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병희 (문단 편집) === 프로 경력 === [[2003년]]부터 프로에 모습을 드러내더니 [[2004년]]부터 중간계투로 안착했다. [[2004년]] 시즌 초반엔 2군에서 담금질하다 [[5월 19일]] 승격, 미들맨으로 기용됐다. 시즌 중순까지만 해도 삼성 [[권오준]], 두산 [[이승준]]과 함께 중고 신인왕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좋은 활약을 보였지만, 마운드 붕괴란 악재로 인해 [[유승안]] 감독의 주먹구구식 등판의 희생양이 됐다. 당시 중계, 마무리 등을 안 가리고 등판했으며 연투를 자주 했고 후반기엔 선발로까지 기용될 정도였다. 결국 등판하고 한 달 조금 지나자마자 체력이 고갈되어 버렸고, 6월 중순을 기점으로 구위가 떨어져 피홈런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2004년 정병희의 피홈런 개수는 13개였는데, 등판 상황을 보았을 때 저 정도면 많이 맞은 편.] 이후로도 등판할 때마다 화염방사를 하면서 결국 33경기 65.2이닝 ERA 5.48이란 성적을 썼다. [[2005년]] 정병희는 전지훈련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시즌 초반부터 셋업맨으로 기용됐다. 하지만 [[김인식]] 감독은 정병희를 전년도 주먹구구식 등판으로 인해 관리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잘 던진다는 이유로 필승조에 포함시켜 이기는 경기마다 등판, 연투를 시키고, 위급하다 싶으면 긴급 투입시키는 등의 운용을 보였다. 2004년과 같은 패턴으로 6월 중후순경부터 체력 고갈로 인해 화염방사를 하기 시작했다. 시즌 초반만 해도 [[윤규진]]과 더불어 믿을맨이라 불릴 정도로 좋은 활약을 펼치던 정병희는 후반기를 기점으로 체력을 소진해 버리면서 부진, 8월 말엔 방어율이 5점대로 치솟고 말았다. 8월 말경 2군으로 내려갔다가[* 이때 정병희의 빈자리를 대신해 [[윤규진]]이 혹사당하다가 부상을 당하고 만다.] 그 달 말 다시 콜업, 부상당한 [[정민철]]을 대신하는 땜빵 선발로 나왔지만 계속 부진해 결국 6점대 방어율을 찍고 시즌을 마치고 만다. 후반기 부진으로 인해 포스트시즌 라인업에선 제외됐다. 2005년 성적은 58경기 70이닝 ERA 6.56으로, 당시 정병희의 무리한 기용으로 인해 [[김인식]] 감독의 투수 혹사론이 잠시 불었었다. 뭐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했었으니 대부분은 신경쓰지 않았지만... [[2005년]] [[11월 22일]], FA [[김민재(내야수)|김민재]]의 보상선수로 [[SK 와이번스]]에 지명됐지만[* 한화에 있다가 SK로 이적한 [[최일언]] 투수코치가 추천해서였다고 한다.] 이후 다시는 옛날의 모습을 찾지 못했다. [[2006년]] 몇 경기 등판해 화염방사를 한 것을 끝으로 더 이상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2008년]] 군입대, [[2010년]] 제대하자마자 방출되면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은퇴 이후 무엇을 하는지 알려지지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