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대영 (문단 편집) === GS칼텍스 시절 1기 === 이렇게 못내 아쉬운 준우승을 한 현대건설과 정대영, [[이숙자(배구)|이숙자]], [[한유미]], 박선미의 운명이 갈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최초의 FA 제도 도입이었던 것. [[현대건설]]은 IMF와 [[현대그룹]]의 [[왕자의 난]]을 지나 배구단을 유지하기는 했지만 [[한국산업은행|산업은행]] 하의 워크아웃 상태였고, IMF 직후 때의 큰손이었던 위엄이 떨어졌다. 게다가 프로화 이후 나름 공정해진 드래프트 제도[* 사실 드래프트 제도는 프로화 작업의 일환으로 2000년부터 시행되기는 했다.]로 말미암아 예전처럼 자유계약에 의한 신인선수 보강도 불가능했다. 결국 FA를 앞두고 현대건설 프론트는 이 넷 중 일부를 선택해야 했는데, 현대건설은 [[한유미]]에게 당시 여자부 최고 연봉인 1억2000만원에 잔류하는데 성공했지만, 현대건설의 답이 없던 리시브 라인을 굳건하게 지켜온 박선미는 돌연 은퇴를 선언하며 준수한 윙리시버를 잃었다. 한편, 한유미만큼의 가치가 있는 정대영과 이숙자를 같이 잔류시키기에는 페이롤 문제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차마 같이 잔류시킬 수가 없었다. 원소속팀인 현대건설과의 협상이 지지부진해지며 2차 계약기간으로 넘어갔고, 결국 이숙자와 같이 처음 도입한 FA제도에 수혜를 입으며 연봉 1억1000만원을 받고 [[GS칼텍스 서울 KIXX|인천 GS칼텍스]]로 이적하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결혼에 골인한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volleyball&ctg=news&mod=read&office_id=028&article_id=0000198468|# 결혼 및 이적 기사]] 정대영-이숙자의 FA 이적에 따른 보상선수는 강민정과 [[한수지]].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volleybal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1653716|##]][* 강민정은 2014-15 시즌까지 현대건설에서 뛰었지만 원 포인트 블로커 이상의 역할은 하지 못했다. 대신 현대건설은 몇 달 뒤 시행된 드래프트에서 [[양효진]]을 얻게 된다.] GS칼텍스는 1999년 [[장윤희(배구)|장윤희]], [[정선혜(배구)|정선혜]], [[홍지연(배구)|홍지연]] 등이 마지막으로 우승을 일궈냈던 시절 이후 우승이 워낙에 고팠지만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리그 밑바닥을 헤매다 갑자기 7공주로 환골탈태한 모 팀]]과 [[김민지(배구선수)|별의 별]] [[황연주|뻘짓을]] [[김연경|저질렀지만]] 결국 모두 [[병림픽]]이 되버려~~ 늘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DTD]]를 시전하고 있었다. 정대영과 이숙자의 영입 당시 GS칼텍스는 세터 [[정지윤(1980)|정지윤]]과 센터 손현이 개인적인 이유와 부상 등으로 은퇴를 했고, [[김민지(배구선수)|김민지]], [[나혜원]]이라는 기대받는 공격수는 있었지만 유망주에 그쳤다. 그래서 정대영과 [[이숙자(배구)|이숙자]]는 이적하자마자 자신들의 가치를 곧바로 증명하기 시작했고, 결국 2007-08 시즌 리그 3위를 기록한데 이어 챔피언결정전에서 3연패를 노리던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을 시리즈 전적 3승1패로 물리치고 V-리그 출범 이후 첫 통합우승을 이끌었다. [[파일:정대영 백어택.gif|width=500]] 특히 치열했던 챔피언결정전 3차전 4세트에서 역전의 발판을 마련한 2점 백어택은 분위기를 완전히 GS칼텍스 쪽으로 넘어오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챔피언결정전에서 경기당 평균득점 18.5점으로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fivb&no=298722&page=1|센터 공격수로서]]는 굉장한 파괴력을 자랑했다. 당연히 챔피언결정전 MVP는 정대영의 것이었다. ||[[파일:챔결_GS칼텍스_V1.jpg|width=100%]]|| || {{{#fff '''07-08 V-리그 챔피언결정전 MVP'''}}} || || {{{#fff '''No. 13 정대영'''}}} || 그런데 2007-08 시즌을 준비하기 전 맹장 수술로 시즌 초반 고생한 모습이 역력했고, 결국 시즌 끝나고 체력회복 차원에서 [[2008 베이징 올림픽]] 최종예선에 불참할 것을 밝혔으나 이를 괘씸죄로 여긴 [[대한배구협회]]에서 배협 주관 국내외 대회의 선수자격 1년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비슷한 맥락으로 당시 무릎부상으로 제몸이 아니었던 [[황연주]] 역시 중징계를 당했다.] 그렇게 혼란했던 오프시즌을 보냈지만 2008-09 시즌에 경기당 14.52점(392점/27경기)을 올리며 지난 시즌 맹장수술 여파를 떨쳐내는데 성공했고, 이후 여자 배구선수 최초로 출산휴가를 받고 2009-10시즌을 거른다. ~~데스티니 후커가 V-리그를 휘어잡은 시즌에 같이 못 한게 아쉽긴 하지만~~ 출산 후 다시 팀에 복귀하여 몸조리 차원에서 블로킹을 잡는 플레이 스타일로 바꿨다. 그러나 GS칼텍스는 2007-08 시즌 우승과 2009-10 시즌 데스티니 후커의 환상에서 벗어나 하위권으로 처지게 됐고 정대영도 2010-11 시즌~2011-12 시즌 꼴찌라는 부진을 막지는 못했다. 그래도 그간 활약에 보답하는 차원으로 2010-11 시즌 종료 후 FA 재계약을 했다. 그리고 2011-12 시즌부터는 이숙자에게 주장직을 물려받으며 팀을 이끌었고, 통산 블로킹 400개를 달성한다. 그렇게 시즌을 마치고 오프시즌에 열린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을 36년 만에 4강으로 진출시키는데 최고참으로서 어린 선수들을 이끄는 역할을 했다. 비록 국가대표팀에서는 예전에 비해 공격을 맡을 기회는 줄어들기는 했지만 노련한 풋워크로 상대 블로커들을 따돌리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4년 전 징계당했던 억울함을 한번에 풀 수 있었다. 올림픽에 다녀온 후 맞은 2012-13 시즌에 공격보다는 센터 블록을 전담하면서 2011-12 시즌 이적해온 [[한송이(배구선수)|한송이]]와 신인 [[이소영(배구선수)|이소영]]이 날개공격에 집중하도록 하며 리그 2위-챔피언결정전 준우승을 이끌었다. 정대영 개인으로는 3000득점 달성이라는 의미 있는 시즌이기도 했다. ||[[파일:external/pds.joins.com/NISI20140404_0009541201_web.jpg|width=400]]|| || 2013-14 시즌 우승, 딸 보민 양과 함께 || 2013-14시즌에도 주장직을 맡으며 팀의 정규리그 2위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일궈냈다. [[한송이(배구선수)|한송이]]와 신인 [[이소영(배구선수)|이소영]]의 날개공격뿐만 아니라 자신을 롤모델로 삼은 [[배유나]]의 센터블록 또한 빛을 보며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기업은행]]과의 명승부를 이끌어냈다. 2000년대를 빛낸 레전드답게 2013-14 시즌 [[V-리그]] 10주년 올스타 센터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