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절권도 (문단 편집) == 기술적 근원 == [[이소룡]] 본인이 배운 무술과, 다른 무술가들과의 교류로 얻은 스타일을 자신의 몸에 맞춰 '''준판쿵후(振藩功夫, 진번공부)'''[* 이소룡의 본명이 이진번(李振藩)이었기에 이렇게 붙인 것으로 보인다.]로 체계화시켰는데, 이는 60년대의 이야기이고, 70년대에 이소룡이 사망 직전까지 만든 절권도는 이와는 기술적으로 많은 부분이 다르다고 한다. 그러나 이소룡 개인이 워낙 유명한데다, 절권도를 배우는 사람들도 영화 속 이소룡의 모습을 기대하는 까닭에, 실제로는 도장에서 두 가지를 다 가르치거나, 준판쿵후를 주로 가르치는 도장들이 많다고 한다. 절권도를 하는 연예인으로 유명한 [[장혁]]이 브라운관에서 보여주는 절권도 동작들은 절권도가 아니라 '''준판쿵후'''에 더 가깝다, 게다가 이소룡이 70년대 이전에 만든 교본과 자료들마저 이소룡 사후 마구 섞여서 사용되는 관계로 구분이 더욱 힘들다고 한다. 여태까지 그의 손기술은 [[영춘권]], 발기술은 [[태권도]]의 영향을 받았다는 식으로 전해졌으나, 실제로 그런 것은 진번쿵후의 모습이라고 하며, 이 또한 실제 배운 사람들이 보여주는 준판쿵후를 접한 사람들에 의하면, 그런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한다. 다큐멘터리 에서 댄 이노산토가 회상하길 이소룡이 절권도를 정립할 때 "영춘권의 이해를 바탕으로 영춘권을 초월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가장 오래 수련했던 무술답게 영춘권의 영향을 받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절권도 철학에서는 영춘권과 달리 단타를 넣더라도 강하게 넣는 것을 추구하며, 트래핑을 하는 것보다는 회피를 중요시한다. 때문에 영춘권의 스타일과도 크게 다르다. 애초에 '절권도의 스타일'이란 존재하지 않으니. 대한민국 절권도 총본관에 문의해본 쪽에서도, 영춘권의 스타일을 버렸다고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영춘권을 이해하고는 단어 그대로 초월해서 영춘권의 틀에서 탈피한 것이다. 상기했듯이, 절권도하면 미친 듯이 빠르고 화려한 후밧 및 트래핑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으나, 이는 영춘권의 영향을 받은 준판쿵푸의 흔적일 뿐, 절권도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절권도 정립과정에서 후밧, 트래핑, 치사오 등은 비실용적이라 판단하여 배제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시범공연 등에는 더없이 좋은지라, 테드 웡 계열 절권도라도 지도자가 개인적으로 배워 익히기도 한다. 그러나 이때도 동영상 촬영이나 대중 앞에서 시연할 때, "지금 하는 건 진번쿵푸지, 절권도가 아니다"라는 걸 확실히 명시한다. 만약 후밧이나 트래핑을 너무 강조해서 가르친다면 가짜일 가능성이 높으니 주의하자. [[파일:이소룡안.jpg]] 1968년 LA해변에서 [[이준구(태권도)|이준구]] 사범(오른쪽)이 이소룡에게 태권도 발차기를 시연하고 있다.[[http://www.tkdbox.com/%EB%AC%B8%ED%99%94-%EC%9D%B4%EC%86%8C%EB%A3%A1%EA%B3%BC-%EC%A0%88%EA%B6%8C%EB%8F%84-%EA%B7%B8%EB%A6%AC%EA%B3%A0-%ED%83%9C%EA%B6%8C%EB%8F%84%EC%9D%98-%EC%97%B0%EA%B4%80%EC%84%B1/|#]] 태권도 연관설의 경우, 이소룡과 교류를 하던 [[이준구(태권도)|이준구]] 사범이 발차기를 가르쳤다는 말이 있었으나, 이소룡이 이준구와 만난 것은 64년경의 롱비치 무술대회[* 여기 이소룡이 참가하여 우승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아직 있는데, 이소룡은 일종의 초대손님으로 여기에 가서 기술 시범을 했을 뿐이다. 