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동영 (문단 편집) == 여담 ==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정청래]] 의원과의 친분이 깊다. 2007년 대선 당시 이재명은 [[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정동영 팬클럽]] 시절부터 활동해 정동영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 인연으로 이재명의 [[성남시장]] 유세에 [[https://blog.naver.com/snhope/106629090|정동영이 지원]]을 나서기도 했고, 이재명이 2016년에 단식농성을 했을 때에도 직접 방문하여 응원하기도 했다. [[http://www.sjb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526085|#]] 정청래는 [[노사모]] 단체 중 하나였던 [[국민의 힘(시민단체)|국민의 힘]][* 현재 집권여당인 [[국민의힘]]과는 다른 곳이다.] 단체대표였던 시절인 2004년부터 정동영의 지지단체인 정사모가 주관이 되었던 개나리 봉사단에 1500가량의 단체원을 이끌고 합류하면서 [[http://www.polinews.co.kr/news/article.html?no=13888|#]] 정동영과 친분을 만들었다. * 정치에 입문한 1996년 이후 28년 동안 한번도 개인비리 의혹에 연루된 적이 없을 정도로 '''청렴함에 정평이 나있다'''. 이에 21대 총선 슬로건도 '깨끗한 전북의 힘, 정동영'으로 선정했다. 선거 막판 상대후보인 [[김성주(1964)|김성주]] 후보측에서 정 의원을 항해 네거티브를 제기하였으나 역시 잘못된 주장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명났다고 한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2&aid=0002130391|#]] * 현 아내인 [[민혜경(1956)|민혜경]]의 아버지 민병호(閔丙浩)가 "기자 사위는 싫다"고 하자 [[MBC]]에 사표를 내고, [[설악산]]으로 민혜경을 납치하는 소동을 벌인 끝에 결혼 허락을 받아냈다. 정동영이 MBC에 사표를 낼 당시 직속 상관에게 사정을 설명하자 그 얘기를 전해들은 사장은 "결혼에 성공해 돌아오면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실패해서 돌아오면 즉각 수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정동영은 마침내, 결혼에 성공했고, MBC 기자로도 복귀할 수 있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정동영 무스.gif|width=100%]]}}} || * 주말 [[뉴스데스크]]를 진행하던 시절 방송사고를 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 1995년 8월 5일 자 [[뉴스데스크]]의 전체 영상을 보면 오프닝이 나가고 제공자막이 뜰 때에 들어왔으며 광고 중에 머리에 무스를 바르는 등[* 이로 인해 '''MBC 무스데스크'''라는 댓글이 올라온 바 있다.]의 준비를 하는 게 그대로 나오는데, [[https://youtu.be/OlKs2RBYKII|당시 영상]] 당시 TV에서는 정상적으로 광고가 나갔다.[* 참고로 해당 영상에서 정동영과 함께 뉴스를 준비하고 있는 여성 앵커는 [[김은주(1965)|김은주]] 앵커이다.] 다른 날짜의 뉴스들과는 달리 유독 이날 영상만 광고가 아닌 스튜디오 측 화면이 녹화된 버전으로 업로드된 것. 즉, '''카메라 테스트+생방송 준비 장면이 MBC 내부 자료용으로 녹화된 것'''이다. 위 영상이 2010년 10월 5일 뉴스데스크 40주년 기념 특집 때 소개되었는데, 막상 본인은 저게 남아있다는 걸 전혀 예상치 못한 탓에 보자마자 엄청나게 폭소하며 어쩔 줄 몰라했다. 하지만 소감을 묻는 질문에 '''"저 때는 젊고 잘생겼네요."'''라는 자뻑 멘트를 날렸다. 아무래도 앵커, 기자 출신이다 보니 외모가 괜찮은 편이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젊을 때만큼은 못하지만, 한때 MBC 미남 앵커로 인기가 많았던 만큼 역대 한국 정치인들 중 잘생긴 편에 속한다. 