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민철 (문단 편집) == 피칭 스타일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정민철141.gif|width=100%]]}}} || || '''{{{#white 141km/h 포심 패스트볼}}}'''[* 상대 타자는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08번뇌커브.gif|width=100%]]}}} || || '''{{{#white '108번뇌 커브'라 불리던 커브}}}'''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정민철써체.gif|width=100%]]}}} || || '''{{{#white 간간히 던지던 서클 체인지업[* 위 영상은 [[1999년 한국시리즈]]에서의 영상인데, 이후 방송에서 본인이 밝히길 다음해 일본 진출을 목적으로 조금씩 연습을 했었으나 자신이 없어서 정규시즌에는 봉인하고 있었는데,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포심 패스트볼|포심]], [[커브볼|커브]] 투피치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이때 꺼내들게 되었다고 한다.]}}}''' || 전성기 시절 주무기는 빠른 공. 훗날의 인터뷰에 따르면 전성기 시절 [[http://lysbon.tistory.com/m/post/81|최고 구속은 152km/h]]였다고 하나, 실제 경기에서 찍히는 최고 구속은 145~8km 정도로, 강속구 투수였다. 사실 전성기 정민철의 강점은 구속보다도 '''구위 자체'''였다. 테일링이 좋은, 소위 말해서 공 끝이 좋은 타입. 즉, 원조 [[돌직구]]. 동시대 선수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대 최고의 구위로 평가 받는다. 당시 심판들이 꼽은 가장 좋은 구위의 선수로 [[김상진(1970)|김상진]]과 함께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특히 [[박경완]]과 [[이종범]]이 본인이 경험한 최고의 공으로 정민철의 공을 꼽았고, 전성기 정민철의 볼끝은 [[임창용]]과 [[오승환]]보다 더 좋다고 평가하였다. 전성기 슬라이더와 커브[* '백팔번뇌 커브'라고 할 정도로 위력이 좋았다. 150Km/h에 육박하는 패스트볼을 던진 후 낙차폭이 큰 100km/h대의 슬로커브를 던져서 타자들을 많이 고뇌시켰다. 이 슬로커브 말고도 12시에서 6시로 낙차 크게 떨어지는 파워커브도 보유했다.], 포크볼 등 당시 언론에서 언급되었던 변화구의 레퍼토리 자체는 다양했으나, 커브를 제외하면 어느 하나 주 무기라고 할 수준은 아니었다. 철저하게 빠른 공 위주로 던지되 유인구로 커브를 써먹던 전형적인 투피치 스타일. 제구력이 탁월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칠 테면 쳐보라고 가운데로 팡팡 꽂아 넣었던 탓에 볼넷이 상당히 적었다.[* 이 때문인지 은퇴해서도 칠테면 쳐봐라 라는 식의 투구를 하는 투수들 선호하는 듯하다. [[김혁민]]을 두고 "얘는 털려도 정면승부 하잖아. 얘좀 보고 배워."라고 말할 정도였으며 별로 혼내지도 않았다고 한다.]스태미너도 좋아서 완투를 밥 먹듯이 한 전형적인 우완 정통파 파이어볼러 이닝이터 선발투수. 커브볼러로 유명한 [[김원형]]과 비교를 하자면, 김원형은 패스트볼과 커브의 구속-궤적이 비슷한 것을 이용했다면 정민철은 확실한 패스트볼과 그 패스트볼을 뒷받침할 수 있는 커브를 사용했다는 것. 다만 2000년대 이후로 패스트볼 구속과 구위가 급격히 떨어진 탓에 변화구와 커맨드(제구력) 위주의 기교파 투수로 폼을 바꿔야 했다. 커터 슬라이더 체인지업 포크볼 등등 온갖 변화구란 변화구는 다 던지며 말년을 보냈다. 선수 시절 후반기에 사용한 주 무기는 커브였는데, 본인 스스로가 [[커브볼#s-2|너클커브]]라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 탓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