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성공 (문단 편집) === 출생 === 아버지는 [[명나라]] 말기의 관리이자 [[해적]]이며 거상이었던 [[정지룡]](鄭芝龍)이었으며, 어머니는 히라도번[* 平戶藩, 지금의 [[나가사키현]] [[히라도시]].]의 번사 다가와 시치자에몬(田川七左衛門, 1626 ~ 1696)의 딸인 다가와 마츠(田川松, 1601 ~ 1646)였다. 정성공은 일본의 [[히라도]]에서 태어나 7세 때 명나라([[푸젠성|복건성]])로 건너 왔다. 이 때문에 [[대만일치시기]]에는 [[대만 섬]]을 처음으로 정복한 [[일본인]]으로 선전되기도 했다. 그의 어머니인 다가와 마츠에 대해 정성공을 싫어하는 이들은 그녀가 [[창녀]]라고 주장했고, 정성공 좋아하는 이들은 그녀가 [[천황]]의 일족이라고 주장했는데 둘 다 사실일 가능성이 없으며, 실제로는 중견 [[사무라이]] [[가문]] 출신인 것으로 보인다. 다가와 가문은 현재도 일본에 잘 살고 있다. 하지만 시치자에몬이 정지룡을 포섭하기 위해 준비해둔 [[첩]]의 딸, 즉 [[기생]]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정지룡이 연회때 다가와 마츠에게 접대를 받은 것이다. 다가와씨라고 보기엔 제대로 가문에 이름이 올라와 있지 않으며, '다가와 마츠'란 다가와 가문의 마츠(マツ)라는 [[여자]]로 알려져 있다. 한편 중국에선 정성공의 일본인 혈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다가와 가문이 사실 중국계 일본인 가문이거나 중국인과 일본인의 [[혼혈]]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아버지 [[정지룡]]은 [[1604년]] [[푸젠성|복건성]] [[취안저우|천주]]에서 출생했다. 아명은 일관이었으며, 젊은 시절 포르투갈령 마카오에서 세례를 받아 세례명이 니콜라스였다. 히라도번 제3대 번주인 마츠우라 다카노부(松浦隆信, 1603 ~ 1637)가 주최한 연회에서 우연히 다가와 마츠와 만나 사랑에 빠졌고 동침하여 정성공을 낳게 되었는데 이는 장래가 창창한 정지룡과 인맥을 쌓고 싶었던 다가와 시치자에몬이 계획한 만남이었다. 당시 다가와 마츠는 20대 초반이었는데 당시 일본인의 평균 연령을 생각해 볼때 [[미망인]]이었을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으며, 실제로 17세기에 정성공의 탄생 비화를 그려낸 책자들에서는 정지룡이 일본인 [[과부]]와 결혼하여 정성공을 낳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번주]] 가문인 마츠우라(松浦)씨는 [[헤이안 시대]]부터 일본 열도에서 수군([[해적]])으로 활약했던 해상 세력인 마츠우라토(松浦党)의 당주, 즉 해적 출신이었다. 고려 말 [[왜구]]의 거점으로 지목된 3도(三島) 가운데 한 곳이 마츠우라토의 마츠우라[* 나머지 두 곳은 [[쓰시마]]와 [[이키 섬]].]였을 정도였다. 히라도에는 [[에도 막부]] 이전까지 [[네덜란드]] 상인들이 교역하는 상관(商館)이 있었고, 해적 출신의 마츠우라 가문이 이곳에서 네덜란드와의 교역을 통해 부를 쌓았지만 에도 막부가 [[쇄국정책]]을 선포하고 히라도에 있었던 네덜란드 상관을 [[나가사키]]의 [[데지마]]로 옮겨버리면서 히라도는 쇠퇴하여, 지금은 일본의 한적한 어촌 정도로 남아 있다. 정지룡이 다가와 마츠와 동침하여 정성공을 낳을 때, 정지룡은 거상인 이단의 상단에 속해 있었다. 이단은 정지룡에게 자신의 부하인 안사제의 딸인 안씨와 결혼할 것을 요구했다. 결국 정지룡은 정성공을 [[임신]]한 다가와 마츠를 두고 중국으로 건너가 안씨와 결혼하게 되었고, 다가와 마츠는 홀몸으로 아들 정성공을 키우게 되었다. || [[파일:external/www.hirado-net.com/boshi01-b.jpg|width=300]] || [[파일:external/b.blog.xuite.net/20.jpg|width=500]] || || 일본 나가사키의 정성공 모자(母子)상 || 대만 [[타이난]]의 정성공 모자(母子)상. || ||<-2> 모친 다가와 마츠의 모습에 대한 묘사부터 확연히 차이가 드러난다. || [[1624년]] 8월 정성공이 출생했다. 