다만 최근 유행인 곱상하게 잘생겼다기보다는 남자답게 잘생긴 느낌이라 요즘보다는 과거에 더 잘 먹혔을 얼굴이다.] * 1991년 [[걸프 전쟁]], 1992년 [[LA 폭동]], 1994년 [[김일성]] 사망,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등 언론인으로써 활동하는 내내 역사에 남을만한 중요한 사건들을 직접 취재한 행운을 누렸다. 또 당산철교 붕괴 직전에 부실 시공을 [[최일구]]와 함께 취재해 고발한 적도 있다. 그의 말로는 자신이 현장에 가면 늘 사건이 따라다녔다고 했는데 그래서 늘 그는 사건 한복판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 [[권노갑]] 회고록에 따르면 1995년 3월경 권노갑이 정동영을 만나서 의중을 물어보는등[* 고도원 당시 MBC 차장의 부탁이 있었다.] [[MBC 뉴스데스크]][*주말]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정치인이 되고자 함이 있었다고 한다 다만 권노갑은 서울 [[강동구 갑]]을 추천했으나 정동영은 [[전주]]에 공천되기를 요구했다고[[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40322/61908723/1|#]] * 대선 후보 당시 [[조선일보]]에서 진행한 문답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아이돌 스타로 원더걸스를 꼽았다. 그런데 그때는 [[이명박]]을 비롯한 대부분의 대선 후보들이 같은 응답을 했다. * '''토론에서 이기고 투표에서 진다'''는 말의 대표적인 예시이다. 아나운서 출신인 정동영은 [[이명박]]과의 TV토론에서 나름 유려한 말솜씨와 나름 논리정연한 토론 실력으로 이명박을 압도했다. 말주변에 약했던 이명박은 혼잣말로 '이거 말빨로는 안되겠네' 하고 푸념하듯 내뱉었다. 이 말은 방송을 탔지만 이걸 본 유권자들의 반응은 안그래도 범여권에 거부감이 심했던 국민들인데 이명박을 그리 몰아가면서 위협하는 정동영측과 범여권을 보고 더더욱 거부감을 느껴 오히려 이명박 한나라당을 동정해주었고 열세인 지지율을 토론으로 뒤집겠다는 정동영과 범여권의 구상은 물거품이 되고 말었다.[* 사실 이 대선이 워낙 애초부터 모든것이 이명박에게 유리했던 선거인 것도 한몫한다.]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앨 고어]]와 비슷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동영의 대선득표율은 이명박의 절반에 그쳤다.-- * 2009년 누명을 쓰고 [[온두라스]]에 수감된 한지수의 '''무죄판결을 이끌어낸 숨은 주역'''중 하나이다. 제7차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한지수의 신원보증 문제에 대해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유명환]] [[외교부]] 장관을 몰아부쳐 외교부의 신원보장 약속을 받아내고, 주한 온두라스 친칠라 대사를 직접 만나 인도적인 도움을 요청했다. 이후 언론 보도와 정치권에서까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자 뒤늦게 정부가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으며, 결국 정부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학과장을 파견보내 부검 결과의 부적절함을 지적하면서 한지수의 무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09111816102216362|#]]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ss_pg.aspx?CNTN_CD=A0001464924&PAGE_CD=&CMPT_CD=|#]] * 재야에서 다시 정계로 복귀할 때 한 가지 일이 있는데, 바로 강연회다. 4.29 재보궐 선거 4달 전에는 자신의 모교인 [[전주고등학교]]에서 졸업생을 대상으로 정치에 대해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또한 2016년 전주에서 여성들을 위한 특강을 한 것으로 보아, 정계 복귀가 임박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고 실제로도 정계에 복귀하였다. [[http://www.ytn.co.kr/_ln/0101_201602031859403117|#]] * 2007년 대선 당시 청년들의 표를 얻기 위해 [[비보잉]]을 배우는 노력을 하기도 했다. [[https://youtu.be/DtxqaKDEVSE?si=gnfGeF4x3QtMVmbz|#]] * 2016년 12월 현역 국회의원 전화번호 공개 사태 이후 많은 문자를 받고 있는데, 대답을 잘해주는 편이라고 한다. 