생전에 이소룡은 어떤 무술대회에 직접 참가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에서였으며, 댄 이노산토의 말에 따르면, 이소룡은 그 이전에 이미 발차기의 고수였다고 한다. 정확히는, 중국무술의 북파권법계열 발차기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반론도 있다. 일단 중국 북파무술계열의 발차기, 즉 퇴법(腿法)은 가라데나 태권도 등의 무술과는 완전히 다르다. 실제로 (태권도 등의 발차기를 전혀 접하지 않고) 전통쿵푸를 아주 제대로 익혔다가, 후에 태권도를 익히는 사람들은 발차기 교정에 호된 고생을 하곤 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 그러나 이소룡이 다른 유파의 기술을 배우는 데에 스스럼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 밖에 [[펜싱]]의 기법들도 절권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댄 이노산토가 배운 무술인 [[칼리 아르니스]]의 번역이 잘못되어 펜싱이라 알려졌다는 설도 있었으나, 이노산토 본인이 한 얘기[* 《Theorizing Bruce Lee》의 53~54쪽]에 따르면, 이소룡과 이노산토가 얘기하던 중에 이소룡이 "펜싱에서 가장 효과적인 카운터 법은 스톱히트(Stop Hit: 패리(parry: 슬쩍 피하거나 받아넘기는 것)하지 않고, 한 번에 공격해서 적을 막는 것)"라고 얘기했고, 이런 방식에 영향을 받은 싸움법을 절권도에 도입했다고 한다. [* 다만 여기에 다른 의견도 있는데, 애당초 유럽에는 펜싱스텝과 복싱의 기술을 혼합하던 무술교본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소룡의 무술관을 보여주는 일화로, [[브랜든 리|브랜든]]이 태어났을 때, 미국인 제자가 아들에게 어떤 무술을 가르치겠냐고 물었다. ||이소룡: 가장 먼저 체조를 가르칠 거야. 균형감각과 유연성을 키워주니까. 제자: 그 다음엔? 이소룡: 글쎄, 권투가 좋겠지. 펀치력과 스피드를 발달시키니까. 제자: 그 다음엔? 이소룡: 좀 더 성장하면, 레슬링을 권하겠네. 근력과 지구력에 최고니까. 제자: 발차기는 안 가르칠 겁니까? 이소룡: (웃으면서) 본인이 원한다면 모르지만, 내가 따로 가르칠 생각은 없네.|| 어떻게 보면 타격과 그래풀링 기술이 총동원되어 만들어질 미래의 무술 [[종합격투기]]의 성립 방향[* 사용되는 기술만 놓고 보면 사실 절권도는 현대 격투기와 큰 차이가 없다. 펀치는 복싱 스킬이고 킥도 흔한 앞차기 옆차기 돌려차기이기 때문. 굳이 특징적인 킥이 있다면 플립 킥 정도. 다만 같은 기술이라도 '''어떤 상황에서 어디를 중점적으로 타격하는 가가 종합격투기와 절권도를 구분짓는 선이라고 할 수 있다'''. 스포츠 격투기여서 도망칠 수 없는 경기장 안에서 정해진 시간 내에 이겨야만 하는 종합격투기와 단시간에 급소를 타격하고 최대한 상황을 벗어나는 절권도의 차이는 같은 기술을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지에 따라 갈린다. 물론 이건 종합격투기가 안전을 중시하는 스포츠화 되었기 때문에 살상기술들은 지양해야해서 그런것이며, 정 그런 기술들이 필요하다면 '살상용 종합격투기'라 부를수 있는 군대 [[CQC]]의 격투기와 비교할수도 있겠다.]을 그 당시에 표현할 수 있는 언어로 상당히 정확하게 예측한 혜안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살아있었다면 [[브랜든 리]]가 실전무술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정말로 반드시 필요했을 것들이다. 