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몽주(정도전) (문단 편집) === [[선지교]]에 핀 한 줄기의 대나무 === [youtube(G9zbdtysv-Q)] [youtube(jbMGzcV91Ds)] 아침에 집을 나서려는데 [[사망 플래그|개가 말리려는 듯 신 한 짝을 가져갔다]]. 그리고 조정에 나와 이성계가 깨어났다는 급보를 듣는데, 이성계가 그대로 집에 머무르면서 ''''숨 쉬는 것 빼곤 조정의 모든 대소사는 자신의 허가를 받으라''''는 명을 내리는 바람에 정몽주의 권력은 순식간에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게다가 정도전의 처형이 미뤄지자 이성계에게 정도전의 처형을 막으려는 상소를 중지할 것을 요청하면서 이성계를 찾아간다. 위험하다며 공양왕의 만류를 받지만 백성들과 신료들의 시선 때문에라도 가야 한다며 결국 이성계를 문병하러 찾아간 정몽주는[* 이때 NG인지, 문하시중인 이성계를 대면하자마자 '''"수시중 대감"'''이라고 부른다.] 단검을 내밀며 이성계에게 삼봉과 자신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지만 이성계는 자신, 삼봉과 포은 셋이서 좋은 세상을 만들자면서 삼봉과 함께 손 잡고 오길 부탁하면서 손을 잡지만, 정몽주는 그 손을 뿌리치고 거절하여 이성계로부터 절연 선언을 듣는다. 이때 정몽주의 어투는 이성계와 적대하기 전인 온화한 말투로 돌아가 있었다. [youtube(bJU1eT7qU7w)] 이성계와 정도전이 정몽주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이방원은 고심 끝에[* 아이러니하게도 이전부터 정몽주의 숙청을 주장했으나, 막상 정몽주를 죽이는 것에는 거부감이 있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하여가]]를 통해 정몽주를 자신의 사저에 초대하여 '''"한 번 쯤 역사의 흐름에 몸을 맡길 수 있지 않는가?"'''라며 마지막으로 진심어린 설득을 하지만[* 이 때 하여가에 대한 조금 색다른 해석인지 '''만수산에서 따 온 칡으로 담근 술'''을 대접했다.] 정몽주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이라면 그러겠지만 역류에는 그럴 수 없다."'''대답과 함께 [[단심가]]를 이성계에서 전해달라며 거절하고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에 상가에 들르고자 [[선지교]]를 지나려고 했지만 말이 갑자기 멈춰서서가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자 말에서 내려 같이 온 종에게 말을 이끌고 먼저 사저로 돌아가라고 하며, 자신은 선지교로 간다.[* 사실 정도전과 정몽주의 추억이 담긴 다리가 바로 선지교였다. 또한 참고로 이 부분 역시 용의 눈물과는 다소 전개가 다른데, 용의 눈물에서는 정몽주의 시종도 자신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함께 선지교로 가서 그 곳에서 같이 최후를 맞는 것으로 그려졌다. 또한 정몽주는 시대의 역류를 표현하듯 말을 거꾸로 타고 있었다.] 그리고 선지교에서 정도전과 이성계의 눈물과 성심어린 설득을 회상하던 중, 이내 이방원이 보낸 조영규 등 자객들에게 둘러싸인다. 조영규가 이방원의 전언인 '대업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용서해 달라.'는 말을 정몽주에게 전한다. >'''내 이런 순간이 오리라 예감은 하고 있었다만, 정녕 천하의 몹쓸 망종이 아니더냐!''' >---- >(조영무: 닥치시오!) >---- >[[이방원(정도전)|방원이]]에게 전하거라. 고려의 충신으로 죽게 해주어 고맙다고! 이제 너희의 대업은 그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찬탈이 되어버렸다고![* 잘 생각해보면 이인임이 정도전에게 남긴 저주보다 더 무시무시한 저주이다. 후세를 보면 심지어 그들이 세운 조선왕조 안에서임에도 불구하고 역성일파가 그리도 마음을 얻고자 했던 민심은 고려의 마지막 충신들을 숭배하고 역성일파의 대의는 무시하다시피 하여, 그들이 정몽주의 말대로 민심에게 용서받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 굴레가 조선이 멸망한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무시무시하기 짝이 없는 저주다.] >---- >(조영규 일당이 접근해오기 시작) >---- >'''...네 이놈들!!!''' >'''소생 정몽주. 존경하는 장수이자 평생의 벗. 