누군가가 12월 3일 새벽 1시에 탄핵에 찬성해달라는 문자를 보냈는데 지금 본회의 중이고 새벽 4시 10분에 탄핵안이 발의될 예정이라는 답장을 받았다고 하며, [[http://m.dcinside.com/view.php?id=stock_new1&no=4933641&page=1&recommend=1|#]]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사실로 밝혀지면서]] 인증글은 성지가 되었다. * 같은 [[MBC]] 기자이자 [[MBC 뉴스데스크]] 앵커 출신인 [[신경민(1953)|신경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는 동갑이며 [[전주고등학교]] 동기동창이다.[* 나이와 학교 기수는 동기지만 언론계 기수는 다르다. 정동영이 1978년, 신경민이 1981년에 입사했기에 정동영이 선배다.] 또한 과거 [[열린우리당]]에서 한솥밥은 먹었지만 결국 [[친노|정동영과 정반대의 길]]을 갔던 [[문재인]] 대통령과도 동갑이다. 다만, 문재인의 경우에는 [[빠른 생일]]인지라 같은 학년은 아니다. * [[조정민(목사)|조정민]] 목사와 1978년 MBC 입사 동기며, 그가 [[MBC 뉴스데스크]] 앵커에서 하차해 정계에 입문하자, 조정민 목사가 그의 후임 앵커를 맡았다. * 당대표로서의 왕성한 중앙정치 활동과 더불어 지역구인 [[전주시]]의 각종 민원해결을 위해 힘을 쓰고 있다. 라돈 검출로 논란이 된 전주 [[송천동(덕진구)|송천동]] [[에코시티 더샵 2차|아파트]] 문제에 대해 포스코건설 대표에게 즉각적인 전면교체 약속을 받아냈으며, [[http://m.jeolla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552562#adbay_bbad|#]] [[전주시]] [[팔복동]] 폐기물 소각장 문제 해결을 위한 집회에 참여하면서 고형폐기물(SRF) 신재생에너지 제외법을 대표 발의하는등 국회차원의 적극적 대응에 돌입했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219607&utm_source=naver&utm_medium=search#09T0|#]] [[http://www.ekn.kr/news/article.html?no=397617|#]] 비슷한 문제로 홍역을 겪고 있는 [[창원시|창원]]과 [[완주군|완주]]에서 해당 지역 [[박완수|현역]][[안호영|의원]]의 미흡한 대처로 지역카페에서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는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article&query=%ED%8F%AC%EC%8A%A4%EC%BD%94%20%EA%B1%B4%EC%84%A4%EC%82%AC%EA%B0%80%20%EC%93%B0%EB%A0%88%EA%B8%B0%20%EA%B1%B4%EC%84%A4%EC%82%AC%EC%9D%B8%20%EC%9D%B4%EC%9C%A0%20%232&ie=utf8&st=rel&date_option=0&date_from=&date_to=&board=&srchby=text&dup_remove=1&cafe_url=xxdkd&without_cafe_url=&sm=tab_cir&nso=&t=0&mson=0&prdtype=0|#]]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article&ie=utf8&query=%ED%8F%90%EA%B8%B0%EB%AC%BC+%EC%B2%98%EB%A6%AC%EC%9E%A5+%EB%B2%95%EC%A0%81%EA%B7%BC%EA%B1%B0%3F&st=rel&date_option=0&date_from=&date_to=&srchby=text&dup_remove=1&cafe_url=welcometoqhdehd&without_cafe_url=&board=&sm=tab_crs|#]] 그리고 2018년 12월 29일, 대표 발의한 고형폐기물(SRF) 신재생에너지 제외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421&aid=0003761221|#]] 이후 이마트가 경기부진으로 오프라인 매장을 축소하는 상황에서 중재를 통해 이마트 전주에코시티점 입점까지 이루어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21&aid=0004548245|#]] 이러한 왕성한 활동으로 ''''전주의 해결사''''라는 별명이 붙었다. * 좋아하는 유튜버는 [[디바제시카]]라고 한다.