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홍숙 (문단 편집) == 생애 == 전홍숙은 929년에 [[세종(오월)|전원관]]의 아들로 태어났고, [[성종(오월)|전홍좌]], [[전홍종]]의 아우이다. 947년에 즉위한 제4대 군주인 전홍종이 군인들을 장악하는 데에 실패하여 퇴위당했고, 아우인 전홍숙이 즉위하였다. 전홍숙은 정변의 주동자인 호진사가 형을 해치려는 것을 우려하여 전홍종을 다른 곳으로 옮겨 그를 우대하였다. 전홍숙의 재위기에는 [[남당]]이 [[후주]]의 공격으로 약화되면서 오월은 평온했다. [[남당]]이 약화된 틈을 타서 오월에서도 남당에 대한 침공을 감행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960년에 [[북송]]이 건국된 이후, 975년 전홍숙은 [[북송]]의 남당 정벌을 도와, 남당을 멸망시켰다. 남당이 멸망한 이후, 오월이 북송과 직접적으로 국경을 접하게 되자 결국 전홍숙은 태평흥국 3년(978년)에 나라를 바치며 오월의 종말을 고하였다. [[북송]]의 [[태종(송)|태종]]은 전홍숙을 우대하여 회해국왕(淮海國王)의 작위를 내리고, 회진해숭문요무선덕수도공신(淮鎮海崇文耀武宣德守道功臣)으로 삼았다. 오월이 멸망한 이후 전홍숙은 이듬해에 [[북한(오대십국시대)|북한]] 정벌에도 참가했으며, 한남국왕(漢南國王), 남양국왕(南陽國王) 등의 작위를 받았다. 이후 전홍숙은 [[북송]]에서 안락한 여생을 보내다가 988년에 사망하였다. 전홍숙은 태종에 의해 진왕(秦王)으로 추봉되었고, 충의왕(忠懿王)으로 추시되었다. 오월국이 후세에 평가가 좋은 것은 전홍숙이 천하가 돌아가는 판세를 정확하게 읽어서, [[북송]]과 싸우지 않고 항복했기 때문이다. 다른 십국의 군주들은 거의 다 독살 등 안 좋은 결말을 맞이했지만, 전씨 일족들은 이후로도 부귀영화를 유지했으며 백가성[* [[북송]] 당시 [[송나라]] 여러 성씨들을 모은 책으로 중국인들은 잘 아는 책이다.]에서 전씨가 황성인 조씨 다음으로 나오는 것도 이 사람의 덕택이다. 어찌 보면 오월국 역사에서 가장 명군이라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