본 사람들 중에는 사라졌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는데, 현실 속에서 전진교나 그 계통의 도가 문파들은 현재까지 멀쩡히 영업하고 있다. 섣달그믐 사흘 전에 문하의 제자들이 모두 모여서 무공을 겨루는 관례가 있다. 우선 전진칠자의 제자들을 스승 단위로 조를 짜서 겨루는 것을 소교(小較)라고 하고, 거기에서 승리한 제자들이 겨루는 마지막 결전은 대교(大較)라고 했다. 전진교 제자들의 급수는 다음과 같다. 처(處), 지(志), 청(淸), 정(靜)을 항렬로 삼는다고 하며, 전진칠자는 좀 다르지만 윤지평 이하는 이름에 반드시 지, 청, 정 자가 들어가는 걸로 통일되어 있다. * 1대: [[왕중양]], [[주백통]](장교: 왕중양) * 2대: [[전진칠자]](장교: 마옥 → 구처기) * 3대: [[윤지평]], [[조지경]], 이지상, [[최지방]](장교: 윤지평→조지경→이지상[* 역사상으로는 이지상, 왕지경, 왕지탄, 기지성 등이 차례로 장교를 역임했다.]) 김용의 무협소설인 사조영웅전, 신조협려에 등장해서 유명한데 작중 이들은 실제 활동시기보다 30년에서 50년정도 생몰년대가 늦춰졌다. 실존인물들의 생몰연대는 아래와 같은데 왕중양 1112년생 ~ 1170년 사망. (58세) 마옥 - 1123년생 ~ 1183년 사망. (60세) 손불이 - 1119년생 ~ 1182년 사망. (63세) 담처단 - 1123년생 ~ 1185년 사망. (62세) 왕처일 - 1142년생 ~ 1217년 사망. (75세) 구처기 - 1148년생 ~ 1227년 사망. (79세) 유처현 - 1147년생. ~ 1203년 사망. (56세) 학대통 - 1140년생. ~ 1212년 사망. (72세) 윤지평 - 1169년생 ~ 1251년 사망 (82세) 사조영웅전은 1199년(송나라 영종 경원 5년 동짓달) 구처기(당시 30세)와 곽소천, 양철심의 만남으로 시작되며 곽정이 1200년에 출생한다. 곽정이 20세인 1220년에 25년만에 이뤄진 2차 화산논검이라는 서술로 보아 1195년에 1차 화산논검이 벌어졌고, 1217년생인 양과가 성인으로 성장하는 1240년대까지도 전진칠자들은 계속 등장한다. 이들을 작품에 등장시키기 위해 왕중양은 대략 1140년대생정도, 실제 사형제끼리 나이 차이가 많았던 전진칠자들은 모두 동년배에 1160대~70년대 출생 정도로 설정한 듯 하다. 작중 곽정보다 2살 위로 묘사되는 윤지평조차 실제로 1169년생으로 곽정보다 31세 연상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