또한 채리불권(蔡李佛拳)의 노사(老師)들의 말에 의하면, 이소룡의 절권도에는 영춘권, 채리불권, 이소룡의 아버지가 익힌 홍권(紅拳/洪拳)[* 구전이나 전설에 따르면, 황비홍(黃飛鴻)이 바로 홍권의 달인이었다. 홍권을 널리 보급한 것은 그의 제자로 알려진 임세영(林世榮).]이 모두 녹아들어있다고 한다. 채리불권도 정식으로 배웠던 기록이 있다고 하는데, 자세한 것은 [[http://handosa.egloos.com/3688310|인터뷰]]를 참조하자. 다만 유튜브에서 절권도 관련 영상을 찾아보고 '절권도의 스트레이트는 이렇구나.'같은 식의 생각을 갖게 된다면 그는 일종의 편협 된 생각이며 이소룡 본인이 지향하던 바가 아님을 알아줬으면 한다. 현재 절권도 도장에서 가르치는 스트레이트는 십중팔구 직권[* 태권도의 '세운주먹'에 해당, 영춘권의 일자충권의 영향을 받았다.]으로 배울 것이다. 이는 이소룡이 정권보다는 직권이 더 빠르게 반응할 수 있고 더 길게 나갈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인데 이에대해 정권으로 뻗는 스트레이트는 절권도의 스트레이트가 아닌가라고 생각한다면 그렇지는 않다. 우선 절권도에 대한 이소룡의 사상을 들여다보자. 이소룡은 주먹과 발을 '무기'로 봤기 때문에 무기는 앞에 놓인 채로 빠르게 반응해야한다는 생각에 입각해 오른손잡이임에도 사우스포 스탠스로 수련했다.[* 이 또한 영춘권의 영향일 수도 있다. 영춘권에서도 오른손잡이 수련생이 오른손 오른발을 앞에 놓은 스탠스를 취하고 수련하기 때문이다.] 단 이소룡이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절권도의 모습이나 개인적인 철학을 담아 놓은 7권의 노트를 바탕으로 재구성 된 저서 'Tao of Jeet Kune Do'에 의하면, 수련생이 오른손잡이고 오소독스 스탠스를 편하게 여긴다면, 또한 오소독스 스탠스로 수련하길 원한다면 별 상관없이 그를 존중한다는 식의 서술이 되어있다. 다만 사우스포에서 수련하는 것에 동의한다면 기존에 오소독스에서 수련을 했더라도 찻잔을 비우듯이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스타일을 버리고 수련할 것을 명시했다. 즉, '이소룡의 절권도'가 아닌 '자신들만의 절권도'를 추구한 것이고 실제로 그렇다. 예를 들어보자. 태권도를 오래 수련하다가 테드웡 절권도에 입문한 수련생이 있다고 치자. 그가 스파링 중에 습관적으로 내려차기를 해서 상대를 맞췄다면 그것은 태권도의 발차기이기 때문에 절권도라고 볼 수 없는가? 아마 절권도 도장 중에 내려차기를 배우는 도장은 없을 것이지만 이소룡이 생전에 남긴 철학에 의하면 그 또한 수련생의 절권도인 셈이다. 유튜브에서 절권도 관련 영상을 찾아봤다면 그것들을 '절권도'라는 틀에 가두고 보지 않고 '이소룡이라는 한 개인의 무술'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 '이소룡 개인의 방식'인 절권도를 가르치는 도장들은 사이비인것인가 한다면 그 또한 잘못되었다. 이소룡의 방식을 이어받아 가르치는 것은 절권도라는 철학체계를 구상한 이소룡을 한 명의 창작자로서 존중하는 것이며 수련생들도 그의 방식을 배울 것을 원한다. 응용하는 것과 실제로 수련하는 것은 수련생들 개개인에게 남겨진 숙제일 뿐이다. 이소룡이 형태가 없는 무술을 추구했다고 해서 절권도라는 철학체계의 정체성을 무시하는 것은 잘못됐기 때문이다. 이소룡 개인의 방식의 절권도를 수련함은 수련생들에게 '이 상황을 빠져나오는데 이런 선택지도 있구나' 식의 깨달음을 주는 것 뿐이고 상술했듯이 그것을 갈고닦을지 자신의 방식으로 개척할지는 수련생이 선택하기 나름이다. 이소룡에게 가르침을 받았음에도 이노산토의 절권도와 테드 웡의 절권도가 사뭇 다르지만 둘 다 정통 후계자로 인정받는 이유가 뭐 때문이겠는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