[[https://youtu.be/tTtn1m9FXMU|#]] * 2018년 12월 27일 눈썹이 [[각막]]을 찔러 눈 건강이 악화되는 안검내반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 눈 수술을 받았다. 나이가 들면서 눈꺼풀이 탄력을 잃고 많이 처진게 원인으로 보인다. [[:파일:가짜 정동영.jpg|#]] * 국회의원으로서 뛰어난 역량을 인정받아 [[심상정]], [[박주민]], [[윤소하]], [[박용진]], [[백혜련]] 의원과 함께 21대 국회에서 다시보고 싶은 의원 6인 중 한명으로 선정되었다. [[http://www.kukinews.com/news/article.html?no=776562|#]] * 이전부터 전주 곳곳의 민원해결을 통해 정동영의 직통 휴대전화 번호는 널리 알려져 있고, 추가적으로 유세 현장에서 직통 휴대전화 번호를 공개하며 시민들과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 스포츠 중 [[축구]]를 좋아한다고 한다. 전북 출신답게 좋아하는 팀은 [[전북 현대 모터스]]라고 전했다. * 역대 선거 벽보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호남의 비노, 반문 정서가 심하던 20대 총선 벽보에는 경력란에 구체적인 설명 없이 '(전) [[열린우리당|집권당]] 의장', '(전) 통일부장관' 등만 적었지만,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높았던 21대 총선 벽보에는 '(전) 열린우리당 의장', '(전) [[노무현 정부]] 통일부장관' 등 상대적으로 구체적인 직함을 적었다. 그럼에도 전자는 당선되고 후자는 낙선했다는 것이 재미있다.[* 비슷한 사례로 경북 [[포항시 남구·울릉군]] 지역구 의원이었던 [[박명재]] 전 의원은 [[참여정부]] 시절 행정자치부 장관 경력에도 불구하고 벽보에 장관 경력 '제9대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적은 대신 [[이명박 정부]]에서 국무회의 정족수를 채우기 위해 잠시 무임소 국무위원직을 수행한 것을 '이명박 정부 무임소 국무위원'으로 표기하기도 했다.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629920&cid=60378&categoryId=60383|#]] [[김관영]] 전북도지사 또한 도지사 출마 포스터에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비서실장',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선대위 국민통합위원장'은 그대로 적은 반면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직은 그냥 '교섭단체 원내대표'로 표기했다. [[:파일:2022 지방선거 전북도지사 후보 김관영 선거벽보.jpg|#]]] * 노무현 정부 때 통일부장관을 맡았던만큼 정치인으로서의 전문분야는 남북관계, 통일 분야이다. 관련 책도 많이 썼으며 특히 자신이 [[개성공단]]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휘했다는 점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 [[21대 총선]] 당시 [[민생당]]으로 출마하였으나 여론조사 그래픽에서 [[미래통합당]]으로 잘못 나온적이 있다.