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균환 (문단 편집) == 생애 == 1943년 7월 23일,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고창)|대산면]] 광대리에서 태어났다. 선동국민학교, [[고창중학교(전북)|고창중학교]], [[고창고등학교]](40회),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82년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국제정치외교학 전공]]으로 [[정치외교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외교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성균관대학교 재학 중이던 1960년대 [[통일사회당(1961년)|통일사회당]]에서 당직자 활동을 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Event/10th_lst02.aspx?cntn_cd=A0000115396&page_no=2&add_cd=RA001170047|심연식 전 통일사회당 정치위원이 쓴 글]]] 이후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전라북도 [[부안군]]-고창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이호종(1929)|이호종]] 후보와 무소속 [[박용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87년 [[통일민주당]]에 입당해 당보 편집국장을 역임했고, 이어 [[평화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겨 지방조직4국장을 역임했다.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평화민주당]] 후보로 전라북도 고창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1991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국민회의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전라북도 [[고창군·부안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01년까지 새천년민주당 원내총무를 역임하였다. 그리고 [[국회운영위원회|국회운영위원장]]도 겸직하였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과 상당히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했고[* 노 대통령이 정균환과 [[박상천]]이라는 두 사람의 이름만 들어도 거부감을 표했다는 설이 있다.] 2003년 말 [[새천년민주당]] 분당 당시에는 [[열린우리당]] 입당 대신 잔류를 선택했다. 그리고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전북 고창군·부안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열린우리당]] [[김춘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2005년)|민주당]] 후보로 [[전라북도지사]]에 출마하였으나 열린우리당 [[김완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만일 선거 기간이 조금만 더 길었더라면 [[당선]]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 암흑기였고, 그래도 열린우리당이 민주당계 정당의 [[텃밭(정치)|텃밭]]답게 전북지사만큼은 가져갈 수 있었던 거는 당시 당의장(지금의 당대표)였던 [[정동영]] 고향이 전북이라서 가능했던 일이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2008년)|통합민주당]] 후보로 전북 고창군·부안군 선거구에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4년전에 겨룬 상대이자 같은당이 된 [[김춘진]]에게 밀려 경선에서 탈락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정치적 기반이자 고향인 전라북도를 떠나 [[서울특별시]] [[송파구 병]]으로 지역구를 옮겨 출마하였으나, 배우 출신인 [[새누리당]] [[김을동]]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송파구 병]] 지역구는 그때까지 [[강남3구]] 지역들 중 유일하게 민주당계 정당의 우세 지역이고, 단 한 번도 보수정당에 자리를 내 준 적이 없는 나름 철옹성 지역구였으나, 기어이 보수정당 출신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다만 현재까지 송파구 병 지역에서 보수정당 소속 국회의원은 김을동이 유일하다. 지금 현 국회의원은 정균환과 같은 당 소속인 [[남인순]] 의원이다.][* 비단 정균환 뿐만 아니라 고향이 호남 출신이자 호남 다선 중진들이었던 [[정세균]], [[정동영]], [[천정배]], [[김효석(1949)|김효석]], [[조순용]] 등의 여러 다선 의원들이 서울 격전지 지역에 차출되었는데, 정세균만 유일하게 생환하였다. 정세균은 이 때를 기점으로 호남권 중진에서 전국구 거물 정치인이 되었고, 2016년 총선에도 무려 [[재선#s-1|재선]] [[서울특별시장]]을 한 [[오세훈]]을 꺾고 연임에 성공해 국회의장과 [[문재인 정부]] 중반기에 국무총리까지 하면서 승승장구하게 된다.] 이후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분당 과정에서 탈당하여 [[국민의당(2016년)|국민의당]]에 합류하였다. 다만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불출마했다. 이후 다시 [[국민의당-바른정당 합당]]에는 반대하면서 대부분의 다른 호남계들과 마찬가지로 탈당, [[민주평화당]]에 합류하였으나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전라북도지사]] 후보로 출마해달라는 당의 요청을 거절했다. 그 이후로는 나이 문제도 있고 하니 사실상 정계에서 은퇴한 상태며, 현재는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다.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약 6년만에 [[더불어민주당]]에 복당하여 [[이재명]] 후보의 지지를 선언하였다. [[https://www.jjan.kr/articleAmp/20220217580293|#]]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