이성계 대감에게 시 한 수 적어봅니다.''' >---- >(정몽주는 선죽교에서 조영무, 조영규 일당에게 칼에 난자당한다.) >---- >'''[[단심가|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此身死了死了一百番更死了),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白骨爲塵土魂魄有也無),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向主一片丹心寧有改理與之)...]]''' >---- >(이성계는 정몽주한테 받은 서찰을 본 후 손에 힘이 풀리고 통곡을 한다. 그리고, 조영규는 철퇴를 받고 죽어가는 정몽주를 기합을 하며 정몽주의 머리를 내리친다. 결국 정몽주는 눈을 뜬 채로 사망한다. 그리고 조영규가 들고 있는 철퇴에는 피가 줄줄 흘린다.) >---- >'''(이성계: 포은 선생! 포은!! 포은 선생!!!)''' 결국 정몽주는 '''[[선죽교]]에서 칼과 철퇴에 난자당해 사망한다.'''[* 임견미와 염흥방과 더불어 제일 끔찍하게 살해당했다.] 다른 자객들이 칼로 몸통을 여러 번 베었고 마지막에 조영규가 철퇴로 머리를 내리쳐 마무리했다.[* 이 때 조영규 역시 정몽주를 죽이는 게 마음은 편치 않았는지, 착잡한 표정으로 정몽주를 내려 보다가 철퇴를 내려친다. 이후 더 자리를 지킬 필요도 없는데 시체를 둘러싼 군중 사이에서 정몽주를 바라보는 것으로 확인사살. 적에게도 정몽주의 위상이 어떠한지 단적으로 나타난다. 정몽주 사망 직후 자객들의 표정을 하나씩 비추는데 조영무를 제외한 나머지들 역시 착잡한 표정을 짓는다. 조영무는 혼자 분을 삭이는듯한 표정을 짓지만 조영규와 기타 자객들은 '정말 이 사람을 죽이는거 외엔 방도가 없었던걸까?' 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다.] 그가 난자당할 당시 얄궂게도 그가 남긴 단심가가 이성계에게 도달하며, 단심가가 낭송되는 동시에 정몽주의 난자 장면이 오버랩된다. 더구나 피살당하는 정몽주의 눈가에 피가 맺혀 흐르는 모습이 마치 피눈물을 흘리는 듯한 모습으로 보인다. 피투성이가 된 시신은 바로 그날 석방된 정도전의 눈에 띄게 되고, 정도전은 피투성이가 된 40년 지기의 시신을 껴안고 울부짖고 만다. 이 때 정도전을 안내한 배극렴조차 정몽주라는 인물이 정도전에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아서였는지 차마 어떤 말도 그에게 꺼내지 못하고 그저 "'''가보시면 압니다.'''"라는 말과 함께 한숨을 쉬며 저기로 가보라고 밖에 하지 못했다.[* 고려 멸망기 극을 이끌어가던 두 축 중 한 명이자 주인공의 막역지우였던 자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내용 때문인지, 이 화의 예고편에는 평소에 사용되던 '정도전(OST 1번)'이 아니라 '정도전의 삶(OST 2번)'이라는 슬픈 분위기의 곡이 사용되었다. 이 곡은 예고편으로서는 드물게 정도전이 죽음을 맞이하는 최종회의 예고편에도 사용되었다. [[http://www.youtube.com/watch?v=LyFKgFijLns|예고편 참고.]]] [youtube(-nzz5UHoh2o)] 이 때 그의 인생을 회고하는 나레이션이 깔렸다. > '''포은 정몽주. 경상도 영천에서 태어난 그는 대과의 초장, 중장, 삼장에서 모두 장원을 차지할 정도로 명석했는데, 스승인 이색은 그를 가리켜 성리학의 조종이라고 극찬하였다. 당대 최고의 외교가로서 경색되었던 명나라와의 관계를 개선시켰으며, 왜구에게 잡혀갔던 수백 명의 고려 백성을 귀국시키기도 했다. 위화도 회군으로 권력을 장악한 이성계와 함께 고려의 개혁을 추진하였지만, 역성혁명에 반대하며 갈라섰다. 망해가는 고려를 지키기 위해 이성계와 첨예하게 대립했던 그는 서기 1392년, 선죽교에서 이방원이 보낸 자객들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고려에 대한 일편단심으로 목숨까지 바쳤던 정몽주의 충절은 그가 남긴 단심가와 더불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과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본관은 영일, 시호는 문충이다.''' 40화에는 39화 마지막 장면에서 살짝 이어진 후 시신이 적당히 정리되어 묻혀있는데, 사후 나라의 간적으로 몰려서인지 묘비도 없이 정말 황량하다.[* 드라마에서는 나오진 않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이성계측에 의해 역적으로 몰려 사후 시신의 목까지 잘려 효수되었다. 하지만 나중에 태종 대에 신원된 이후에는 묘역이 관리되어서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죽자마자 이성계 일파는 왕실을 맹공격하여 결국 고려를 멸망시킨다. 그러나 그의 죽음으로 백성들은 이성계 일파에게서 온건파 신진사대부로 마음을 돌리게 되고 이는 당대는 물론 후대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니 그의 존재감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