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폐제(유송) (문단 편집) === 근친 살해하다 자기도 죽다 === 그러다가 고조 무제 [[유유(송무제)|유유]]의 4남이자 작은 할아버지였던 강하왕(江夏王) 유의공(劉義恭)을 추대하려던 [[음모]]가 포착되자, 유의공을 죽여 시체를 8조각으로 자르고 배를 갈랐으며 눈알을 뽑아 꿀에 넣어서 '귀목종'(귀신 눈깔떡)으로 만들었다. 더불어 유의공의 남은 네 아들까지 모두 죽였다. 유의공은 아들이 16명이었는데 이전에 원흉 [[원흉소|유소]]에게 12명의 아들을 잃었다. 따라서 이때 유의공의 대는 끊기고 말았다. 그 외에 '''대대로 세 번째 아들이 황제가 됐다는 이유로''' 종실의 셋째 아들들을 골라 죽이기도 했다. 실제로 유자업의 할아버지 문제 유의륭과 아버지 효무제 유준이 셋째 아들이다. 이렇게 기괴귀축한 삶을 살던 유자업의 끝장 역시 황당했다. 어느 날, 꿈속에서 어떤 여자가 자신을 저주하자, 그 여자와 비슷한 여자를 잡아 죽였다. 하지만 그의 계속된 폭정에 참다못한 유욱과 신하들이 그를 죽이기로 결정한다. 그래서 유자업은 죽림당에서 궁녀들과 '''알몸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이때 궁녀 1명이 거부하자 바로 그녀를 참수하기도 했다. 유자업은 꿈에서 본 그 여자 귀신을 보고 귀신 잡으러 다니다가 유욱과 신하들의 지시를 받고 대기하고 있던 환관 수적지와 그의 부하들에게 살해되었다. 수적지가 근위병들이 없는 틈을 타 숨겨두었던 칼을 빼들어 죽이려 하나 유자업이 도주하여 실패했지만 사전에 지시를 받은 수적지의 부하들이 유자업을 붙잡았고 유자업은 바로 수적지의 칼에 찔려 죽었다. 유자업은 죽은 뒤 단양 말릉현 남교단 서쪽에 매장되었다. 그런데 '''유자업의 이 폭정들은 겨우 1년 안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게다가 위의 초상화와는 달리 사망시는 만 16세.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