[[https://www.google.com/imgres?imgurl=https%3A%2F%2Fcdn.clien.net%2Fweb%2Fapi%2Ffile%2FF01%2F9830450%2F209534f248971a.jpg&imgrefurl=https%3A%2F%2Fwww.clien.net%2Fservice%2Fboard%2Fpark%2F14781027&tbnid=X4nArnZ0A8TrlM&vet=1&docid=_pw9lenJ5FbPlM&w=799&h=440&hl=ko-KR&source=sh%2Fx%2Fim|#]] * [[더불어민주당]]에서 단신라인으로 꼽힌다. * 국회의원 시절인 1998년에 TV내무반 신고합니다 제17보병사단[* 복무 당시는 제33보병사단인데 후에 제33보병사단이 폐지되고 제17보병사단이 신설되었다.] 편에 출연했었다. [[https://youtu.be/AT7zfgVnbu4|#]] * 17대 대선 당시 [[대통합민주신당]]이 유세 중 [[정동영]] 후보가 [[이명박]]을 오차범위 내에서 따라잡았다고 발표할 정도로 [[전라도|호남]] 상경민이 많은 서울과 경기도 일부 지역의 지지세를 전년도 지방선거에 비해 상당히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서울 25개 구와 모든 동에서 패배하기는 했지만[* 뿐만 아니라 경기도와 인천의 모든 읍면동에서도 패배했다. 다만 당시에는 서울의 민주당세가 경인 지역보다 강했고, 경인 지역과 서울의 인구차이가 크지 않았던데다 당시까지만 해도 경인 지역은 서울의 위성도시, 베드타운 정도로 취급받아서 서울의 비중이나 위상이 2010년대 이후보다 훨씬 높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서울에서의 완패가 범여권에겐 매우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서울 수도권에서의 완패였으니 말이다.], 이명박이 [[서울시장]] 출신이었다는 점과 당시 정부여당이 워낙 인기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범여권 자체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감이 심했던 사실도 고려해야한다. 전통적인 민주당계 정당의 강세 지역 중 호남 상경민이 많은 지역에서는 정동영 후보도 만만치 않은 득표를 올리면서 동 단위로 보면 [[이명박]]과 [[정동영]] 후보가 오차범위내에서 격전을 벌이던 지역이 있었다. ||<-4> {{{#fff '''서울시내 이명박-정동영 간 득표율 격차 10%p 이내 지역'''}}} || || 동명 ||<:> {{{#ffffff '''이명박 후보 득표율'''}}} ||<:> {{{#ffffff '''정동영 후보 득표율'''}}} || 차이 || || 종로구 창신2동[* 정동영 후보 수도권 및 비호남 최고 득표율 기록 지역] || 44.23% || 38.72% || 5.51%p || || 구로구 구로2동 || 42.48% || 34.77% || 7.71%p || || 구로구 구로4동[* 이명박 후보 수도권 최저 득표율 기록 지역] || 39.06% || 35.10% || 3.96%p || || 구로구 구로6동 || 42.48% || 32.61% || 9.87%p || || 구로구 가리봉2동 || 43.21% || 36.08% || 7.13%p || || 관악구 신림6동 || 43.08% || 35.03% || 8.03%p || || 관악구 봉천8동 || 42.24% || 34.54% || 5.87%p || || 관악구 봉천10동 || 40.41% || 34.88% || 5.53%p || ||<-4> {{{#fff '''경기도내 이명박-정동영 간 득표율 격차 10%p 이내 지역'''}}} || || 동명 ||<:> {{{#ffffff '''이명박 후보 득표율'''}}} ||<:> {{{#ffffff '''정동영 후보 득표율'''}}} || 차이 || || 성남시 수정구 태평2동 || 41.54% || 34.07% || 7.47%p || || 성남시 수정구 태평4동 || 41.72% || 34.29% || 7.43%p || || 성남시 수정구 수진1동 || 42.41% || 33.71% || 8.70%p || || 성남시 수정구 산성동 || 42.39% || 32.75% || 9.64%p || || 안산시 단원구 와동 || 41.31% || 33.69% || 7.62%p || || 안산시 단원구 고잔1동 || 41.56% || 31.95% || 9.61%p || || 안산시 상록구 사1동 || 41.93% || 32.40% || 9.53%p || 이러한 결과는 [[민주당계 정당]]이 [[18대 총선]] 이후 [[수도권(대한민국)|수도권]]의 민심을 회복하는 데 있어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