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무정 (문단 편집) === 황제 폐위 === 동돌궐의 수령 아사나복념, 아사덕원푸가 패전하여 사로잡히자 [[힐질리시가한|쿠틀룩]][* 돌궐 제2제국의 초대 가한으로, 당의북방 지역을 초토화시켰다.]은 가한을 자처하며 다시 당에 반란을 일으키고, 돌궐 제2제국을 세운다. 당군이 연거푸 패하자 조정은 풍주를 버리려다 [[당휴경]]이 버티면서 멈췄다. 홍도 원년(683년) 11월, 무측천은 정무정으로 하여금 쿠틀룩을 막게 하였다. 그해 12월 고종이 사망하고 세자 이현(李顯)이 즉위해 중종이 되었으나 대권은 [[측천무후]]가 장악해 왔다. 당 고종은 임종 때 [[배염]]에게 세자를 보좌하라는 조서를 내렸다. 이듬해인 사성 원년(684년) 정월 중종이 자신의 장인([[위황후]]의 아버지) [[위현정]]을 시중으로 내정하고, 유모의 아들에게 5품의 관직을 내리려고 했다. 배염은 불가하다고 역간했다. 중종은 배염의 간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맞섰다. >"짐이 천하를 전부 위현정에게 준다고 해도 안된다 할 것인가? 시중이라는 자리가 그렇게 아까운가?" 배염은 중종의 발언과 행태에 대해 측천무후에게 알렸고, 측천무후는 중종을 폐위시킬 계획을 세웠다. 이후 2월에 측천무후가 건원전에 백관을 모았는데, 배염과 정무정, 중서시랑 유의지, 장건욱이 군사를 이끌고 궁 안으로 들어가 측천무후의 조명을 내리면서 중종을 폐한 뒤 여릉왕으로 하고[* 훗날 거란족의 [[손만영]]이 반란을 일으킬 때, 무측천이 중종을 폐한 것을 반란 명분으로 삼았다.], 동시에 예왕 이단을 [[예종(당)|예종]]으로 올렸으나 정사는 모두 측천무후가 결정하였다. 정무정은 이때의 정변에 공이 있어 측천무후가 수렴청정을 할 때 정무정의 아들인 정제지(程齊之)를 상승봉어(尙承奉御)로 삼으려고 했는데, 정무정은 자신의 동생인 정무충(程務忠)에게 벼슬을 내려달라고 청하고 무측천은 그를 칭찬하여 정무정의 아우인 원주(原州) 사마 정무충을 태자세마(太子洗馬)로 삼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