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동호(1935) (문단 편집) === [[12.12 군사반란]] === [[10.26 사태]] 당시에는 청와대 경호실 상황실장이었다. [[하나회]] 멤버로서 [[12.12 군사반란]] 당시 반란에 가담했다. 당시 준장이었던 정동호는 [[대통령경호실장]] 직무대행이었다. '''장관급(대장급)인 경호실장을 준장인 정동호가 직무대리했던 이유는 [[10.26]] 사태 이후 상관들이 대통령 시해에 대한 책임으로 숙청당했기 때문이다.''' NO.1인 경호실장 [[차지철]]이 비명횡사한 후 NO.2인 경호차장 [[이재전]] 중장은 [[보안사]]에 끌려가 구속되었고, 직후 예편. NO.3인 경호차장보 [[김복동]] 소장[* 더군다나 김복동은 하나회 수장격인 全, 盧에게 찍혀있던 상황이었다.]도 [[제5군단]] [[부군단장]]으로 좌천당하는 등 대통령 시해에 대한 도의적 책임에 대한 징계가 줄줄이 이어졌다. 그래서 NO.4였던 상황실장 정동호가 3계급을 뛰어넘어 대통령 경호실장을 직무대행하고 있었으며 이후 [[12.12 군사반란]]에서 후배인 [[고명승]] 작전담당관과 같이 총리 공관을 점거하며 최규하 대통령을 위협했다. 이 공로에 힘입어 [[전두환]] 정권에서 80년 8월부터 81년 7월까지 정식으로 경호실장을 지냈으며, 후배 [[장세동]]에게 경호실장을 이임하고 군에 복귀하여 [[제5군단]]장, [[대한민국 육군참모차장|육군참모차장]]을 역임했다. 참모차장을 역임하며 차기 육군참모총장 후보군 중 한명으로 꼽혔으나[* 다른 한명은 [[최세창]].] [[국회 국방위원회 회식 난투극 사건]]으로 인해 강제 예편당했다.[* 난투극 당시에 술에 쩔어서 옆에 있던 민주정의당 [[이세기]] 원내총무의 머리를 잡고 술주정을 하는 등 막 나갔다고 한다. 아무리 군사정권기에 군 실세라고 해도 여당 원내대표격인 원내총무의 머리채를 잡고 술주정을 부린 행동은 꽤나 문제가 되었고 직속상관이였던 [[박희도]] 육군참모총장이 국회를 찾아 국방위원장과 국회의원들에게 머리를 숙여가며 일일히 사죄를 할 정도로 파장이 컸다고 한다.][* 정동호가 국방위 난투극 사건으로 인해 예편당하고 최세창도 합참의장으로 가면서 육군참모총장은 박희도가 그대로 유임되었으며 박희도 이후에는 14기인 이종구가 육참총장이 되면서 육사13기는 육참총장을 배출하지 못해 12기와 14기 사이에 끼인 기수 취급을 받는다는 후문이 있다. 참고로 16기 역시 육참총장을 배출하지 못했으나 16기는 안기부장과 대통령경호실장을 지낸 [[장세동]]이나 국방부장관을 지낸 [[천용택]] 등을 배출하여 13기네 비해 끼인기수 취급은 덜한 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