그가 태어나기 전날에 대만에서는 거대한 태풍이 몰아쳤고, 그 태풍 속에서 한 마리의 [[고래]]가 춤을 추었다고 하며, 다음날 정성공의 어머니 마츠가 바닷가에 나오자 폭풍우가 잠잠해졌는데, 마츠는 바닷가에서 [[조개]]를 캐다 산통을 느끼고 집으로 돌아가기도 전에 길에서 정성공을 낳았다고 한다. 마츠가 정성공을 잉태할 때의 태몽이 바다에서 나타난 거대한 고래가 그녀의 품으로 뛰어드는 꿈이었기도 해서 정성공은 평생 고래를 자신의 수호 동물로 생각했고, 그가 죽기 전에는 대만 바닷가에 죽은 고래 시체가 떠내려왔다고 한다.(출처: 조너선 클레멘스 《해적왕 정성공》) 정성공은 '행운의 소나무'란 뜻의 '복송'(福松), 일본어로 '후쿠마츠'라는 아명을 얻는다. 이 아명에 대해 해석이 분분한데 이를 중국 측에서는 복건성의 '복'자와 히라도 가문의 영주인 마츠우라 가문의 '마츠'(송)을 따온 것으로 보았다. 이 '마츠'는 복건과 [[마카오]]의 중국인들이 신봉하는 바다의 여신 '[[마조]]'(媽祖)와도 발음이 같다. 마조(마츠)는 다른 이름으로는 '천비'(天妃)라고도 하며, 원래 [[송나라]] 때 어느 관리의 딸로 16살 때 마을 사람들의 병을 치유해 주는 등의 이적을 보여 주민들로부터 '통현영녀'(通賢靈女)라 불리며 숭상받았다. 28세 때 아버지가 바닷가에 나갔다가 행방불명되자 충격을 받고 자신의 능력에 대해 회의하다가 아미산(峨嵋山)으로 들어가 도교 수행을 했다. 이후 아버지를 찾아 배를 타고 바다로 떠났다가 그녀 자신도 아버지와 같은 운명을 맞았다. 그녀의 시신은 복건성 앞바다의 섬에 떠내려왔다고 하는데, 이후 [[절강성]] 등 중국의 바닷가 지역에서는 마조를 바다의 여신으로 받들게 되었다고 한다. 신격화된 마조는 천리안(千里眼)과 순풍이(順風耳)라는 두 악신을 감화시켜 수행원으로 데리고 다닌다고 한다. '''바다에서 조난당해 죽은 사람을 바다의 [[여신]]으로 모신다'''는 점에서 보면 원령 숭배 신앙의 연장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뱃길로 중국에 온 [[고려]] 및 [[조선]]의 사신들도 사문도(沙門島)의 마츠(마조) 사당에 와서 바닷길의 안전을 기도했다고 한다. 심지어 중국을 오가던 상인들을 통해서 [[베트남]], [[류큐]], [[일본]]에까지 마츠 여신을 모시는 사당([[신사]])이 세워지기도 했다. [[마카오]]의 이름이 마츠 여신을 모신 사당(媽祖閣, 마조각)에서 유래했다는 설은 유명하다. 한국에서는 동남해 및 [[제주]] 바닷가에 주로 퍼져 있는 영등신(영등할매) 신앙과 관련되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을 가능성을 지적하는 설이 있다. 일부는 정성공의 아명에 주목하기도 한다. 또한 마츠가 일본어로는 '기다리다'라는 뜻도 있는데 홀몸이 된 다가와 마츠가 기다린다는 의미로 붙였다는 해석도 있다. 이후 정성공은 어머니와 함께 히라도번에 살았는데 다가와는 정지룡을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고, [[1629년]] 다른 남자와 결혼해 정성공의 이부동생인 시치자에몬을 낳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순간에 이단의 사망 이후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복건성]] 앞 안해의 사실상의 지배자가 되어 '왕'으로까지 불리던 정지룡이 그제서야 자신의 동생 정지연을 히라도번에 파견하여 정성공과 다가와 마츠를 데려올 것을 지시했다. 다가와 마츠는 새 남편과 두 번째 아이 때문에 중국행을 거절했다. 이에 정지룡은 다른 동생인 정지아를 보내 다가와를 설득하는 한편, 정 안되겠으면 정성공이라도 보내줄 것을 간청했다. 이에 다가와는 7살 된 정성공을 아버지 정지룡에게 보내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