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정교회 (문단 편집) ==== Caesaropapism(황제교황주의) ==== [[파일:external/2.bp.blogspot.com/emperor-council.jpg]] 동로마 시절에는 평신도인 황제가 제국 내 교회에 대해 최고의 지배권을 가지며 교의(敎義)처럼 보통 교권으로 보류된 문제에까지도 이를 행사하였는데, 이를 'Caesaropapism'라 하며 국내에 통상적으로 '황제교황주의'라 번역된다. 번역어 때문에 오해가 참 많지만, '황제=교황'이 아니라 '황제가 교권에 개입한다'라는 의미로 이해하여야 본래의 의미에 가깝다. 이 개념은 고대 로마 황제의 ‘[[폰티펙스 막시무스|최고 신관]]’(pontifex maximus)의 기능이 동로마 황제에게 이식된 것이다. 황제가 곧 교황이라기보다는, 훗날 개신교권 국가들의 국가교회주의를, 특히 근대 초 성공회를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가 단지 황제의 예스맨으로 머무른 것은 아니며[* 아르카디우스의 아내인 에우독시아 황후와 요한 크리소스토모 총대주교가 갈등을 빚은 바 있고, 이후로도 황제와 총대주교가 갈등을 빚는 일은 많았다. 황제 [[미하일 8세]]가 [[요안니스 4세]]의 눈을 뽑고 폐위시킨 일로 [[아르세니오스 아우토리아노스]] 총대주교에게 파문당하는 일도 있었다.] 서방에서도 속권이 교권에 간섭을 안 한 것도 아니지만,[* 애초에 서방 교회는 속권의 통제하에 놓여 있다시피한 상황이었다. 교황 폐위와 세속 권력이 로마 교황을 압박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3세]]는 로마 원정(1046~1047) 때 [[베네딕토 9세|교황]]을 폐위한 것을 비롯해 교황을 3명이나 갈아치웠다.] 서로마 제국이 붕괴하고 난 후, 점차 힘을 키워낸 로마 주교가 신성 로마 제국 황제와 대등한 관계에 가까운 권력을 수립한 서방에 비해 동방에서는 황제가 교권과 속권의 두 영역에서 독점적인 지배권을 추구하여 Theocratia(신정정치) 체제가 상대적으로 강력하게 들어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